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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미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40
한자 澮尾縣
이칭/별칭 부부리현,연강(連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 부부리현에서 회미현으로 개칭, 임피군으로 소속
개정 시기/일시 1403년 - 회미현, 옥구현에 통합
개정 시기/일시 1914년 - 회미현의 이름을 따서 회현면이 됨
관할 지역 회미현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정의]

통일 신라 및 고려 시대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澮縣面)에 설치한 행정 구역.

[개설]

회미현은 통일 신라 이래 임피군(臨陂郡) 관할 하에 있던 현(縣)의 하나이다. 백제식 명칭은 부부리현(夫夫里縣)이며 통일 신라 경덕왕 대에 회미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 임피현의 속현(屬縣)으로 있다가 조선 태종 대에 옥구현(沃溝縣)에 분속되면서 폐현(廢縣)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757년(경덕왕 16) 통일 신라 경덕왕은 중앙 관부명과 관직명, 지방 9개주와 각 군현의 고유 명칭을 모두 폐기하고 한자식으로 교체하였는데, 이때 백제식 행정 구역 명칭이었던 부부리현도 회미현으로 개정되었다. 이 당시 행정 구역 명칭의 대대적인 개정 이유는 귀족 세력 억압과 전제 왕권 강화에 있었다.

[관련 기록]

회미현의 유래와 연혁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권36, 잡지 5 지리 3 신라조와 『고려사』 권57 지 11 지리 3 전라도 임피현조, 『세종 실록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옥구현조, 『대동 지지』 등에 잘 설명되어 있다. 『세종 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옥구의] 옛 속현(古屬縣)이 하나가 있으니, 회미(澮尾)는 본래 백제의 부부리현이었는데, 신라에서 회미로 고쳐 임피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으며, 본조 태종(太宗) 3년 계미에 본현에 내속(來屬)하였다[古屬縣一 澮尾本百濟夫夫里縣, 新羅改澮尾, 爲臨陂領縣, 高麗因之. 太宗三年癸未來屬]”고 되어 있다.

[내용]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회미현 옛 관아의 위치는 계령산(鷄嶺山)을 등지고 있는 지금의 회현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며, 계령산 능선에는 회미현의 옛 관아를 둘러싼 회미현성(澮尾縣城)의 흔적이 남아있다. 『대동지지』에 “회미고현성(澮尾古縣城) 둘레가 3천4백 90척”이라 명시하고 있어 현성(縣城)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회미현의 옛 명칭인 부부리(夫夫里)는 대촌(大村)을 뜻한다. 또한 회미현은 고려 초에 일명 연강(連江)이라고도 불렸는데, ‘연강(連江)’은 회미현 일대의 평야가 인근의 만경강과 닿아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즉 명칭의 뜻에 따르면, 회미현은 큰 마을이 강을 끼고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회미 지역의 넓은 평야 지대는 강경벌, 황산벌, 만경벌 등과 더불어 전북 일대의 대표적 평야 지대이다. 또한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회미의 남쪽 만경강 하류에 고사포(古沙浦)가 있는 것으로 볼 때 회미 일대 가까이에 나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회미현터는 옥산과 인접해 있었는데 옥산은 옥구현의 별칭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회미현은 1403년(태종 3) 옥구현에 분속 통합되었다.

[변천]

삼국 시대 백제의 부부리현(夫夫里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회미현으로 개칭되어 임피군(臨陂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임피군임피현으로 강등된 뒤에도 계속 속현(屬縣)으로 남아 있다가, 1403년(태종 3) 옥구현에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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