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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철도노동회 회관 퇴소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41
한자 群山鐵道勞動會會館退所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4년 12월 16일연표보기 - 군산철도노동회 회관 퇴소 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24년 12월 17일연표보기 - 군산철도노동회 회관 퇴소 사건 종료
성격 노동 운동
관련 인물/단체 군산철도노동회|군산 미선 조합

[정의]

1924년 군산철도노동회에서 사용하던 회관을 건물주 이중기가 비워달라는 요청에 맞서 대책을 세워 대응해 나갔던 사건.

[개설]

군산철도노동회는 박용(朴湧)의 철운 조합(鐵運組合)과 이동화(李東和)의 운수 조합(運輸組合)이 철도 노동 운동 단결을 목적으로 1924년 5월 26일 합병하여 설립된 사회주의 노동 운동 단체이다. 1931년 3월 해체되기 전까지 군산 노동 연맹회의 세포 단체로 활동을 하며, 일본인 운송 점주로부터 군산 지역 철도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과 수탈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간회 군산 지회가 설립된 이후에는 군산철도노동회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여 노동 운동과 민족 해방 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요 의사 결정은 정기·임시 총회를 통해 결정하였다.

회원은 군산역에 집산된 미곡을 하차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군산철도노동회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단체의 성격상 식민 당국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회원들의 수입에서 일정 부분 기부를 받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설립 초 사용하던 회관 퇴거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회원들이 기부금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회관 퇴거 문제에서와 같이 식민 당국의 간섭과 통제 이외에 친일 성향 인물들이 일제에 잘 보이기 위해 군산철도노동회에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군산철도노동회는 회원들이 힘을 합쳐 난관을 해쳐나가며 노동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 군산을 비롯한 전국의 노동 운동 단체들은 사회 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노동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단체에서는 한국인 노동자와 농민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야학 교육을 통한 교육 활동 및 강연회를 통한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일제 식민 당국은 감시와 견제를 통해 노동 운동 단체의 활동을 제약하였다. 특히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아 운영상의 어려움이 항상 뒤따랐다. 하지만 노동 운동 단체에서는 식민 당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활동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재정상의 문제는 회원들의 보조를 통해 해결해 나갔다.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 노동 운동 단체인 군산 미선 조합(群山米選組合)군산 철도 노동회도 마찬가지였다. 조합 사무실 신축 과정에 군산 미선 조합 조합원들은 건설 현장에 무임금으로 직접 참여하였고, 사용하던 회관에서 쫓겨날 위기에서 군산철도노동회 회원은 금연을 통해 기부금을 모집하였다. 이와 같이 일제 강점기 동안 노동 운동 단체의 운영은 회원들의 지원이 없으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과]

1924년 12월 16일 군산철도노동회의 사무소로 이용되고 있던 회관을 소유주인 이중기(李重基)가 자신의 사촌(四寸) 아들[堂姪]되는 이 씨를 시켜 회관 문짝을 철거하게 하였다. 그로 인해 군산 철도 노동회 회원들은 울분을 이기지 못함과 사회 제도의 불합리함을 성토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군산철도노동회 회관을 무조건 비우게 했던 이중기는 1920년 11월 20일 군산부 협의 회원(群山府協議會員)으로 선출된 인물로, 미곡상을 통해 부를 형성한 친일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

[결과]

군산철도노동회에서는 1924년 12월 17일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4가지 대책을 세웠다. 첫 번째, 1924년 12월 16일을 군산철도노동회 회치 기념일(會恥記念日)로 정한다. 두 번째, 회관 매수를 위해 단연(斷煙)을 실행하고, 매일 오전(五銭)씩 60일 동안 기부금을 조성한다. 세 번째, 이중기의 의견에 맞서 회관을 비우지 않는다. 네 번째, 1항~3항을 위반하는 회원에 대해서는 출회(黜會)시킨다.

위와 같은 대책을 세워 이중기의 요구에 대응한 군산철도노동회의 요구가 관철되었는지 아닌지 현재 자료가 발굴되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 다만 그 이후 『동아 일보』에 전해지는 군산철도노동회의 활동상을 보면, 그들의 대책이 반영되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군산철도노동회 회관 퇴소 사건은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 노동 운동 단체에 대한 식민 당국의 간섭과 통제를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이다. 일제의 간섭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군산 철도 노동회 회원들은 결속을 통해 대응해 나갔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 동안 노동 운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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