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28 |
---|---|
한자 | 寺刹 |
영어의미역 | buddhist temple |
이칭/별칭 | 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집필자 | 무공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라서 생활하며 불법을 익히는 장소.
[불교 전래와 칠불암]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는 북방 전래설(北方傳來說)과 남방 전래설(南方傳來說)이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북방 전래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북방 전래설에 따르면 불교는 중국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으로 수용되었는데, 372년(소수림왕 2) 전진의 아도와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들어와 고구려에 불법을 전한 것이 시초이다.
한편 남방 전래설은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가 오빠인 장유화상과 함께 가락국으로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되면서 시작된다. 허황옥 왕비는 수로왕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7왕자가 외삼촌인 장유 보옥선사를 따라서 출가하여 지금의 지리산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 있는 칠불암(七佛庵)에서 성불하였다는 기록이 김해에 있는 장유암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駕洛國師長遊和尙紀蹟碑)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선종의 전파와 쌍계사]
칠불사가 남방 불교 전래의 중요한 유적이라면, 쌍계사는 우리나라 선맥(禪脈)이 흐르기 시작한 곳이 된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공간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전파되었다. 그래서 전파된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파 중 하나인 선종(禪宗)은 인도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면서, 중국의 도가적(道家的) 특성이 더해져 특별한 불교 수행 체계로 완성된 것이다. 더구나 선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조사선(祖師禪)’은 불교의 모든 이론과 실제가 총괄적으로 집약된 수행 체계이다.
이 수행법은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하였으며, 그 후 육조혜능(六祖慧能)까지 스승과 제자가 일대일로 마주앉아서 법을 전하면서, 그 법맥이 실에 매달린듯해서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육조혜능 이후 선종은 많은 종장(宗匠)을 배출하여 중국 천하를 선종 일색으로 뒤덮었으며, 그 수행법은 더욱더 정밀해져서 마침내 간화선(看話禪)이라는 최상의 수행 체계를 완성하였다.
하동 쌍계사의 역사는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중국에서 육조혜능의 정상(頂相)[머리]을 모셔다가 지금의 금당 자리에 석감을 만들고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쌍계사가 지금까지 천여 년 동안 이 ‘육조동래연기설화(六祖東來緣起說話)’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이곳이 우리나라 선(禪)의 발상지로서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불자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 말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성립 된 이래, 선종은 우리나라 불교 수행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쌍계사의 ‘육조동래연기설화’에 나타난 불자들의 희망은 하동 쌍계사가 육조혜능으로 대표 되는 남종(南宗) 돈오선법(頓悟禪法)의 맥을 잇는다는 것이다. 지리산 남쪽 자락 하동 지방은 많은 수행자들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곧 “단번에 깨달아서 부처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는 조사선을 수행하면서 경치가 뛰어난 골짜기마다 여기 저기 수행처를 만들고 정진하여 왔다.
[신흥사와 서산대사]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일대는 옛날 신흥사(新興寺) 터이다. 신흥사는 통일 신라 이전에 지어진 절로서,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시와 유산기로 신흥사의 아름다움을 찬탄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초라한 암자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35년 10월 1일자 진주에서 발간되는 『중앙공중보(中央公衆報)』에 소개되고,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신축에 따라 철거되어 천여 년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우리나라 불교사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서산대사는 초년에 지리산 여러 곳을 둘러보고 15세에 의신동에서 출가하여 수학하였다. 그 후 의신을 떠나 묘향산으로 갔다가 1560년[41세]에 다시 화개동을 찾았다. 신라 때부터 있었던 내은적암(內隱寂庵)이 거의 폐허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직접 모연문을 짓고 중창하였다. 그리고 3년을 머물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역작 『선가귀감(禪家龜鑑)』도 여기에서 완성하였다.
의신동이 서산대사가 출가한 곳이라면 신흥동의 내은적암은 서산대사의 사상이 완성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신흥사지는 지금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뒷산 중턱에 있으며, 주춧돌을 보면 3칸 건물이었고, 3줄의 주춧돌이 온전히 남아 있다.
[지리산 의신리의 사찰들]
의신(義信)은 화개에서 가장 사찰이 많았던 곳으로 지리산 불교의 요람지였다. 유명한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행하고 가르치며 불법의 등불을 밝혔기 때문에 이들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서, 자연 불교나 사찰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 많다. 의신이란 마을 이름도 불교에서 유래하였다. 의신사(義神寺)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1463년(세조 9)에 청파(靑坡) 이륙(李陸)[1438~1498]이 쓴 「유지리산록(遊智理山錄)」이 처음일 것이다.
“…여기서(德平) 남으로 더 내려가면 시내에 연하여 의신사·신흥사(新興寺)·쌍계사(雙磎寺) 등 세 절이 있다. 의신사에서 서쪽으로 20리를 가면 칠불사(七佛寺)가 있고 쌍계사에서 동으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불일암(佛日庵)이 있다. 그밖에 이름 있는 절들이 이루다 적을 수 없다.”라고 하여 화개에 절이 많음을 이야기하였다.
