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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군산문화대전 > 군산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현대

  • 현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해방 이후 현재까지 군산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현대는 보통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말한다. 태평양 전쟁[1941~1945]을 일으킨 일본이 패하면서 한반도는 해방된다. 그러나 사회는 극도의 혼란과 혼돈으로 빠져든다. 군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의 병참 도시화 과정에서 성장이 멈춘 채 해방을 맞이한 군산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남북 분단과 6·...

  • 8·15광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을 계기로 전라북도 군산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이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일. 1945년 8월 15일 중대 뉴스가 발표된다는 예고에 식민지 백성은 숨죽이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심한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떨리는 목소리, 그것은 뜻밖에도 일본 천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찾아온 광복이었다. 광복이라는...

  • 미군정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군산이 포함된 삼팔선 이남 지역에 미군이 진주하여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3년 동안 실시한 군사 통치 시기. 해방 정국에서 혼란이 진정될 때까지는 일본 관료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미군 사령부 하지 중장은 일본인 관리들을 행정 요직에 남아 있게 했다. 군산도 미군이 들어와 행정 기관을 접수하여 기구를 개편할...

  • 월남민의 군산 정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6·25 전쟁 중 전라북도 군산 지역으로 피난민이 이주한 사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조인으로 전선에서 포성은 멎었지만, 부모·형제가 헤어져 평생을 이산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분단의 아픔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군산도 북한과 뱃길이 가까운 항구 도시로 이산 가족[피난민]이 어느 도시보다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군산은 해방 후 북한에 들어선 공산 정...

  • 일본 귀환 노무자 보상 요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5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발생한 일본으로 강제 징집된 노무자 1,803명에 대한 보상 요구 시위. 1945년 9월 중순경, 1,000여 명의 한국인이 군산 부청[시청] 건물을 포위하고 이노우에[井上] 부윤에게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노무자 1,803명에 대해 피해 및 손해 배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일본 강제 징집 노무자의 배상 금액은 한 사람에 대해 사망자 2만 원...

  • 일본인 철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해방 이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한 사건.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킨 1931년 이후 병참기지화 했던 군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 해방을 조용히 맞았다. 일본 군대[수호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1944년 5월 현재 군산[옥구군 포함]에는 1만 1095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군산을 피해 부안이나 고창을 통해...

  • 국방경비대 제12연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해방 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주둔한 부대. 대한민국 국방경비대는 미군정(美軍政) 시절인 1946년 1월 15일 1개 연대 병력으로 경기도 태릉에서 창설되었다. 국방경비대 제12연대는 1947년 5월 백인기(白仁基) 부령을 연대장으로 군산 비행장에서 창설된다. 당시 백인기 연대장은 시내 학생은 물론 청년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입지적인 인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제12연대는 국...

  • 6·25전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있었던 전쟁의 양상.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장장 3년 1개월의 동족 상잔 비극이 벌어졌던 6·25전쟁, 해방 후 5년 만에 일어난 참변은 민족 통일을 표방한 전쟁이었다. 60년이 넘도록 휴전이 지속하고 있으며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6·25전쟁 당시 군산에는...

  • 학도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6·25 전쟁에 참가한 병사. 1950년 여름, 라디오와 입소문을 통해 6·25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군산 지역은 국군과 미군이 북한군을 몰아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한강 인도교 폭파와 인민군 탱크의 위력,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피난 등 전세가 어렵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이때 위기에...

  • 장항·군산·이리 지구 전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6·25 전쟁 당시 군산 지역에서 해병대가 벌인 최초의 상륙 작전. 군산·장항·이리 지구 전투는 1949년 4월 15일 창설된 대한민국 해병[고길훈 부대]이 6·25 전쟁에서 최초로 감행한 상륙 작전이다. 1950년 7월 초 충청남도 천안을 점령한 북한 제 13연대가 호남 지역으로 남하할 때 7월 16일 군산에 상륙한 해병대 부대가 북한의 금강 진출을 저지하고자 상륙 작전을 실시...

  • 군산경마장 폭발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5년 11월 30일 군산경마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 일제는 1927년 가을 군산 경마 구락부 소속 미와사키[宮崎] 농지 2만 1천 평[지금의 팔마광장 부근]에 전국 최초 공식 규격 경마장을 조성하였다. 1927년 당시 국내에는 공인된 경마장이 경성[서울], 평양, 대구, 부산, 군산, 신의주 등 여섯 곳뿐이었다. 경마 대회는 1년 중 벚꽃 개화 시기와 단풍철 두 차례 전국...

  • 납북 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67년 황해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 북한에 피랍됐다 귀환한 군산 출신의 서창덕이 간첩으로 누명을 썼다가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 승룡호 선원이던 서창덕(徐昌徳)이 1967년 5월 조업 중 납북되었고 9월에 귀환했는데, 17년이 지난 1984년 전주 보안대가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별다른 혐의없이 체포하여, 불법 구금 및 구타 등 가혹 행위를 가하여 자백을 이끌어내...

  • 4·19혁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60년 4월 22일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항쟁. 1960년 4월 19일 전국의 남녀 고등학생 주도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 혁명으로 ‘4·19 의거’, ‘4월 혁명’으로도 불린다.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대통령·부통령 선거는 야당 선거 위원들이 정치 깡패들에게 폭력을 당하는가 하면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등 자유당의 부정이 극에 달하였다. 군산...

  • 오송회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82년 전라북도 군산 제일 고등학교 전·현직 교사 9명을 이적 단체 조직과 간첩 행위 등으로 구속한 용공 조작 사건. 1982년 이광웅 등 군산 제일 고등학교 전직·현직 교사 8명과 한국 방송 공사[KBS] 남원 방송 총국 부장이던 조성용 등이 모여 시국 토론을 하고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의 추모제를 지낸 모임을 경찰이 나서 이적 단체로 조작하였다....

  • 기동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군산선에 투입되어 운행되던 내연 기관을 장착한 철도 차량. 기동차는 군산역과 익산역 사이, 군산역과 전주역 사이에 운영되던 통근 열차의 한 종류이다. 1960년대 초반의 디젤 동차를 도입한 이후부터이며, 그 후 1970년대에 전기동차가 등장했고, 1980년에는 우등형 전기동차가 국내에서 제작되어 중앙선을 운행하게 되었다. 오늘날 가솔린 기동차는 거의 없고 대부분 액체식이 사용되고...

  • 새마을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70년부터 전라북도 군산 지역을 포함하여 범 국민적으로 전개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의 기치 아래 생활 태도 혁신·환경 개선·소득 증대를 통해 낙후된 농촌을 근대화 시킨다는 취지로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지방 장관 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 추진 방안이 마련됨으로써 전개된 정부 주도의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새마을...

  • 2002년 군산시 개복동 화재 참사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군산 개복동에서 2002년 1월 19일 성매매 업소 내에 전기 합선으로 불이나 건물에 있던 여 종업원 14명과 지배인 1명 등 15명이 숨진 사건. 전라북도 군산시 개복동 7-13번지의 지상 2층 건물[연면적 161.4㎡]에서 2002년 1월 화재로 15명의 생명을 앗아간 화재 참사 사건이다. 2002년 군산 개복동의 대가·아방궁 유흥 주점[성매매 업소]에서 무선 전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