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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91
한자 -製造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5년 3월 - 남조선 고무 주식 회사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32년 4월 - 김경명 군산 역전에 고무 공장 설립
성격 제조업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에서 고무 물품을 제작 판매한 산업.

[일제 강점기 고무 공업]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는 고무 공업의 원료인 생고무가 산출되지 않았다. 고무 공업의 주종은 고무신 생산이 차지하고 있었고, 제작에 필요한 원재료는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였다. 일제 강점기 고무 공업은 규제가 적고, 소규모의 자본으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어 한국인 자본가들이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 경영 공장은 전시체제 이후 병참 기지화 정책으로 대부분 일본 자본에 합병되거나 원료 난·가격 통제 등의 영향으로 휴업을 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고무 공업은 1920년 이후 고무신의 편리성이 알려지고 일반 대중에 보급되고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고무 공장들이 설립되게 되었다. 초기에는 서울, 평양, 부산을 중심으로 공장이 설립되었다. 이들 지역의 고무 공장에서 일제 강점기 전체 생산량의 80%~90% 정도를 생산해 내었다. 1920년 중반 이후에는 군산, 여수, 목포 등 전라북도·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고무 공장이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군산 지역 고무 공장 설립]

현재까지 확인된 기록에 의하면 군산에 설립된 최초의 고무 공장은 1925년 3월 설립된 남조선 고무 주식 회사이다. 이후 1930년 4월에는 진주에서 고무 제조업을 하고 있던 김경명(金景明)이 군산역 앞에 진주 경일 고무 상회 군산 공장을 신설하였고, 1932년에는 이흥수(李興秀)가 경성 고무 군산 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일제 강점기 군산에 위와 같은 고무 공장이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저임금 노동자 확보의 용이함과 수입되는 고무 원자재 처리의 편리성이 있었다. 옥구·임피 등 주변 농촌에서 군산으로 유입되는 인구로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다. 또한 일본에서 수입되는 원자재 천연 고무가 변질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내륙보다 수입한 지역에서 공장을 설립하여 처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군산 지역 고무 공장의 노동 여건]

군산 지역 고무 공장에서 종사했던 노동자는 한국인 직공과 일본인 직원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고무 공장의 노동 집약적인 성격으로 남자 직공보다 여자 직공 비율이 높은 편이었고, 기술을 요구하는 과정은 일본인 직원이 중심이 되었다. 직공 수는 적게는 50명 이하에서 많게는 200명 이상이 한 공장에서 같이 근무를 하였다. 공장에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면서부터는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노동 시간은 10시간~11시간의 장시간 노동이 이루어졌고, 1년 내내 가동하기보다는 주문에 따라 작업 일수가 정해졌고, 계절에 따른 노동 시간의 편차가 있었다.

[고무 공장 노동 쟁의]

일본인 공장주들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물리적·성적 폭력을 행사하였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 등에 시달리면서 고용의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또한 공장 내에서 기계 수선비·도구 사용료·공장 청소 등 추가적인 부담까지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였다. 이에 노동자들은 기본적 생활 조건 유지·인간다운 삶·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스스로 노동 쟁의를 전개하였다.

노동 쟁의는 여자 직공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고, 임금 하락에 따른 생활고가 노동 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들은 직공 조합을 조직하거나 사회 주의 단체의 도움을 받아 임금 인하 반대, 해고 직원 복귀, 일방적 해고 근절을 요구하였다. 연대파업을 통해 요구 사항을 관철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인 공장주들은 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업 참여자에 대해 구타나 해고를 하였고, 경찰은 일본인 자본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전시 체제기 이후 군산 지역 고무 공업]

1931년 만주 사변, 1936년 중일 전쟁 이후 일제는 한국 내에서 모든 생산 시설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체제로 군수 공업화 정책을 실행하였다. 이 당시 군산 지역 고무 공업도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해 내는 방향으로 통제되었다.

군산 지역 고무 제조업자들은 1933년 이후 부산 미쯔비시 물산[三井物産]이 중심이 된 남선 고무 공업 협회(南鮮고무工業協會)에 대구·여수·목포 고무 제조업자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남선 고무 공업 협회를 주도했던 미쯔비시는 일본 내 대기업으로 전시 체제 아래에서 군수품의 원활한 생산과 자본가의 이윤 확보를 위해 고무 생산을 통제 관리하였다. 그 결과 군산 지역 고무 공장들은 생산된 고무 제품들을 조선 고무신 판매 회사에 집산시켜야 했다. 이곳에 집산된 고무 제품들을 미쯔비시에서는 공급과 수요 조절을 통해 많은 이윤을 남기며 판매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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