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717
한자 體育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시기/일시 1920년 7월 13일 - 조선 창립회 창립
관련 시기/일시 1930년 7월 - 군산부 체육회 창립
관련 시기/일시 1946년 - 한국 체육관 개관
관련 시기/일시 1953년 5월 - 군산 전국 축구 대회 개최
관련 시기/일시 1988년 - 88서울 올림픽 군산 출신 김광선 복싱 플라이급 금메달 획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 군산 상업 고등학교 야구 94회 전국 체전 우승
전화 063-452-6009[군산 시민 체육회]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일정한 운동을 통하여 신체를 단련시키는 일.

[개설]

우리나라에 서양식 체육, 즉 근대 운동 경기[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는 ‘신교육령’(新敎育令)이 공포되는 1895년(고종 32) 2월 이후 전국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개화된 일부 지도층에 의해 화류회[운동회]가 열렸으며, 서양 선교사들과 일본인들이 경성[서울]과 지방 도시에 설립한 근대식 교육 기관을 통해 구기 종목도 전수된다.

[군산 체육의 변천]

군산은 1899년 (광무 3)에 개항하였다. 따라서 군산의 체육은 1세기가 넘는 개항의 역사와 함께 한다. 36년의 일제 강점기 식민지 체제와 해방, 한국 전쟁 등 오랜 연륜이 쌓이는 동안 시련기, 격변기, 침체기 등을 거치면서 체육도 면면히 이어진 저항 정신과 끈기, 투혼의 결집체로 성장해왔다.

1894년 3월 전라도 답사에 나선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일행은 호남 지역 선교의 교두보로 군산을 선택하였다. 또한, 서양 선교사 전킨(W. M. Junkin)[전위렴]이 1903년 지금의 구암동산에 영명 중학교를 설립했으며, 개항과 함께 일본인에 의해 초등 교육 기관[군산 초등학교]이 개교하는 등 신문물이 일찍 유입되어 체육도 전북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였다.

군산을 대표하는 구기 종목으로 축구와 야구를 꼽는다.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오긍선 박사가 1909년 영명 중학교를 4년제 고등과와 2년제 특별과[대학 과정]를 병설하여 인가를 받고, 1911년 학생 축구부가 조직되면서 군산 축구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다. 야구 역시 1910년대부터 군산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10년[경술 국치] 이후 군산의 체육은 선수를 지도하고 육성할 만한 통일된 기관이 없는데다 룰(rule)도 엉성해서 경기가 산발적으로 열렸으며, 큰 대회보다는 일종의 친선 경기나 대항 경기가 고작이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강압 통치에 피압박 민족의 설움과 울분을 터뜨리는 한풀이 마당의 성격이 강해졌다. 1919년 3·1 운동 후에는 항쟁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자주 독립 의식이 고조되면서 1920년 7월 13일 마침내 조선 체육회가 창립되고 몇몇 팀이 한국 체육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러나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고, 관람석과 경기장 구분이 없어 흥분한 관중이 뛰어들어 심판을 구타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한민족의 기개는 면면히 이어져 훗날 한국의 체육이 세계로 향하는 초석이 된다.

1930년 7월 군산부 체육회가 발족하고 1932년 일출정[현 금암동]에 부영 공설 운동장이 만들어지면서 군산의 조선인 체육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군산부 체육회에 수영부와 씨름부가 추가로 구성되면서 1935년 8월 충청남도 대천 해수욕장에서 수영 경기 대회를 개최하였고, 1930년대 후반부터 우리의 전통 씨름 경기가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해방 후 군산은 ‘체육의 도시’가 된다. 해방 정국의 격변기에도 군산팀들이 전국 규모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1930년대 초부터 시작된 시민 체육 대회가 한국전쟁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1953년 5월 군산에서 전국 축구 대회가 개최된 것을 비롯해 다양한 체육 행사가 열렸으며 매년 체육인의 밤을 개최하여 대화와 친목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군산 체육의 토대는 1946년 서울 연무관[한국 체육관]이 처음 문을 열고, 두 번째로 군산 영화동에 종합 체육관이 개관하면서 잡히기 시작하였다. 태권도, 유도, 역도, 권투부 등이 들어선 종합 체육관은 일제 강점기 2층 높이의 쌀 창고를 개조한 붉은 벽돌 건물로 국내외에 이름을 떨친 훌륭한 선수와 지도자를 배출하여 군산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일제가 호남의 쌀 수탈을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한 항구 도시 군산은 1960년 이후 추진된 개발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한때는 ‘불 꺼진 항구’, ‘시간이 멈춘 도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체육은 꾸준히 성장하여 수많은 스포츠 스타를 길러냈고,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공헌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군산 출신 김광선 선수가 복싱[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하였다.

그렇게 군산의 체육은 시민의 정성과 선수들의 투혼으로 발전하고 성장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팀들이 속속 창단됐고,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하여 국위를 선양했다. 그 과정에서 화합과 단결은 물론 경제에도 적잖은 도움을 주었으며, 군산의 혼을 심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역전의 명수’ 군산 상업 고등학교는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군산의 상징이 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