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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699
한자 群山座
이칭/별칭 영화,군산좌,군산 극장,씨네마우일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위경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06년~1914년 사이 - 군산좌 개관 추정
최초 설립지 군산좌 - 군산부 강호[현 죽성동]지도보기
성격 단층(單層) 목조 건물
전화 없음
홈페이지 없음

[정의]

일제 강점기 군산시에서 개관한 전라북도 최초의 극장.

[개설]

군산 지역에 처음으로 극장이 등장한 연도는 분명하지 않다. 윤정숙의 연구와 1914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이 발행한 『호남선 선로 안내』에 따르면, 명치좌(明治座)와 군산좌(群山座)가 1906년에서 1914년 사이에 개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명치좌는 조계지(租界地) 형성에 따라 격자형으로 구획된 군산의 도심 명치통[1946년 중앙로 1가로 개명]에 자리한 것으로 확인될 뿐, 극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건립 경위]

1900년대 초반 일본인 자본가와 투기자들은 군산의 토지를 농사 경영보다 투기를 목적으로 사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 비춰보았을 때, 군산에 들어선 극장 역시 일본인 사업의 투자처임이 분명해 보인다. 1906년에 이르러 군산 인구수는 거의 5,000여 명에 이르렀고, 군산 도심은 우편국, 병원, 은행, 경찰서, 언론사, 학교 등 근대 도시로서 기반 시설을 모두 갖추었다. 1914년 군산은 6개의 여관과 5개의 요리점 그리고 군산 공원(群山公園)까지 갖추게 되는데, 극장은 식민지 사업 투자처이자 근대 도시 문화 제도로 등장하였다.

[변천]

일제 강점기 군산좌는 조선인 생활 공간 강호정[현 죽성동]에서 문을 열었다. 죽성동은 일본인 거류지 끝자락인 죽성리(竹城里)로서 일본 거류 민단(居留民團)의 주요사업인 유곽(遊廓) 단지를 조성할 당시 후보지로 거론된 경포리 간석지(干潟地)와 마주한 곳이다. 죽성동은 근처에 죽성 포구[째보 선창]가 있어서 조선인 객주 중심의 영업이 이뤄졌고, 개성 상인이 다수를 차지해서 ‘송방 거리’로 불렸던 조선인 상권 중심 지역이었다.

군산좌는 1920년대 중반부터 건물 노후와 위생 문제를 이유로 극장 건물 신축 문제가 제기되어, 1926년 극장 신축 예산과 부지 선정이 알려지게 된다. 『중외 일보』 1929년 10월 7일자 기사는 극장 건물이 ‘이미 착공중’이라는 소식을 전하였다. 군산좌는 1930년대부터 개복동에서 군산 극장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구성]

군산좌는 단층(單層) 목조 건물이었다.

[현황]

현재 군산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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