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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80
한자 靑年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립 시기/일시 1927년 12월 - 군산 지역의 모든 청년 단체들이 해체 후 병합하여 군산 청년 동맹 창립
성격 민족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 중심의 민족 운동.

[개설]

1910년대부터 이미 각 지방에 종교 청년 단체는 물론 구락부, 수양회 형태의 일반 청년 단체들이 존재하였고, 이들은 조선 신문화 건설을 내세울 중심 기관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3·1 운동 이후 완전하지는 않지만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게 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서는 근대식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군·면·리 단위로 청년회·청년 구락부·청년 수양 단체 등을 결성한 뒤 야학·생활 개선 등과 같은 민중 계몽 활동과 강연회·토론회·연극회·운동회 등과 같은 정치·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변천]

1919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까지 활성화된 각종 인격 수양·문화 향상·농촌 계몽 운동 등은 일종의 신문화 운동이었으나, 1920년대 중반 이후 청년운동 내부에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청년 운동의 성격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전국 각지에 조직된 상당수의 청년 단체들이 1925년~1926년경부터 혁신 총회를 개최함과 동시에 조직의 강령과 규약을 바꾸는 등 사회 주의적 경향을 띄어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혁신 청년회들은 지역 사회 내에서 청년 총동맹과 조선 노동 총연맹 등을 결성하고 산하에 농민 조합, 노동조합, 신간회, 근우회 등의 조직을 두어 당시의 지배 체제에 대항하는 다양한 형태의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군산 지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1927년 군산 청년회에서 혁신총회를 개최하여 규약 수정안을 통과 시킨 후 폐회하였다는 『조선 일보』의 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군산에서는 1927년 군산에 있는 모든 청년 단체가 해체 후 병합하여 군산 청년 동맹이 창립되기도 하였다.

[군산 지역의 청년 단체 및 활동 내용]

군산 지역의 청년 단체로는 1920년~1924년 사이에 설립된 주일 성경 청년회, 군산 기독 청년회, 군산 경신 구락부, 군산 기독 여자 청년회, 구암 기독 청년회, 구암 기독 여자 청년회, 기경리 천도교 청년회, 군산 청년회, 동광 청년회, 수학 여자 청년회 등이 있으며, 1925년 이후에 설립된 군산 노동 청년회, 군산 형평 청년회, 대야 청년회, 군산 청년회, 군산 청년 동맹 등이 있다. 이처럼 군산 지역에는 종교와 관련된 청년 단체가 많았고, 다른 지역과 달리 여성 단체가 따로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되는 청년 단체는 경신 구락부, 동광 청년회, 군산 청년회이다. 군산 경신 구락부는 1920년대 군산 지역 청년운동 단체 중 가장 먼저 조직된 단체로 덕(德)·지(智)·체(體) 삼육을 함양하고, 도서·신문·잡지 등을 구람하며 운동부를 비치하여 신체를 단련케 하였다. 또한 입회원을 70여 명이나 둔 비교적 규모가 크고 잘 조직된 우파적 성격의 단체이다. 주요 인물로는 지역 유지인 조중환을 들 수 있으며, 회관을 짓고 경신 상업 야학원을 설립하여 조선인에게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와 반대적 성격을 가진 동광 청년회는 1922년에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문화 운동 및 청년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회관 건축과 교사 증축을 위하여 연예회, 소인극, 음악회 등을 개최하는 한편 동정금을 받기도 하였다. 주요 인물로는 군산 노동 공제회의 창립 발기 위원이자 동광 청년회 회장이었던 조용관을 들 수 있다.

군산 청년회는 문화 운동의 중심 기관으로 실력 양성, 문화 향상을 목표로 하여 1922년 조직되었으며, 강연회, 토론회, 야학회, 운동회 등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후 1924년 경신 구락부, 동광 청년회, 군산 청년회가 한 단체로 합쳐지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더욱 큰 발전을 이루었다. 주요 인물로는 전라북도 옥구군에서 태어나 무역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청년회 조직에 기여한 김흥두를 들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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