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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085
한자 蔡智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고려 말 조선 초 - 채지생 개성에서 임피로 이주
거주|이주지 채지생 이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묘소 채지생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창암 마을 지도보기
성격 입향조
성별
본관 평강
대표 경력 나주 목사|현조 좌랑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군산[옛 임피현] 지역에 세거한 평강 채씨 목사공파 입향조.

[개설]

채지생(蔡智生)은 임피에 세거한 평강 채씨 목사공파 입향조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그 한을 품고 낙남(落南)하는 재당숙[아버지의 육촌 형제] 채양생(蔡陽生)을 따라서 당시 임피현 성산면 대명리 향림곡에 있는 불사(佛舍)로 내려와 은거(隱居)하였다. 이후 채지생의 후손들이 개정면, 대야면,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이들은 채지생이 목사를 지냈다는 연유로 자신들을 평강 채씨 목사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가계]

채지생평강 채씨 시조 채송년(蔡松年)의 7세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광주 목사 첨의 정당문학을 지낸 채종서(蔡宗瑞)이고, 할아버지는 전리 판서겸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채문필(蔡文弼)이며, 아버지는 좌우위 보승 중랑장을 지낸 채수(蔡琇)이고, 외할아버지는 미상이며, 장인은 장수 황씨이다.

[활동 사항]

채지생채지생의 재당숙[아버지의 육촌 형제] 채양생(蔡陽生)과 함께 임피에 세거한 평강 채씨 입향조이다. 초명(初名)은 지정(智正)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그 한을 품고 남하(南下)하는 재당숙 채양생(蔡陽生)를 따라 배를 타고 당시 임피현 성산면 대명리 향림곡에 있는 불사(佛舍)로 내려와 은거(入居)하였다. 조선 왕조에서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냈으며 임기가 만료되어 형조 좌랑(刑曹佐郞) 등을 지냈다. 이후 1455년(세조 원년)에는 좌익 공신에 녹훈되었다. 채지생이 임피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면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이들은 채지생이 목사(牧師)를 지냈다는 연유로 자신들을 목사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묘소]

채지생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창암동에 있는데, 묘 아래 영모당(永慕堂)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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