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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421
한자 鹽田
이칭/별칭 소금밭,염밭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김현주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만들기 위해 논처럼 만들어 놓은 곳.

[개설]

염전은 소금밭, 염밭이라고도 하며, 천일 염전은 햇볕과 바람을 이용해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을 말한다. 천일 염전을 조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갯벌이다. 갯벌이 발달한 경기만, 곰소만 및 영광·무안·신안 지역에 염전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염전은 크게 저수지, 난치, 누테, 결정지로 구분된다. 저수지는 물때에 맞춰 바닷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하며, 수차나 양수기를 이용해 물을 염전으로 퍼 올린다.

바닷물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은 난치이며, 누테를 거쳐 염도가 25~27도 정도 되면 결정지로 옮긴다. 햇볕, 바람 그리고 계절에 따라서 소금이 난치에서 결정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다르다.

보통 결정지에서는 아침에 함수를 앉히고 [소금을 만들기 위해 25도의 바닷물을 결정에 넣는 것을 ‘함수를 앉힌다’라고 함], 오후 3~4시에 소금을 거둔다. 염전에서 밀대를 이용해 소금을 모으는 것을 ‘대패질’이라고 하며, 소금을 생산하는 것을 곡식을 거두는 것에 빗대어 ‘소금을 거둔다.’ 라고 한다.

[변천]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 지역은 우리나라 서해안의 연안 지역 가운데서 해수 농도가 Be 2.5정도로, 해수 중 약 97%의 수분만 제거하면 염 결정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소금을 체취하기 위해서는 수분 제거를 위한 맑은 날이 많고 강우량이 적어야 하는데, 옥구 지방은 4월부터 6월까지가 건기이고 7월과 8월이 우기이다.

따라서 5월과 6월에 걸친 2개월간의 건기 중에 소금을 생산할 수 있고, 또 북부 지방에 비하여 강우량은 많은 편이나 제염 작업을 약 1개월 정도 연장할 수 있으므로 연간 생산량이 일정한 편이다.

즉 옥구 지방은 광활한 우사지와 기후 등이 모두 천일 제염에 알맞아 동남아의 중국이나 대만 등에 크게 뒤지지 않는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일부 도서지방의 염전은 교통이 편리하지 못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옥구 염전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부족한 염량을 생산하기 위하여 염전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초기인 1948년 6월 30일 옥구군 옥구면 어은리 576번지에 조선 제염 공사가 설립 인가를 받아 조선 제염 염전이 설치되었고, 뒤이어 1950년 12월 31일 옥구군 미면 오식도리에 미면 염업 합자 회사가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1년 9월 30일 옥구군 미면 신시도리에 고군산 염업 합자 회사가 설립 인가되어 각각 염전이 설치되었다.

또 1952년부터 염증산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민간 염전의 개발이 장려되었다. 이에 따라 1953년 12월 31일 옥구군 미면 오식도리에 오식도 염업사가 설립 인가되었고, 1954년 12월 31일에는 옥구군 회현면 월연리에 삼화 염업사와 동화 염업사가 각각 설립 인가되어 염전을 개설하였다.

1970년대의 옥구군 내 염전 및 염 생산량은 1972년에 한국 염업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염전 3,405,697㎡가 넓어지면서, 1973년에는 총면적이 5,407,131㎡에 염 생산량 17,478,820㎏을, 그리고 1974년에는 5,412,421㎡에서 1,446,200㎏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9년 1월 1일에 대통령령 제12,557호[1988년 12월 22일 공포]로 미성읍과 옥구면 오식도, 비응도가 군산시로 편입됨에 따라 오식도 염업 117,256㎡가 군산시로 들어가게 되어 총 염전 면적 4,421,867㎡에서 33,189m/t를 생산하게 되었다. 따라서 1989년부터는 옥구군의 염전 면적과 생산량은 다소 줄어들게 된다.

1980년대 간행된 『옥구 군지』에는 옥구군에서 가장 큰 한국 염전[대표 고판남]을 비롯해 금홍 염전, 옥구 염전, 고군산 염전, 무녀도 염전과 함께 현재의 무녀도 염전의 전신으로 완양 염전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무녀도를 중심으로 한때 최고의 번성기를 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완양 염전은 작고한 군산 출신의 최현칠이 1951년에 300여 명의 인부들과 함께 1년간 방조제를 쌓아 총 16만평의 간척지를 만들어 그 틀을 만들었다. 완양 염전은 1961년 12월 염전매법이 폐지되고 1962년 1월 1일부터 염전 사업이 완전 민영화되자 염전 사업을 시작한 곳으로, 당시 군산에는 8개소의 염전이 있었는데 섬 중에서는 완양 염전의 규모가 큰 편이었다고 한다. 과거 번성했던 염전은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현황]

새만금 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소금 시장 개방 대책의 일환으로 염전 감단 정책이 추진되면서 군산 지역의 염전은 무녀도 염전만을 제외하고 모두 중단되거나 사라졌다. 무녀도 염전은 군산에서 유일한 염전이다. 2001년 전까지는 20여 정의 염전에서 생산하다 2001년 이후에는 정부의 감단 정책으로 15정은 생산을 중단하고, 2006년부터 최근까지는 5정 중 2정[6,000평]만 소금을 생산했다.

하지만 인력과 운영 자금의 어려움에 의해 곧 중단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폐전이 아니라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무녀도 염전은 지금도 수차를 돌려서 간수를 결정지로 운반하고 있다. 무녀도 염전은 소금의 경제성만이 아니라 고군산 군도의 소중한 문화와 관광 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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