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마을신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958
한자 -信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천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 마을에서 행해지는 공동체 신앙.

[개설]

마을신앙은 한 마을을 단위로 재앙을 멀리하고, 마을의 화합과 번창을 신에게 기원하는 신앙 행위이다. 지연(地緣)과 혈연으로 모인 군산 지역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마을을 지켜 준다고 믿는 산신, 서낭신, 솟대 등을 위하는 공동의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다.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의 유대감 속에서 신목(神木)을 위하고, 신당을 짓거나 솟대를 세우고 제사를 지낸다.

[군산 지역의 마을신앙]

당산제는 마을 사람들이 음력으로 정초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이나 풍어를 기원하는 뜻으로 지내는 공동 제의를 말한다. 내륙의 평야 지역이나, 산악 지역의 당제는 신체(神體)의 대상이 마을 앞 입석(立石), 신목(神木), 조탑(造塔), 오리 솟대 등으로 되어 있는데, 군산 지역은 당집으로 되어 있다.

서해안을 끼고 있는 군산 지역의 당제는 제물을 제당에서 장만하게 되고, 무속적인 제의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특징이다. 군산의 당제는 20여 곳을 조사한 바 있으나, 지금은 거의 단절되었다. 여기서는 불타버린 당집을 다시 복원해서 당제를 지내려고 하는 군산 나포의 영신당제(靈神堂祭)를 비롯해서 군산시 옥구면 회현 죽동(竹洞)의 당제, 군산시 개야도(開也島)의 당제, 군산시 어청도(於靑島)의 치동묘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나포 영신당제(靈神堂祭)

군산에서 서북쪽으로 약 18.1㎞ 떨어진 나포면의 구 소재지 뒷산인 공주산(公主山) 중턱에는 70여 호의 주민들이 대를 이어 섬겨 오던 당집이 있다. 당집은 초가 단칸으로 되어 있으며, 마루에 올라서 당집 문을 열면 북쪽 벽의 중간에 선반을 지르고, 좌우측에는 곡식 한 말들이 독에다가 묵은 쌀을 가득 담아서 백지로 봉한 뒤에 뚜껑을 반드래기로 덮고서 이를 할머니와 할아버지 당산이라고 불렀다.

당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 날에 지냈으며, 경비의 일체는 마을 사람들이 부담하였다. 마을에서 제를 지내기 며칠 전부터 걸궁굿을 하며 돈이나 쌀을 거출하였다. 당제의 절차는 마을 사람들이 거둔 쌀이나 돈을 미리 당집을 지키는 당주집에 가져다주면 당주가 시장에 가서 제물을 사다가 정월 열 사흗날부터 음식 장만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샘에다가 금줄을 쳐서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물을 깨끗이 품어 낸 다음에 새로 고인 물을 길어다가 제물을 장만한다. 이때 당주는 목욕 재개를 함은 물론이었고 변소에 다녀온 옷은 입지 않고 청결하게 행동을 하였다.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은 마을에서 매년 궂은 일이 없고 마음씨가 고우며 음식을 잘 장만하는 할머니를 모셔다가 음식을 장만하고, 대가로는 품삯을 주거나 그해 일을 해 주기도 한다.

음식을 장만할 때는 일체 손을 대지 않고 그릇으로만 하되, 말도 하지를 않고 음식 맛을 보는 일도 없다. 정결하게 음식이 장만되면 당주는 정월 열 나흗날 밤 자정이 되어서 인기척이 없을 무렵에 혼자서 밥·떡·술·과일·전·돼지머리 등을 깨끗한 새 발채에다가 짊어지고 공주산으로 향하여 당집 뒤에 있었던 제단석의 넓다란 바위에다 차려 놓고 산신제를 먼저 지낸다.

이튿날 새벽 5시쯤에 바닷가에 있는 위안당제(慰安堂祭)인 각시당의 음식을 남겨 두고 깨끗한 새 발채에 다시 음식을 짊어지고 영신당으로 향한 후, 마을 할머니로 하여금 제물을 차려 놓게 한 다음에 좌우에 촛불을 켜놓고 소지를 올릴 준비를 한다. 이와 같은 진설이 끝나면 마을에서 제일 유식하고 그해 궂은 일이 없는 남녀노인이 제주가 되어 예로부터 전해오는 축문을 읽는다.

