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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557
한자 儒敎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유재리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개설]

유교는 중국의 고대 봉건 국가의 사상·이념 등을 집대성한 것으로, 충(忠)과 효(孝)를 기본으로 각종 예법을 강조하고 있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다.

유교적 전통 사회는 효(孝)라는 이념 아래 종자(宗子)를 중심으로 하는 혈연적 유대 의식인 친친(親親), 조상 공경의 의례를 공유하는 가족 공동체, 충이라는 이념 아래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위계 질서 존존(尊尊), 종묘와 사직의 의례를 받드는 국가 공동체를 중심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유교적 세계관에 따라 가묘(家廟), 문묘(文廟), 종묘 사직(宗廟社稷), 천단(天壇) 등의 의례적 공간에서 제사를 통해 조상이나 성현, 그리고 하늘과 교류함으로써 인간의 일상적 삶은 거룩하고 의미 있게 승화하고 있으므로 유교는 충효의 종교, 가족주의 종교, 도덕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군산 지역에 현재 전하고 있는 유교 관련 문화재에는 향교와 서원(書院)이 있다.

[군산 지역의 향교]

우리나라 교육 기관은 삼국 시대부터 설립되었지만, 지방에 교육 관련 관리를 파견하여 지방 자제를 교육시키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부터였다. 고려 성종 대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한 뒤 12목에 비로소 경학 박사(經學博士)를 파견, 향교 설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127년(고려 인종 5) 군현 학교 설립이 시작되었다. ‘향교(鄕校)’라는 명칭은 1142년(인종 20)에 처음 사용되었다.

향교는 무인 집권기 이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다가 고려 말 공민왕 대부터 재건되기 시작하였고, 조선 건국 이후 1읍(邑) 1교(校)의 원칙하에 전국 각지에 설립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서원이 등장함에 따라 향교는 교육적 기능을 점차 상실하였다. 교관은 중앙이 아닌 각 지방에서 충당하였고, 유생들이 향교 대신 서원을 선호하면서 향교의 강학 기능은 점차 약화되고 제향 기능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1894년 과거 제도 폐지 이후로 향교는 교육적 기능을 상실하고 제향을 위한 종교적 기능만 남게 되었다.

향교 건축의 대부분은 임진 왜란과 병자 호란으로 소실되어 현존하는 향교는 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는 1403년(태종 3)에 창건되어 현재 지방 문화재 자료 제95호로 지정된 임피 향교(臨陂鄕校)와 지방 문화재 자료 제96호로 지정된 옥구 향교(沃溝鄕校) 두 곳이 현존한다. 두 곳 모두 조선 초기에 세워져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지만 초기 향교의 전형적 모습인 전학 후묘(前學後廟)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군산 지역의 서원]

전라북도에는 60여개의 서원이 있는데, 군산 지역에는 염의 서원(廉義書院), 산앙 서원(山仰書院), 옥산 서원(玉山書院), 문창 서원(文昌書院), 치동 서원(淄東書院) 등 5개의 서원과 터만 남은 봉암 서원지가 있다. 건립된 서원 수는 적지만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여러 시기에 걸쳐 꾸준히 건립된 특징을 띠고 있다.

조선 시대 세워진 서원으로는 봉암 서원염의 서원이 있다. 봉암 서원은 군산 지역에 가장 일찍 설립된 서원이다. 봉암 서원은 1600년(선조 33) 임피 현령 정시창(鄭始昌)을 중심으로 창건되었고, 1604년(선조 37)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1606년(선조 39)에 자암(自庵) 김구(金絿)를 배향하였다. 1635년(인조 13)에 사액을 받았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1685년(숙종 11)에 세워진 염의 서원은 1804년(순조 4)에 사액되었지만, 이 역시 고종 대 서원 철폐령이 내려질 때 폐쇄되었다. 이후 염의 서원은 1920년에 다시 설치되었다. 염의 서원은 군산시 향토 문화 유산 제5호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처음 건립된 서원으로는 산앙 서원옥산 서원을 들 수 있다. 산앙 서원의 모태는 1876년에 세워진 낙영당(樂英堂)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9대손 송병선(宋秉璿)은 1900년을 전후로 낙영당에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그 철폐를 주장하다 순국하였다. 산앙 서원은 순국한 송병선을 기리기 위해 1908년(순종 2)에 건립되었고, 1922년 재차 건립되었다. 현재 낙영당은 명도사(明道寺)라는 사찰로 사용되고 있다. 옥산 서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9년에 처음 건립되었다.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과 옥구 일대의 선현 14명을 배향하였다. 옥산 서원은 군산시 향토 문화 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현대에 들어 건립된 서원으로는 치동 서원문창 서원이 있다. 치동 서원은 1926년 세워진 치동원(淄東院)을 모태로 하고 있다. 치동원은 담양 전씨(潭陽田氏) 종중이 결의하여 담양 전씨의 조상으로 구전되어온 중국 제나라 전횡(田橫)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려고 처음 세워졌다. 그 후 1951년 담양 전씨의 중시조인 삼은(三隱)[전야은(田野隱), 전뢰은(田牢隱), 전경은(田耕隱)]을 추가 배향하였는데, 이 중에 뇌은·경은은 조선 건국기 고려에 충절을 지킨 두문동(杜門洞) 72현(賢)에 포함되어 있다. 치동묘는 본래 어청도에 세워졌으나 1926년에는 둔율리, 1983년에는 원오곡 마을로 이전 건립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문창 서원은 1969년 고주장(高洙張) 등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옥구 자천대(紫泉臺) 일대에서 소요했다는 최치원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최치원이 옥구에서 태어나 옥구 관리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하며, 서원의 편액은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군산 지역의 효자·효부·열녀]

