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70
한자 崔忠儉
이칭/별칭 자(字) 군실(君實), 도정(道正)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7년연표보기 - 최충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3년 - 최충검 무과 급제
출생지 최충검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묘소|단소 최충검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지도보기 반월산
성격 무관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밀양 부사

[정의]

조선 시대 군산[옛 임피현] 지역 출신의 무관.

[개설]

최충검(崔忠儉)은 조선 시대 임피현에 세거한 경주 최씨 가계 출신으로,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관직이 밀양 부사에 이르렀다.

[가계]

최충검(崔忠儉)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字)는 군실(君實) 또는 도정(道正)이다. 경주 최씨 시조 최치원(崔致遠)의 17세손이고, 경주 최씨 임피 입향조이며, 이조 좌랑을 지낸 최근운(崔墐雲)의 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직으로 통정대부 장예원 판결사를 수여받은 최유간(崔有簡)이고, 할아버지는 경흥 진관 조산포 병마 만호, 평안도 병마 우후 등을 지낸 최한정(崔漢禎)이며, 아버지는 봉사(奉事) 최추(崔秋)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인국(宋仁國)이고, 장인은 정진백(鄭軫白)[본관은 동해]이다. 임진왜란 때 충청도 수군 절도사로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이억기와 함께 전사한 최호(崔湖)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최충검은 1557년(명종 12)에 태어났다. 사망 연도는 미상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에 병과 441위[급제자 총 500명 중 478등]로 급제하였다.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 방목인 『만력 십일년 계미 구월 초 삼일 별시 방목(萬曆十一年癸未九月初三日別試榜目)』에 거주지가 임피(臨陂), 전자(前資)는 정로위(定虜衛), 아버지는 봉사 최추로 수록되어 있다. 밀양 부사를 지냈으며, 1596년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 때에 공이 있어 청난원종공신(淸亂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묘소]

최충검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반월산에 있는데, 부부 쌍분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