축문이 끝나면 술을 올리는데 이때 쓰이는 제주는 특별히 양조장에서 특주로 주문을 해다가 쓴다. 술을 올리고 재배를 하고 나서는 그해의 풍어와 풍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무병을 비는 축원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나이별로 들먹여 가면서 소지를 사른다. 이렇게 해서 당제가 모두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면서 하루 종일 즐겨 놀았다.

2. 옥서면 선연리의 수륙제

옥구 반도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선연리 하제 및 난산 마을은 서쪽으로 고군산 군도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포구가 발달했다. 포구가 있어 서해 갯벌에서 생산되는 어패류가 집하되었고 마을 사람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였으므로 어로행위 시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수륙제를 지냈다.

수륙제는 보통 포구에서 용왕에게 바치는 제례를 치르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며, 이때의 제례에는 해당 마을 뿐 아니라 인근지역의 주민들이 수륙제 소식을 듣고 찾아와 풍요과 안녕을 기렸다.

수륙제는 포구 부두에서 제례를 지낸 후 제례에 사용한 제사 음식을 나누어 배에 싣고 지역민들의 어로 행위가 이뤄지는 바닷가 한 복판으로 나아가 제사 음식을 뿌리고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였다.

3. 죽동의 당산제

마을의 뒷산 중턱 갈대밭 속에 정남향으로 지어진 당집이 눈에 잘 띄지 않게 자리하고 있다. 당집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마을의 평안과 무병을 기원하는 산제를 지내는데, 만약 정월 초사흘에 가축이 죽거나 아이를 낳거나 상을 당하는 등의 궂은 일이 있을 때에는 2월 초 사흘로 연기된다.

산제를 모시는 당집은 함석지붕뿐만 아니라 사면 전체가 청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당집의 크기는 1평반 정도의 정사각형이며 정면에는 외짝 여닫이문이 있다. 세장리는 3개의 자연 마을로 되어 있으며 이들 모두가 제비를 모아 음식을 장만하는데, 이때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은 찬물로 목욕을 깨끗하게 하고 밥을 먹지 않는다. 이는 변소 가는 것도 궂은일이라고 하여 피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변소에 다녀오게 될 때는 다시금 목욕을 한다. 그리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깐다. 또 침이 튀면 부정 탄다 하여 백지로 입을 봉하고 제물을 장만하는데, 쌀 서 되로 만든 떡·서 홉으로 지은 밥·빨간 장닭 한 마리를 잡고 2홉으로 식혜를 만들며, 명태 3마리·생미역 한 가닥·삼색 실과·나물 등을 장만한다.

음식 장만이 다 끝나면 마을 뒷산 봉영산(鳳英山) 중턱에 있는 산제당으로 제를 지내러 가는데, 이때에는 제를 위해 미리 선정된 축문을 읽는 사람·소지를 올리는 사람과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 3~4명이 산신당으로 간다. 소지로 쓰이는 백지에는 마을 전체의 남자들 이름을 적고 제가 끝날 즈음에는 여자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올라가서 나이순으로 축원을 하며 축문도 읽는다.

다만 남자일지라도 몸에 상처가 생기고 부정한 사람은 올라갈 수 없다. 얼마 전에 연애 중인 젊은 남녀가 산제를 지내고 아이를 낳아 바로 죽었다고 하며, 또한 동네 샘에 누런 기름이 떠 못 먹게 생겼는데, 산제를 지내는 날 샘 앞에 시루를 놓고 공을 드려 물이 맑아졌다고 한다.

4. 개야도 당제

개야도의 당산은 마을 뒷산 정상에 남향으로 위치해 있으며 매년 풍어와 부락의 안녕을 위한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다. 당집 주위에는 접근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팽나무, 소나무, 칡넝쿨이 우거져 있다.

당집 대문은 함석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정면 133㎝, 측면 141㎝이다. 대문에서 3m 가량 떨어진 곳에 당집이 있는데, 블록조 팔작 함석지붕으로 적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당집은 원래 초가이었는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 의해 소실된 뒤 다시 지은 것이다.

