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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047
한자 入鄕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두헌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군산 지역[조선 시대 옥구현임피현]에 세거한 성씨들의 입향조.

[개설]

입향조는 조선 시대 각 지역에 거주한 성씨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항상 가문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곧, 이들은 항상 가문 안에서 존재하였다. 어느 한 개인의 사회적인 출세는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만이 아닌 각 개인이 속한 가문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도 좌우되었다. 각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인물이 바로 입향조였다.

입향조는 지역 사회에 거주하는 어느 한 가문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상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입향조는 각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대표하였다.

[내용]

조선 시대 옥구현임피현에 적어도 2백년 이전 무렵에 이주하여 온 각 성씨들의 파(派)로 현재 40여 개 파가 확인되었다. 이들 파중에는 성관(姓貫)이 같다하더라도 옥구현임피현에 이주한 시기가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 서로 입향조를 달리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파(派)는 옥구나 임피로 최초 이주하여 온 입향조를 같이 하는 가문을 의미한다. 옥구와 임피로 이주하여 온 이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진 파(派)가 아니다.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된 조선 시대 옥구현임피현에 거주한 각 성씨들의 입향조[이들 중에는 파시조도 있음]는 다음과 같다.

[옥구현의 입향조]

조선 시대 옥구현 지역에 이주한 성씨들의 입향조들이다. 태조 조에 위사공신이며 전라 어사(全羅御史)를 지냈으며 온양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진주 강씨(晉州姜氏) 어사공파(御史公派)를 형성한 강원전(姜元鐫), 12세기 중엽 중앙의 고위 관리로 있다가 다른 고위 관리의 시기와 모함을 받고 오식도로 유배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배가 풀리지 않자 그대로 옥구에 머무른 이후 그 후손들이 제주 고씨(濟州高氏) 문충공파(文忠公派)를 형성한 고돈겸(高惇謙), 제주 고씨 고돈겸의 후손들 중에 옥구에 거주하는 제주 고씨(濟州高氏) 참의공파(參議公派)의 파시조가 되는 고의충(高義忠) 등이 있다.

16세기 중반에 처가(妻家)가 있는 옥구로 이주한 광산 김씨(光山金氏) 경력공파(經歷公派) 옥구파(沃溝派)의 입향조 김덕양(金德良), 진사에 합격하고 증직으로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수여받고 15세기 중엽에 회현면 학당리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경주 김씨(慶州金氏) 호조참의공파(戶曺參議公派)를 형성한 김생수(金生水), 통덕랑(通德郞)과 한성 판관(漢城判官)을 지냈으며 15세기 후반 경에 고산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안동 김씨(安東金氏) 문온공파(文溫公派)를 형성한 김윤경(金允勁), 병사(兵使)을 지냈으며 15세기 중엽에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개성 김씨(開城金氏) 쌍봉리파(雙鳳里派)를 형성한 김윤신(金允信) 등이 있다.

17세기 전반 순천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고성 김씨(固城金氏) 초당공파(草堂公派)를 형성한 김응두(金應斗),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냈으며 15세기 후반에 서울에서 무장으로, 다시 무장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김해 김씨(金海金氏) 장사군파(長沙君派)를 형성한 김자진(金自珍), 16세기 전반에 정읍에서 처가(妻家)가 있는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선산 김씨(善山金氏) 백암선생파(白巖先生派) 옥구파(沃溝派)를 형성한 김중견(金仲堅), 태종 조에 병마우후(兵馬虞候)를 지냈으며 15세기에 만경에서 옥구현으로 입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회현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두릉 두씨(杜陵杜氏) 가문을 형성한 두승손(杜承孫), 전주 판관(全州判官)을 지냈으며 증직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 판서(戶曺判書)를 수여 받고 15세기 전반에 단성에서 옥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남평 문씨(南平文氏) 시중공파(侍中公派)를 형성한 문헌(文獻) 등이 있다.

16세기 말에 서울에서 옥구현 옥구읍 석화리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밀양 박씨(密陽朴氏) 정재공파(貞齋公派) 송은공파(松隱公派)를 형성한 박세현(朴世賢), 15세기 중반에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광주 반씨(光州潘氏) 판서공파(判書公派)와 참의공파(參議公派)를 형성한 반잠(潘岑)반서룡(潘瑞龍),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지냈으며 16세기 중엽에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대구 서씨(大丘徐氏)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를 형성한 서경무(徐景茂),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지냈으며 16세기 중엽에 과천(果川)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여산 송씨(礪山宋氏) 정가공파(正嘉公派)를 형성한 송감(宋瑊), 16세기 중엽에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회현면평산 신씨(平山申氏) 제정공파(齊靖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를 형성한 신겸(申謙),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지냈으며 15세기 전반에 서울에서 옥구현 회현면 세장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장흥 오씨(長興吳氏) 한성 판윤공파(漢城判尹公派)를 형성한 오자화(吳自和), 16세기 전반에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경주 이씨(慶州李氏) 상서공파(尙書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를 형성한 이몽원(李夢黿) 등이 있다.