조선 시대 군산 지역이었던 옥구현임피현에서도 여느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충신, 효자, 열녀에 대한 포창이 실시되었다. 효자와 열녀는 해당 고을에서 고을의 사림들에 의해서 그 사실을 확인한 이후 이들을 해당 도에 추천하면, 도에서는 다시 이를 확인하고 조정에 알렸다. 조정에서는 다시 이 사실을 확인하고 조사하여 마침내 효자와 열녀로서 정려(旌閭)를 내리거나, 복호(復戶), 포상(襃賞), 증직(贈職) 등의 상훈을 내렸다. 군산 지역 효자와 열녀 중에서 그 행적이 두드러지게 뛰어나 조선 정부로부터 정려를 받거나 복호의 포상을 받거나, 일제 강점기에 유림들에 의해 효자비나 열녀비가 건립된 자들은[이 외에 효행이나 열행으로 각 현이나 도로부터 포창을 받은 경우도 많으나 이들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모두 30여 명인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888년(고종 25)에 정부에서 명정(命旌)하고 1931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강계팔(姜啓八)의 처(妻) 두릉 두씨(杜陵杜氏), 1888년(고종 25)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1931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강원덕(姜元德), 1888년(고종 25)에 명정하고 1931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강응원(姜應元)강영무(姜永武) 부자, 1925년에 대성 교숭 포부(大成敎崇褒部)에서 일가 삼효비(一家三孝碑)를 건립한 고동옥(高東沃)의 처 탐진 최씨(耽津崔氏)와, 탐진 최씨의 두 아들 고두환(高斗煥)과 고명환(高明煥) 형제, 1990년에 부부 효열비가 건립된 고병기(高炳箕)의 처 평강 채씨(平康蔡氏), 1931년에 부부 효행비가 건립된 고병성(高炳星)과 처 두릉 두씨, 1904년(광무 8)에 대한 제국 정부에서 명정한 고제룡(高濟龍), 1942년에 효열비가 건립된 김관추(金觀秋)의 처 남평 문씨(南平文氏), 1878년(고종 15)에 정려가 건립된 김보순(金輔淳)과 처 담양 전씨, 1888년(고종 25)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1901년(고종 38)에 효자비가 건립된 김장옥(金章玉)과 처 제주 고씨(濟州高氏), 1935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두건표(杜建杓)의 처 평산 신씨(平山申氏), 1528년(중종 23)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이듬해 1529년(중종 24)에 효자비가 건립된 두세준(杜世俊), 1869년(고종 6)에 조선 정부가 명정한 두안복(杜安復), 1889년(고종 26)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1951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두재하(杜在夏)의 처 남평 문씨, 1887년(고종 24)에 조선 정부가 명정한 문덕중(文德中)의 처 전주 이씨(全州李氏), 1905년(광무 9)에 대한 제국 정부가 명정하고 1938년에 정려가 건립된 문명로(文鳴魯)의 처 장흥 오씨(長興吳氏), 1938년에 부부 효행비가 건립된 문몽상(文夢尙)과 처 남원양씨(南原梁氏), 1893년(고종 30)에 조선 정부가 명정한 문정학(文正學)의 처 진주 강씨(晋州姜氏), 1923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문한규(文漢奎)의 처 제주 고씨, 1795년(정조 19)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이듬해 효자비가 건립된 문흥주(文興周), 1870년(고종 7)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이후 효자비가 건립된 문희석(文希奭)문계인(文啓仁)[문희석의 증손], 1928년에 부부 효행비가 건립된 박동표(朴東表)와 처 여산 송씨(礪山宋氏), 1930년에 효열비가 건립된 서상명(徐相明)의 처 순천 박씨(順天朴氏), 1889년(고종 26)에 조선 정부가 명정한 신택주(申宅柱)와 신대식(申大直) 부자, 1939년에 효열비가 건립된 신의균(申義均)의 처 남평 문씨(南平文氏), 1703년(숙종 29)에 복호가 내려지고 1924년 정려가 세워진 전극추(田克秋)의 처 제주 고씨, 1944년에 효열비가 건립된 전만배(田萬培)의 처 남평 문씨, 고을 유림들이 효열비를 건립한 전병갑(田炳甲)의 처 평산 신씨(平山申氏), 1944년에 효열비가 건립된 전병순(田炳淳)의 처 남평 문씨, 효자비가 건립된 전상룡(田相龍), 1932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전수일(田壽日)의 처 가평 이씨(加平李氏), 1724년(경종 4)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1725년(영조 1)에 열녀비가 건립되었으며 1946년에 비석이 재건립된 전시번(田時蕃)의 처 원주 원씨(原州元氏), 1889년(고종 26)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효열비가 건립된 전익성(田益成)의 처 남평 문씨, 1889년(고종 26)에 조선 정부가 명정하고 1970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채기영(蔡基永), 1899년(광무 3)에 대한 제국 정부가 명정하고 1927년에 효자비가 건립된 채동구(蔡東九), 1941년에 유회포창사에서 효열비를 건립하도록 권장한 채동진(蔡東震)의 처 우주 황씨(紆州黃氏) 등이다.

[군산 지역의 유교 단체]

군산 지역의 대표적인 유교 단체로 옥구 향교 유도회가 있다. 옥구 향교 유도회는 2013년 현재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옥구 향교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부민(李富民) 전 학교장이 새 유도회장을 맡고 있다. 옥구 향교 유도회는 2007년부터 군산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개인 생활 예절을 비롯해 명심보감, 관내 서원 방문 행사 등을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