당집의 크기는 정면 168㎝, 측면 256㎝이며, 두 짝의 함석 문이 설치되어 있다. 정면 좌측에는 제물을 준비하던 아궁이가 있다. 당집의 담은 높이 110㎝, 길이 125㎝의 자연석으로 축조되었다. 당집은 평소에도 마을 사람들 역시 신성시하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개야도에서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 날에 당주를 선정하는데 동네 앞 네거리에서 경을 읽어 부정치 않은 집을 가려 제주를 뽑는다. 일단 선정된 제주는 임의로 바꾸거나 거절할 수 없다. 과거에 임의로 거절했다가 정신 이상이 되거나 반신불수가 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선정된 제주는 집에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무기한으로 계속 당주 일을 보게 되며, 임기 동안에는 평상시에도 부정한 곳이나 부정한 일에는 관여치 않는다. 당주를 선정한 다음날 정월 초하루부터 선주들에게서 성의금이라는 명목으로 제비를 걷는다.

정월 초엿새가 되면 제를 지낼 때 사용될 술을 담그고, 정월 초이레가 되는 날은 당집의 안팎을 깨끗이 청소한다. 그리고 정월 열이틀에는 제주, 화주, 뱃사람 셋이서 제물을 구입하러 간다.

과거에는 서천장을 이용했는데 요즈음에는 군산장을 이용한다. 이들이 장에 가기 전이나 제물을 구입하고 난 뒤에도 항상 목욕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준비해온 제물을 청소를 마친 당집에 보관하여 놓았다가 정월 열 나흗날 낮에 제물을 장만한다.

그런데 청소하기 전 당집에 많이 들끓던 쥐들도 제물을 구입해서 당집에 갖다 놓은 뒤로는 전혀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열 나흗날 저녁 늦게 제를 지내게 되는데, 대상신은 본당 대부조 신위[당산 할아버지]·대부인 신위[당산 할머니]·소문부인 신위[당산 할아버지의 소첩]·임씨 신위·임씨 부인 신위[당산 할아버지를 돕던 부부] 등 다섯 신이다. 이때에 사용되는 제물로는 소머리·조기·마른 명태·삼색 실과 등이 쓰인다.

제사는 십오일 아침 일찍 끝나게 되는데, 끝날 즈음 당주가 소지 받으러 오라는 신호로 징을 치면 선주들은 당집으로 올라와서 당제를 지내고 난 쌀을 받아다가 ‘뱃고사’를 지낸다. 이를 용왕제라고 하는데 선주들이 각자 종이에 제를 지낸 음식을 한 움큼씩 싸서 선원들에게 분배한다.

음식을 받은 선원들은 각자의 몫을 바다에 내던진다. 이때 음식물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떠오르기도 하고 가라앉아 버리기도 하는데,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라 포장했던 음식이 풀어져서 주위에 퍼지면 그것을 던진 사람은 한 해 동안 운이 없다고 점을 치기도 한다.

정월 보름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 네거리에 모여서 ‘거리제’를 지낸다. ‘거리제’는 그해 마을의 안녕과 풍어, 풍년과 아울러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제일이 다가오면 당집과 당주집 주위에는 황토를 세 곳에 뿌려 놓으며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치기도 한다.

5. 어청도 치동묘제(淄東廟祭)

어청도 마을 중앙에 전황 장군의 사당이 있다. 사당은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면 365㎝, 측면 250㎝, 주고 185㎝로 9개의 사각기둥이 떠받치고 있으며, 처마에는 13개의 사각 기둥이 세워져있다. 건물 정면에는 가로 51㎝, 세로 106㎝의 여닫이 두 짝 문이 있으며, 문 양 측면에는 가로 세로 37㎝의 쌍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내부 중앙에는 전황 대감 영정 1점이 걸려 있으며, 양 측면에는 2점의 부장 영정이 걸려있다. 그리고 내부에는 시루 2개, 편틀 6개, 목기 20점, 반대기 5개, 용대기 1점 등 제기 일습과 사면에 벽화 등이 보존되어 있다.

