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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권 소장 고문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869
한자 崔炳權所藏古文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용도 교지(敎旨)|교첩(敎牒)|유서(諭書)|첩(帖)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에 거주하는 최병권(崔炳權) 소장 고문서.

[개설]

최병권(崔炳權)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는 총 42점이다. 종류별로는 교지(敎旨)와 교첩(敎牒)이 40점이고, 유서(諭書)가 1점이며, 첩(帖)이 1점이다.

[형태]

『옥구 군지』『군산 시사』의 ‘최병권 소장 고문서’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였고, 재해석하였다.

[구성/내용]

교지(敎旨)와 교첩(敎牒) 총 40점 중 교지가 39점이고 교첩이 1점이다. 교지 39점 중에 고신(告身) 교지가 25점, 추증(追贈) 교지가 9점, 봉군(封君) 교지가 1점, 사패(賜牌) 교지가 1점, 수직(壽職) 교지가 1점, 무과(武科) 홍패(紅牌)가 2점이다.

고신(告身) 교지 25점 : 최한정(崔漢禎)에게 준 고신(告身) 교지가 2점, 최호(崔湖)에게 준 고신(告身) 교지가 16점, 최효설(崔孝說)에게 준 고신(告身) 교지가 6점, 최효설(崔孝說)의 처(妻) 고씨(高氏)에게 준 교지가 1점이다.

최한정의 고신 교지 2점은 1552년(명종 7)에 최한정을 병마만호(兵馬萬戶)로 삼은 교지 1점과, 1559년(명종 14)에 최한정을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로 삼은 교지 1점이다.

최호에게 준 고신 교지 16점은 1577년(선조 10)에 최호를 사복시 주부로 삼은 교지 1점, 1579년(선조 12)에 최호를 과의교위(果毅校尉)로 삼은 교지 1점, 1580년(선조 13)에 최호를 만호(萬戶)로 삼은 교지 1점, 1581년(선조 14)에 최호를 각각 사옹원(司饔院) 주부(主簿),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 강진(江津) 현감(縣監)으로 삼은 교지 3점, 1584년(선조 17)에 최호를 병마만호(兵馬萬戶)로 삼은 교지 1점, 1587년(선조 20)에 최호를 각각 사복시(司僕寺) 주부(主簿), 무안(務安) 현감(縣監)으로 삼은 교지 2점, 1588년(선조 21)에 최호를 무안 현감으로 삼은 교지 1점, 1589년(선조 22)에 최호를 각각 훈련원(訓鍊院) 판관(判官), 용강(龍崗) 현령(縣令),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사(都事)로 삼은 교지 3점, 1592년(선조 25)에 최호를 함경도 병마절도사(咸慶道 兵馬節度使)로 삼은 교지 1점, 1596년(선조 29)에 최호를 각각 용양위(龍驤衛) 부호군(副護軍),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로 임명한 교지 2점 등이다.

최효설에게 준 교지 6점은 1646년(인조 24)에 최효설을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삼은 교지 1점, 1651년(효종 2)에 최효설을 각각 부사맹(副司猛) 충장위장(忠壯衛將)과 의흥위(義興衛) 사정(司正)으로 삼은 교지 2점, 1652년(효종 3)에 최효설을 각각 충사위장(忠士衛將), 용양위(龍驤衛) 사정(司正)에 임명한 교지 2점, 1661년(헌종 2)에 최효설을 충무위(忠武衛) 부호군(副護軍)으로 삼은 교지 1점 등이다.

추증(追贈) 교지 9점 : 1596년(선조 29)에 최호를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에 임명함에 따라 그의 가족에게 증직(贈職)을 내린 교지가 4점인데, 대상은 최호의 증조할머니 지씨(池氏), 할아버지 최천손(崔千孫), 할머니 김씨(金氏), 아내 김씨(金氏)이다. 1604년(선조 37)에 최호를 청난공신(淸難功臣)에 책봉하면서 최호의 아내 김씨(金氏), 아버지 최한정(崔漢禎)에게 내린 증직 교지가 2점이다.

1661년(현종 2)에 최효설(崔孝說)을 계산군(鷄山君)에 봉군(封君)하면서 최효설의 아버지 최몽란(崔夢鸞), 어머니 장씨(張氏), 아내 고씨(高氏)에게 내린 증직(贈職) 교지가 3점이다.

봉군(封君) 교지 1점 : 1661년(현종 2)에 최효설을 가선대부(嘉善大夫) 계산군(鷄山君)에 봉군(封君)하는 교지(敎旨) 1점이다.

사패(賜牌) 교지 1점 : 1605년(선조 38)에 사망한 계성군(鷄城君) 청난이등공신(淸難二等功臣) 최호에게 전답과 노비를 내린 교지 1점이다.

수직(壽職) 교지 1점 : 1660년(현종 1)에 최효설에게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를 내린 교지 1점이다.

무과(武科) 홍패(紅牌) 2점 : 1574년(선조 7)에 최호의 무과(武科) 급제 교지 1점, 최호는 정로위(定虜衛) 현신교위(顯信校尉)로 응시하여 병과(丙科) 제오인(第五人)으로 급제하였다. 1576년(선조 9) 최호의 무과 중시(重試) 교지 1점, 무과 중시에 최호는 전권지훈련원 봉사수의부위(前權知訓鍊院 奉事修義副尉)로 응시하여 갑과(甲科) 제일인(第一人) 곧, 장원을 하였다.

1594년(선조 27)에 선조(宣祖)가 함경도 병마절도사(咸慶道兵馬節度使) 최호에게 내린 유서(諭書) 1점이다.

1681년(숙종 7)에 최곤(崔崑)을 충의위(忠義衛)에 임명한다는 첩(帖) 1점이다.

[의의와 평가]

최병권(崔炳權) 소장 고문서 42점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어느 한 무인의 관직 진출 양상을 탐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고문서는 임진왜란기 최호의 활약상, 조선 관군과 왜군의 전투, 이몽학(李夢鶴)의 난, 칠천량 해전, 그리고 4대 봉군(封君)을 한 조선 중기 지방에 거주한 무반 집안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적절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