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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72
한자 姜應周
이칭/별칭 백현(伯賢),수인당(守仁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30년연표보기 - 강응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55년 - 강응주 좌익원종공신 녹훈
출생지 강응주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강응주 낙향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
묘소|단소 강응주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지도보기 학당산
성격 무관
성별
본관 진주
대표 관직 사과(司果)|부호군(副護軍)|노강진 첨절제사(老江鎭僉節制使)|해주 판관(海州判官)

[정의]

조선 전기 군산[옛 옥구현] 지역 출신의 무관.

[개설]

강응주는 조선 시대 옥구현에 세거한 진주 강씨 호부사공파 출신으로,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며, 세조 대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책봉되었다, 문종의 비 복위를 청하는 남효온의 주장을 상소를 올려 거들었고, 왜구 및 여진족을 정벌하는 데에도 공을 세웠다. 해주 판관을 지낼 때 어려운 백성을 구휼하여 청백리로 칭송이 자자하였고, 말년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가계]

본관은 진주, 자(字)는 백현(伯賢), 호는 수인당(守仁堂)이다. 진주 강씨 시조 강민첨(姜民瞻)의 9세손이고, 어사공파(御使公派) 또는 호부사공파의 파시조이면서 진주 강씨 옥구 입향조인 강원전(姜元鐫)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첨절제사를 지낸 강의(姜義)이고, 어머니는 회미 장씨(澮尾張氏)이다. 부인은 이천 서씨(利川徐氏) 서유영(徐有永)의 딸이다. 진주 강씨 호부사공파는 조선 시대 옥구현에 세거한 5대 대성(大姓) 중에 하나로 꼽힌다.

[활동 사항]

강응주는 1430년(세종 12)에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한훤당 김굉필의 문인이다. 관직은 사과, 부호군, 노강진 첨절제사, 해주 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진용 부위(進勇副尉)로 있을 때인 1455년(세조 1)에 세조의 왕위 즉위에 공이 있어 좌익원종공신 3등에 녹훈(錄勳)되었다.

개성 유수(開城留守) 김종순(金從舜)의 상주(上奏)로 부호군 노강진 첨절제사에 제수(除授)되었다. 부호군 재임시 개성 유수 김종순을 도와 왜구를 격퇴하였으며, 첨절제사 재임시 행정을 간소화 하고, 기강을 바로 잡았다.

1478년(성종 9)에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이 소릉(昭陵)[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능]을 복위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모두 함구할 때에, ‘소릉이 폐한지 20년이 넘도록 술 한 잔 올리지 못했으니 구천의 문종의 슬픔이 크지 않겠는가?’라는 상소를 올렸다. 이 때문에 임사홍(任士洪)이 죄주기를 간청하였으나, 성종은 ‘임금이 먼저 구언(求言)하였으면서 죄주는 것은 간언(諫言)을 막는 것이다.’고 말하며 불문에 붙였다.

1479년(성종 10)에는 명나라가 건주(建州) 여진(女眞) 정벌을 위해 출병을 청하였을 때, 도원수 윤필상(尹弼商)을 도와 적병 수백 명을 참하기도 하였다. 이후 3년 동안 해주 판관을 지냈는데, 자신의 봉급미로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을 구휼하자, 지역 주민들이 강응주의 선정을 칭찬하는 거사비(去思碑)를 건립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에 있는 호부사공 묘 아래에 수운정사(繡雲精舍)를 짓고 경전 강론과 후진 교육에 힘썼다. 증직으로 병조 판서가 수여되었으며, 1924년에 간행된 『옥구군지』 충의(忠義) 조(條)에 수록되어 있다. 동생 강상주(姜尙周)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성종 조에 통덕랑을 지냈다.

[묘소]

강응주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학당산(學堂山)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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