사당 전체를 187㎝ 높이의 돌담이 둘러싸고 있으며 정면에는 솟을 대문이 달려 있는데, 문의 크기는 가로 69㎝, 세로 167㎝의 두 짝 빈지 쌍살문이다. 문 중앙에는 태극 마크가 새겨져 있고 문 위에는 가로 67㎝, 세로 39㎝의 편액에 ‘치동묘’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당제는 매년 세 차례 행해지는데, 먼저 3월 보름에 지내는 제의를 ‘도신’이라고 부른다. 이때에는 채소류·삼색실과·떡 등을 제물로 해서 제를 지내며 육류는 전혀 사용치 않는다. 제비는 배를 가진 선주들과 마을 집집에서 거둔 돈으로 직접 제주가 충청남도 대천 시장에 가서 구입해 온다.

제의는 통상 사흘간 행해진다. 첫째 날은 당산 주위를 청소하고, 둘째 날은 제장 아래 마련된 '막태'라는 곳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셋째 날에는 마을에서 소동이 받들고 온 새 옷을 갈아입고 제사를 지낸다.

제주가 징이나 꽹과리를 울리면서 제를 지내는데, 당제를 지내는 동안에 마을에서도 집집마다 제상을 마련하여 선영의 제사를 지낸다. 제사에서는 한 해 동안의 무사를 빌면서 특히 조난이나 실패 없기를 비손한다. 이때에는 육지에서 무당이나 법사 등을 데려다가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소지는 집집마다 따로 태워 올린다.

제를 지낸 이튿날 아침에는 마을의 모든 남자들이 목욕 재개하고 한복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갓을 쓰고 당산에 오른다. 다시 마을로 내려올 때에는 농악을 치면서 내려오며 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물은 모두 제주의 집에 가져가고, 제주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을 중앙에 위치해 있는 신당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황소를 잡고 제물을 다시 준비해서 이틀간 제사를 지낸다.

파제 날에는 다시 음식을 준비하여 용왕제를 지내는데, 이때에는 판자 쪽으로 띄배를 하나 만들어 음식을 싣고 촛불을 밝혀 먼 바다에 띄워 보낸다.

제를 지내기에 앞서 제일이 정해지면 마을 안에 있는 임신부들은 마을 뒤쪽 막바지에 있는 산막으로 보내져서 해산케 한다. 산막은 방 2개, 부엌 하나로 되었다. 늘 관리하는 사람이 상주해 있어서 해산을 도와주며, 산부는 당산제가 끝나고 ‘세 이레’[21일]가 지나면 내려온다.

8월 14일에는 ‘신미찰’이라 불리는 당제가 행해지는데, 이때에는 제주 집에서 제물을 준비하여 저녁 무렵에 간단히 행하며 제가 파한 뒤에는 용왕제를 지낸다.

끝으로 섣달 그믐 날에는 ‘채담’이 행해지는데, 이때에도 역시 제주가 중심이 되어 간단한 제사가 행해진다.

6. 그 외 마을신앙

군산 지역의 그 외 마을신앙으로 신흥동에서는 뒷산인 차독산의 흰 바위를 신체로 삼아 음력 정월 16일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를 치러 왔으나 최근에 그 맥이 끊기었다. 장항리[송풍동] 지역에도 당산이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 금광동 삼성 아파트 고개[구 형무소 고개]가 조선 시대에는 서낭당 고개라 불렸던 점을 볼 때, 이곳 역시 당산의 다른 이름인 서낭당이 고갯마루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누석단’이라 불리는 돌무더기와 수백 년 묵은 당산나무도 함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소룡동에도 당집이 있었으며 은적사 근처의 과거 예비군 훈련장[현재 체육공원] 자리에도 무속인의 기도처가 있었고, 군산 대학교가 자리한 미룡동에도 서낭당이 있었다.

옥서면에는 크게 당산제와 거리제 그리고 용왕제와 수륙제가 있었다. 당산제는 동네 뒷산 당산에서 제를 지냈으며, 거리제는 동네 입구의 큰 다리나 신작로에서 제사상을 차리고 무탈을 기원하는 의미로 제사를 지냈다. 용왕제는 배를 가지고 있어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한해서 용왕에게 제를 지냈다.

한편 옥서면에서 특이한 마을신앙은 수륙제이다. 수륙제는 천지신명과 용왕에게 제를 지내는 것으로 1980년대 초까지 존재했다. 수륙제를 지내게 되면 면단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서 제를 지냈으며 6·25 전쟁 당시 수륙제를 지낸 옥서면 일대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고, 이에 참여하지 않은 당시 옥구읍 미면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는 말이 전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