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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719
한자 拳鬪
이칭/별칭 금메달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0년 - 군산 구락부 신설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5년 6월 - 제2회 조선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 개최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6년 - 손용 대명동에 권투 도장 개장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9년 5월 22일 - 제2회 권투 시합 개최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5년 - 손용 제자-김완수 관장 둔율동 복싱 체육관 개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0년 - 복싱 체육관 영화동 군산 종합 체육관으로 이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8년 - 복싱 체육관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동으로 이전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두 명의 선수가 글러브를 양손에 끼고 링 안에서 서로 치고받는 스포츠.

[개설]

글러브를 끼고 1라운드 3분, 1분 휴식을 취하는 오늘날의 권투는 19세기 말 정착됐다.

[해방 이전 군산의 권투]

군산의 권투는 1930년대에 군산 권투 구락부가 만들어져 선수들이 각지에서 개최되는 권투대회에 참가하였다. 1935년 6월에는 조선 아마추어 권투 연맹과 조선 체육회가 공동 주최한 제2회 조선 아마추어 권투 선수권 대회에 플라이급, 밴텀급, 페더급, 라이트급, 웰터급, 미들급 선수를 출전시켰다.

[해방 이후 군산의 권투]

일본에서 관서(關西) 프로 권투 선수권 보유자로 활동하던 손용(孫勇)이 1946년 귀국하여 시내 대명동에 권투 도장을 마련하고 후진을 육성했다. 1947년 서울 권투 구락부 소속 선수들을 초청하여 경기를 치렀으며, 군산 체육회 권투부는 1949년 5월 22일 군산 공설 운동장 특설 링에서 제2회 권투 시합을 개최했다. 30명의 선수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플라이급 허길용, 밴텀급 이제동, 페더급 최태봉, 라이트급 김용성이 우승했다.

1955년에는 손용의 제자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권투를 시작, 중앙 대학교 재학 시절 전국학생 선수권 대회와 전국 체전에서 우승[밴텀급]하며 정상급 선수로 활동하던 김완수 관장이 둔율동에 복싱 체육관을 개관하여 운영했다. 1960년대 초에는 영화동 군산 종합 체육관으로 옮겼다가 1968년 군산시 월명동 월명산 아래에 터를 잡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0~60년대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프로는 '권투', 아마추어는 '복싱'이라 칭했고, 복싱 체육관 운영이 어려웠다. 군산에서는 3선 의원을 지낸 김판술[전 농림부 장관], 전기배[전치과 원장], 안형채[만수 병원 원장], 차형근 변호사[전 국회 의원]와 개정 병원 이영춘 박사 등의 지원과 시민이 후원회를 조직하여 권투 도장을 끌어갈 수 있었다.

김완수 관장 아래에서 이름을 떨친 선수는 박구일[1965년~1969년 아시안 게임 라이트 웰터급 금메달], 이원석[아시아 선수권 플라이급 챔피언. 1965년 프로 전향, 밴텀급 동양 챔피언 5차 방어 성공, WBA 1위], 서상영[1965년 아시아 선수권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황영일[1965년 아시아 선수권 밴텀급 챔피언], 김세일[1966년 한·일 친선 고교 복싱 대회 플라이급 우승] 등이다.

또한 김현호[1977년 아시아 선수권 슈퍼 헤비급 챔피언]에 이어 김의진[1977년 아시아 선수권 라이트 미들급 챔피언], 곽동선[제6회 킹스컵 국제 복싱 대회 밴텀급 우승], 오영호[제13회 킹스컵 국제 복싱 대회 라이트 플라이급 우승], 유성룡[제1회 한국·오키나와 교환 경기 라이트급 우승] 등이 각종 국제 대회에서 활약하며 군산의 권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았다.

군산 복싱 체육관에서 배출된 수련생은 9,800여 명에 달하며 이들 중 국제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27명, 입상은 아시아 복싱 대회 금메달 1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이며 전국 복싱 대회에서는 370여 명이 입상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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