16세기 중엽에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평택 임씨(平澤林氏) 평원부원군파(平原府院君派) 목사공파(牧使公派)를 형성한 임덕온(林德溫), 18세기 후반에 성주에서 옥구현으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인동 장씨(仁同張氏) 가문을 형성한 장수각(張壽珏), 15세기 전반에 적성현에서 옥구로 이거한 후 후손들이 옥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인동 장씨 장천열(張天烈), 성종 조에 군산진 만호로 좌천된 것이 계기가 되어 옥구에 거주한 후 후손들이 담양 전씨(潭陽田氏) 참판공파(參判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를 형성한 전윤평(田允平), 16세기 중엽에 만경에서 옥구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충주 지씨(忠州池氏) 의재공파(毅齋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 옥구파(沃溝派)를 형성한 지성해(池成海), 장사랑을 지냈으며 18세기 전반에 옥구에 이주한 후 후손들이 강릉 함씨 옥구 옥산파를 형성한 함여천(咸如天) 등이 있다.

[임피현의 입향조]

조선 시대 임피현 지역에 이주한 성씨들의 입향조들이다. 사직공(司直公) 고인충(高仁忠)의 고손으로 어머니 광산 김씨(光山金氏)를 대동하고 16세기에 고모부가 거주한 임피현 내의 갈운리[고모부는 주곡리에 거주하였다.]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제주 고씨(濟州高氏) 문충공파(文忠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를 형성한 고덕령(高德齡), 15세기 중엽에 임피 옥곤리(玉崑里)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개성 김씨(開城金氏) 옥곤리파(玉崑里派)를 형성한 김맹의(金孟義), 17세기 전반에 임피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포산 곽씨(包山郭氏) 진사공파(進士公派) 임피파(臨陂派)를 형성한 곽손(郭遜), 통훈대부(通訓大夫) 천안 군수(天安郡守)를 지내다가 해남 유배지에서 해배한 이후 임피현 동면 구산(龜山)에 거주한 이후 후손들이 김해 김씨(金海金氏) 도사공파(都事公派)를 이룬 김유성(金有聲) 등이 있다.

이조 판서(吏曺判書)를 지냈으며 안동에서 처가(妻家)가 있는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안동 노씨(安東盧氏) 이조판서공파(吏曺判書公派)를 형성한 노윤적(盧允迪), 16세기에 임피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에 동성촌을 형성하며 세거한 남평 문씨(南平文氏) 임피파(臨陂派)의 입향조 문희(文熙), 16세기 중엽에 용인에서 임피현 동일면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창녕 성씨(昌寧成氏) 좌랑공파(佐郞公派)를 형성한 성수번(成秀蕃),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수원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청송 심씨(靑松沈氏) 양지공파(陽智公派)를 형성한 심숙(沈淑), 고려 말에 옥구현 동쪽 풍촌리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개정면 일대에 세거하며 남원 양씨(南原梁氏) 이조판서공파(吏曺判書公派)를 형성한 양의생(梁宜生) 등이 있다.

16세기 중반에 평택에서 임피현 성산면 여방리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원주 원씨(原州元氏) 삼사좌윤공파(三司左尹公派)를 형성한 원호(元昊), 18세기 후반에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에 거주하는 원주 원씨(原州元氏) 음성공파(陰城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를 형성한 원인원(元仁彦),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전주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전주 유씨(全州柳氏) 호은공파(壺隱公派)를 형성한 유서정(柳瑞井), 16세기 무렵에 전주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중공파(侍中公派) 문정공파(文正公派) 임피(臨陂) 남산파(南山派)를 형성한 이계윤(李戒胤) 등이 있다.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한산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한산 이씨(韓山李氏) 직장공파(直長公派)를 형성한 이기주(李箕疇), 16세기 전반에 기묘사화로 임피현으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전주 이씨(全州李氏) 익안대군파(益安大君派)를 형성한 이맹인(李孟仁), 15세기에 전주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중공파(侍中公派) 황강공파(黃崗公派)를 형성한 이보인(李保珚), 15세기 말에 예산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전의 이씨(全義李氏) 전서공파(典書公派)를 형성한 이수인(李守仁), 16세기 중엽에 전주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후 그 후손들이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중공파(侍中公派) 문정공파(文正公派) 임피 성동파(臨陂城東派) 취남파(鷲南派)를 형성한 이화(李華), 증직(贈職)으로 호조 참판을 받았으며 16세기 후반에 함열에서 임피현 대야면 산월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풍천 임씨(豊川任氏) 낙안공파(樂安公派)를 형성한 임홍(任鴻) 등이 있다.

15세기 전반에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인동 장씨(仁同張氏) 봉상파(鳳顙派)를 형성한 장천붕(張天鵬), 16세기 전반에 김제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평산 조씨(平山趙氏) 충정공파(忠貞公派)파를 형성한 조침(趙琛), 고려가 멸망하자 함께 임피현으로 은거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에 세거하면서 각각 평강 채씨(平康蔡氏) 소감공파(少監公派)와 목사공파(牧使公派)를 형성한 채양생(蔡陽生)채지생(蔡智生), 15세기에 경기도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에 세거한 경주 최씨(慶州崔氏) 최근운(崔墐雲), 15세기 중반에 고산에서 처가(妻家)가 있는 임피현으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탐진 최씨(耽津崔氏) 임피술산파(臨陂戌山派)를 형성한 최자호(崔自浩)최자호(崔自浩)의 동생이며 고산에서 임피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임피현령파(臨陂縣令派)를 형성한 최자숙(崔自淑), 16세기 전반에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청주 한씨(淸州韓氏) 정랑공파(正郞公派)를 형성한 한우(韓遇), 15세기 말 16세기 전반에 처가가 있는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우주 황씨(紆州黃氏) 참판공파(參判公派) 임피파(臨陂派)를 형성한 황준(黃濬)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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