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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929
한자 食生活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조종안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개설]

한민족(韓民族)은 석기 시대부터 식량 자원이 풍부한 해안이나 강변에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야생 식물의 열매와 뿌리, 잎 등을 채취하거나 야생 동물을 사냥하여 육류를 얻었고, 강이나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류를 채집하며 생활하였다. 그리고 국가가 세워지면서부터는 계층[귀족 음식, 서민 음식]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주식(主食)과 부식(副食)이 분리되었다.

삼국 시대에 벼농사가 정착되고, 경작을 통해 생산된 곡식과 농작물이 식생활의 근간을 이루면서 발효 식품과 저장 식품이 발달하였다. 고려 시대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의 완성기로 사찰 음식과 차(茶) 문화가 성행하였다. 주막의 등장으로 외식 문화도 생겨났다. 조선 시대는 한정식의 완성기로 임진왜란 후에는 고추가 전래되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김치를 담가먹기 시작했다.

서해를 바라보며 금강만경강 하구 사이에 자리한 군산은 1995년 옥구군과 통합, 도농 복합 도시가 되었다. 군산·옥구 두 지명에 담긴 뜻을 풀이하면 ‘산[구릉]이 무리를 이루는 도시’와 ‘비옥한 토지[옥구 평야]로 이루어진 농촌’이 합한 모양새다. 지명에 나타나듯, 군산은 예로부터 농수산물이 풍부해 음식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군산은 조개더미[패총]가 국내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으로 알려진다. 조개더미는 해안이나 강변에 촌락을 이루고 살았던 선사 시대 사람들이 굴이나 조개를 까먹고 버린 쓰레기 더미를 일컫는다. 군산의 선사 시대 흔적인 조개더미는 어족 자원이 풍부했고, 농사짓기에 적합한 풍토와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던 지역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군산 앞바다[고군산 군도]는 조선 시대 최대 어장이었다. 1424년(세종 25)에 발간된 『호남지(湖南誌)』와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관방수어조’는 군산 앞바다와 금강, 만경강 등에서 잡히는 60여종의 수산물 중에 조기, 조기알, 오징어, 말린 대하(大蝦), 중화, 준치, 조기알, 건숭어, 숭어포 등을 진상품 또는 진공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옥구·임피에서 재배한 다양한 농산물은 지역 특산품으로 선정되어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1486년(성종 17)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지역의 자연 환경을 반영하듯 염[소금], 방풍[미나리] 등이 나온다. 이밖에 오곡[쌀·보리·콩·조·기장], 밀, 목화, 대나무, 밤, 마(麻), 뽕, 명주, 감, 배(柿), 사과, 매실, 잣, 꿀, 옻 등의 농산물과, 모래무지, 굴, 정어리, 굴비, 오징어, 민어, 농어, 황새기[황석어], 잉어 등의 어류를 토산품으로 명시하고 있어 일찍부터 황석어젓을 담가먹었음을 엿볼 수 있다.

1530년(중종 10)에 완성된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대하[큰 새우], 대해[큰 게], 자하[자주색의 작은 새우], 석수어[조기], 합[백합 조개], 토화[갯벌의 굴], 전어, 홍어, 진어[준치], 수어[숭어], 즉어[도미], 위어[웅어, 우여], 차[녹차], 강[생강] 등을 옥구현 토산품으로, 검[가시연밥], 해[게], 즉어[도미], 백어[뱅어], 진어[준치] 등을 임피현 토산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초 발행된 『한국 수산지(韓國水産誌)』 1권은 군산, 옥구 지방 해역에서 도미, 준치, 민어, 가자미, 조기, 갈치, 삼치, 농어 등의 각종 어장이 형성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지역 어부들이 조선 전기 세종 때부터 칡넝쿨을 그물 형태로 엮은 기구와 대나무로 만든 발[죽방] 등으로 고기를 잡아 진상했던 것으로 미루어 주민들의 식생활도 육류[쇠고기, 돼지고기]보다는 수산물을 재료로 하는 음식[생선찌개, 생선탕, 젓갈류]가 발달해왔음을 추정할 수 있겠다.