영신사(靈神寺)는 세석의 서남쪽 아래에 있었는데 영신봉, 영신대 등의 이름이 영신사 때문에 생겼다. 그러나 언제 누구에 의하여 영신사가 창건되고 유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종직(金宗直)[1431~1498]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영신사에서 자는데 다만 승려는 한 사람뿐이다. 절의 북쪽 비탈에 가섭의 석상이 있는데, ‘세종대왕 때 매양 내관을 보내 향화를 올렸다.’고 한다.…가섭전의 북쪽 봉우리에 두 바위가 우뚝 서 있으니 좌고대(坐高臺)다. …… 동쪽 섬돌아래는 시내가 있고 서쪽 섬돌아래는 옥천샘이 있는 데, 물맛이 극히 달아서 물로 차를 다려 마시면 중랭천(中冷泉), 혜산천(惠山泉)[중국의 제1, 제2의 물맛으로 유명한 샘들]도 이보다는 낫지 못할 듯하다. 샘의 서쪽에 무너져가는 절이 우뚝하니 이는 옛날의 영신사다.……”라고 했다.
영신사는 가섭을 모신 절로 세종대왕의 원찰이었고, 좌고대·옥천샘·탑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흩어진 기와장과 절터, 시내와 옥천샘만 남아있다. 이곳은 지리산 최고의 수행처·명당으로 소문이 나있다.
[지리산 대성리의 사찰들]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는 지리산 불교의 요람지로 사찰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많은 지명들이 불교나 사찰 이름에서 유래했음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진양지(晉陽誌)』 발간 당시[1632년]에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 있었던 사찰 이름을 보면, 신흥사(新興寺)의 북쪽에 있었던 절로는 중암(中庵)·진락암(眞樂庵)·보현암(普賢庵)·능인암(能仁庵)이 있다. 의신에서 대성동 가는 길과 대성교에서 세석으로 가는 등산로가 만나는 곳이 능인암 터이다. 먹으면 힘이 솟는다는 ‘장군샘’이 있으며, 쌍계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불경책판은 1603년(선조 36) 전후에 능인암에서 판각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사혜암(沙惠庵)·동암(東庵)·능인암(能仁庵)·상수곡암(上水谷庵), 삼신동에 있는 은정대(隱靜臺)·대승암(大勝庵)·고대승(古大勝)·상대승(上大勝)·서대(西臺)·동암(東庵)과 의신동에 있는 원적암(圓寂庵)·원통암(圓通庵)·의신사(義神寺)·송로암(松老庵)·원서암(圓棲庵)·적주암(寂住癌)·은암(銀庵)·청량대(淸凉臺)·동암(東庵)·북암(北庵)·보명암(普明庵)·영운암(靈雲庵)·서대(西臺)·철굴암(鐵窟庵)·중철굴암·하철굴암·은선암(隱仙庵)과 영신사(靈神寺) 등 1603년 당시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만 31개의 절이 있었다. 『진양지』에 빠진 절이나 그 후에 세워진 사찰까지 합하면 더욱 많은 사찰이 있었을 것이다.
[악양과 적량의 사찰들]
불일폭포 위에 있는 불일암(佛日庵)은 고려 시대에 수선사(修禪寺) 결사를 주도하며 불교계의 혁신을 주장했던 목우자(牧牛子) 지눌(知訥)이 수행하던 곳이다. 원래 이곳에서 위쪽으로 30분 거리에 중불암(中佛庵)이 있었고, 그 위의 상불재 있는 곳에 상불암(上佛庵)이 있었으며, 주변에 마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2008년 쌍계사 조실(祖室) 고산혜원(杲山慧元)이 복원한 불일암만이 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고소성(古蘇城)과 한산사(寒山寺)가 있는데, 고소성은 삼국 시대에 신라 혹은 백제에 의해서 축성되었다고 한다. 뒤로는 험준한 지리산 준령들을 등지고 앞으로는 섬진강을 내려 보고 있는 천혜의 요새지로서, 남해 지방에서 호남과 내륙 지방으로 통하는 교통로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이곳은 한산사를 비롯하여 하동군 악양면 깊은 골짜기까지 지리적으로 도(道)를 닦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서, 곳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많다.
하동군 악양면 등촌리에 있는 남화선원(南華禪院)은 수십 년간 제방선원에서 정진한 의정이 독자적인 수행처를 지었고,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에는 칠불사 아자방에서 3년 동안 묵언(黙言)하면서 정진한 단제가 최근에 지은 금봉암(金鳳庵)에 선원을 개설하고 있다.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에는 과거 악양면에서 불교 신도가 제일 많았던 보문사(普門寺)가 현재 불사를 하고 있고, 그밖에 크고 작은 암자와 절이 무수히 많아서, 도인의 출현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동군 적량면에는 지리산 자락의 깊은 골마다 절을 짓고 수행하는 이들이 일찍부터 모여들어서 지금은 여러 종단의 종파를 표방하는 사찰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칠성암(七星庵)·수도암(修道庵)·선동사(仙洞寺)·용수암(龍水庵), 대한불교무량종의 칠보정사(七寶精舍), 대한불교총화종의 성불암(成佛庵), 대한불교관음종의 강선암(康仙庵), 대한불교천태종의 관음사(觀音寺)가 있다.
[쌍계사의 불교 문화재]
한편 문화재는 사람들의 문화 활동 또는 생활 속에서 만들어지고 남겨진 사물 또는 사상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 즉 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산출된 유·무형의 학문·예술·종교 등을 말한다. 하동군이 보유하고 있는 국보[1점]와 보물[8점]로 지정된 문화재는 모두 쌍계사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1967년에 보물 제458호로 지정되었던 쌍계사 적묵당(寂黙堂)은 애석하게도 1968년 2월 19일 밤에 실화로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