[일상 음식]

군산은 일찍부터 수운(水運)이 발달했고, 100~200m 안팎의 구릉지와 산지가 연꽃잎처럼 둘러싸고 있어 농산물도 풍부했다. 또한, 선박 대피와 수산물 양식·양어에 유리한 리아스식 해안과 주변에 크고 작은 섬이 많고, 한반도 식량 창고라 일컫는 호남평야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좋은 자연 환경을 갖추었다. 따라서 군산[옥구·임피]은 각종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해 일찍부터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쌀 수탈이 늘어감에 따라 외지 상인들과 노동력 하나만 믿고 맨손으로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부둣가와 시내에는 크고 작은 요릿집과 대폿집이 생겨났다. 1920년대 신문에 소개되는 개복동의 평양관[한정식]과 영정의 명월관[요리점], 평화동 농방 골목 입구에 있던 강경옥[냉면 전문] 등이 예가 되겠다.

수많은 식당이 명멸하는 가운데 조기탕, 복탕, 민어탕, 홍어탕, 대구탕, 대하탕, 서대탕, 우럭탕, 아귀탕 등 생선을 재료로 하는 식당들은 1945년 해방 후에도 성업을 이루었다. 19 60~1970년대 이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우럭탕과 아귀탕, 아귀찜 등은 오늘날 꽃게장, 생선회 등과 함께 외지인들도 즐겨 먹는 군산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생선을 이용한 음식으로는 생선국, 생선 고추장 조림, 생선 고추장찌개, 생선국수, 생선냉채 조림, 생선구이, 생선볶음, 생선적, 생선전, 생선전골, 생선 절임. 생선조리개, 생선 조림, 생선 지짐이, 생선찜, 생선포찜, 생선탕 등 매우 다양하며, 군산에서 가장 발달한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시절 음식]

시절 음식이란 중요한 절기 및 계절에 평소와는 다르게 섭취하는 음식을 말한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었다. 어느 가정에서나 끓여 먹는 음식으로 먼저 사당에 놓아 차례하고 방, 마루, 대청, 광에다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가는 수저로 뿌린 다음에 먹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이 집안의 액을 막고 잡귀를 쫓아준다는 믿음에서 하는 것이다. 옛 부터 붉은색은 축귀의 기능이 있다고 믿어왔는데, 이러한 믿음은 고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공공씨(共工氏)는 불초자(不肖子)를 두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疫鬼)가 되었다. 그런데 이 역귀는 팥을 무서워하고 동짓날 죽었음으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귀신을 쫓는 풍습이 생겼다고 본다.

[명절 음식]

명절이 되면 군산 지역에서도 일상과 다른 음식을 섭취하였다. 에는 떡국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했고, 시루떡을 만들기도 하였다. 추석에는 송편을 빚어서 제사를 지내는데, 송편 외에 시루떡이나 다른 여러 가지 종류의 떡도 준비했다.

특히 추석에는 햅쌀로 밥을 지으며, 떡도 하고 술을 빚는다. 송편 속에는 햇콩으로 만든 고물이나 참깨, 밤, 대추 등을 넣는다. 햅쌀로 빚은 술을 신도주(新稻酒)라고 하는데 추석차례나 손님을 청하여 대접할 때도 이 술을 쓴다.

[절기 음식]

대보름 날의 절식(節食)으로는 햅찹쌀에 밤·대추·꿀·기름·간장 등을 섞어서 함께 찐 후 잣을 박은 약반(藥飯)을 준비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 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조’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 가 왕을 깨닫게 하여, 우리 풍속에 보름날 까마귀를 위하여 제사하는 날로 정하여 찹쌀밥을 지어 까마귀 제사를 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라 한 것으로 보아 약반 절식은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풍속이다. 이 약반은 지방에 따라 오곡밥·잡곡밥·찰밥·농사밥 등을 그 대용으로 즐기기도 한다.

삼복에는 복중(伏中)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술과 반찬을 마련하여 산과 하천을 찾아가 하루를 즐긴다. 복중에 자주 찾는 음식으로는 보신탕을 들 수 있다. 보신탕을 먹게 되면 귀신을 방지한다고 하며, 더위를 쫓을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보리밥이 곁들여 진다. 또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과 대추 그리고 찹쌀을 넣고 삶아 먹는 삼계탕을 먹는데, 이는 여름철에 더워서 땀을 흘리게 됨으로 원기를 회복시켜주고 아울러 더위를 잊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일제 강점기 군산의 요식업소]

1899년 5월 1일 개항한 군산은 일본인만 몰려온 게 아니었다. 농지를 빼앗긴 인근 지역 농민들이 부둣가 노동자나 정미소 미선공이라도 해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몰려왔고, 1945년 해방 후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정착하였다. 그러한 연유로 ‘3대째 터를 잡고 사는 집안이 없는 도시’라는 말이 나돌기도 하였다. 일찍이 외식 문화가 발달하고, 식당 간판에서 타 지역 지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그에 연유한다.

1899년 개항 전 군산에는 조선의 경제를 움직였던 객주 90여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막(酒幕), 여각(旅閣) 등을 운영하며 군산 죽성포[째보선창]을 거점으로 각종 무역을 했던 객주들은 상권을 지키기 위해 회사[순흥사, 창성사 등]을 설립하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국채 보상 운동을 추진했다. 물론 죽성포의 번창은 지역의 식생활 변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서양 선교사들의 학교 설립과 일제 식민 통치가 시작되는 1910년을 전후해서 외식 문화도 변화가 일어난다. 주막이 서서히 사라지고, 음식점 간판이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영동 입구에 자리한 강경옥[냉면 전문]과 중앙로 2가에 있던 평양관[한식당]은 1920~1930년대 호황을 누렸다. 또, 고급 안주[신선로, 갈비찜, 화채 등]가 차려나오는 요릿집도 명월관, 취향관, 원료정 등 여러 곳 있었는데, 일본인들도 출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10년대 들어 거리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1920년대 후반에는 중앙지 신문사 지국들이 주최하는 서양 요리 강습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요리 강습회 참석자는 대부분 신여성으로 부잣집 가정 주부였다. 카페는 지금의 중앙로 1가명산동 유곽 근처에 여러 곳 있었는데, 실내에는 서양 음악이 흐르고, 맥주와 커피, 돈가스, 오므라이스, 런치 정식 등을 팔았으며, 세련된 마담이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알려진 이성당[이즈모야]도 1906년 일본에서 건너온 히로세 야스타로에 의해 1910년대 초 찹쌀 과자[아라레] 전문점으로 출발했다. 1930년대부터 팥빵을 비롯해 크림빵, 과자빵, 식빵, 떡, 센베이 과자 등을 팔았고, 커피, 런치 정식, 돈가스, 오므라이스 등 서양 요리를 취급하는 양식당도 겸했다. 일제 강점기 군산에는 이즈모야 외에 개성당, 조화당 등 제과점이 여러 곳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화교(華僑)가 운영하는 중화 요리점도 1920년을 전후해 등장한다. 가장 오래된 중국집으로는 화강 정미소 입구[지금의 장미동]에 있던 평화원과 영동의 홍승루로 알려진다. 한창 때인 1960~1970년대는 영월각, 동해루, 영취루, 쌍성루, 중앙각, 빈해원 등 40곳이 넘었으나 지금은 6~7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화교들이 간판도 없이 운영하던 호떡집과 빵집도 여러 곳 있었으며 호황을 누렸으나 1960~1970년대 이후 업종을 변경하거나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 군산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변두리나 산비탈에 토막을 짓고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개인 쌀 소비량은 일본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부족량은 만주에서 들여온 잡곡으로 충당했다. 1940년대에는 콩깻묵도 배급받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웠다. 우리네 부모들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좀도리쌀’을 모았다가 제사와 명절 때 떡과 술을 빚어 충과 효의 기본이 되는 전통 풍습을 지켜왔다.

1945년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군산에서 호황을 누렸던 식당으로는 한성옥[한정식], 생선옥[생선요리], 평화집[생선탕], 김천옥[생선탕], 완주옥[떡갈비], 풍원식당[생선요리], 가시리[생선탕], 청춘옥[한정식], 화신옥[생선탕], 명산옥[생선요리], 신생그릴[양식], 경산옥[아귀찜], 평양옥[냉면], 압강옥[평양식 쟁반], 삼승식당[일식], 유정초밥[일식] 등이 있었다.

군산 지역 주민들은 쇠고기를 재료로 하는 곰탕이나 갈비탕보다 생선탕[조기탕, 복탕, 민어탕, 홍어탕, 대구탕, 대하탕, 서대탕, 우럭탕, 아귀탕 등]을 즐겨 먹었다. 특히 1960~1970년대 이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우럭탕과 아귀탕, 아귀찜 등은 오늘날 꽃게장, 생선회 등과 함께 외지인도 즐겨 찾는 군산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1.12 집필자 수정 김중규->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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