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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30
한자 古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대/고대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병합 시기/일시 369년 - 군산 지역 백제의 지방 행정 구역에 포함

[정의]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의 전라북도 군산시 지역과 관련된 역사

[개설]

한국사의 일반적 시기 구분에 따르면, 고대 시기는 삼국 시대에서 후삼국까지 거의 1천 년의 기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미 중국사에서는 고대의 하한을 후한이나 삼국 시대로 올려보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럴 경우 중국사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고대 시기 한국사는 고대 국가가 성장하기도 전에 이미 이웃 나라는 중세로 들어섰던 것이 되어 상호 연관성 측면에서 크게 어긋나고 만다. 따라서 고대에 대한 이해에도 발전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실정인데, 이를 감안하여 여기에서는 삼국 시대만을 한정하여 기록과 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군산 관련 내용만을 토대로 고대 군산의 모습을 그려내도록 하겠다.

[백제와 군산의 조우]

마한 시기의 만로국(萬盧國)[옥구]·임소반국(臨素半國)[옥구]·비리국(卑離國)[옥구 회현] 등의 소국가들이 성장하던 군산 지역이 백제와 만나는 직접 사료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벽골제 수축 기사를 통해 살필 수 있다. 벽골제는 군산과 가까운 현재의 김제시에 있었던 저수지이므로, 이는 백제가 서기 4세기 초에 김제 지역까지 진출하였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서기 369년(근초고왕 24)에 백제가 가라 7국과 남만 침미다례[강진·해남] 등 대대적인 남방 정벌에 착수하였을 때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 지역 등이 스스로 와서 항복하였다고 나오는데 이 중 ‘고사(古四)’가 정읍 고부 지역임을 감안하면 이 시기 군산을 비롯한 전북 일대가 모두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 편입과 발전]

서기 369년(근초고왕 24) 백제의 근초고왕마한 지역을 공략하여 백제에 편입한 이후 군산 지역은 백제의 지방 행정 구역에 포함되어 시산군[임피], 부부리현[회현], 마서량현[옥구]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야면 산월리 유적에서는 마한이 백제에 어떻게 복속되었는가와 당시의 사회상을 밝히는데 단서를 제공하는 집자리와 구덩식 무덤[竪穴墓], 돌방무덤[石室墳]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더불어 성산면 여방리 고분군, 도암리 고분군 등 이 시기 무덤 유적과 유물은 군산 지역이 백제가 도읍을 웅진으로 옮긴 후 백제의 대내외 관문으로서 발전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시기 조성된 군산 지역에 밀집된 관방 유적[산성과 봉수대] 역시 백제에서 군산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증명해 준다.

그 후 백제의 도성이 금강 연안 웅진성과 사비성으로 옮겨지며 백제의 정치 외교와 문화 유입이 교통상의 이유로 금강 수로를 이용하게 됨으로써 군산은 백제의 대외 무역과 군사상의 중요 지역으로서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현재 군산의 12개 지역에서 조사되어 있는 백제식 돌방무덤[石室墳]은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게 백제 고분의 밀집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적으로 보는 군산]

삼국 시대의 군산의 모습을 엿볼 자료는 최근 조촌동, 성산면 여방리·도암리, 옥구읍 옥정리, 나포면 장상리금강 유역 일대에서 발굴된 백제 시대의 고분이다. 이 중에 성산면 여방리 고분에서 은제 팔찌와 반지, 순금제 화판 장식이, 그리고 조촌동 고분에서 관고리와 관못, 금동제 귀고리가 출토됨으로써 무덤에 묻힌 주인공이 상당한 세력을 보유한 권력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나포면 장상리 고분 발굴품은 인근 익산시 입점리나 웅포리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유력한 지방 세력이 활동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이들 세력은 분명 중앙과 일정한 관련을 맺으면서 성장하였으리라 추정된다. 특히 백제의 수도가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옮겨진 이후 이곳 금강 유역이 대내외의 관문으로서 위상이 높아지게 됨에 따라, 이를 발판으로 중앙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하여 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 말기의 이 지역의 상황과 관련하여 오성산(五聖山)[227m]의 전설도 빠뜨릴 수 없다. 이 전설은 금강 하구에 위치한 군산이 백제와 나당 연합군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격전지의 하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벌포 해전과 통일]

군산은 백제 시대에 기벌포라 불리던 지역이었는데 기벌포는 넓게는 현재 금강 하류 지역을 나타내었고 좁은 의미로는 군산 인근 지역을 나타내는 명칭이었다.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에 이르는 뱃길은 금강이 유일하기 때문에 기벌포 즉 군산은 군사적 요충지로써 국가의 존립을 두고 치룬 중요한 세 번의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 되었다.

첫 번째 전투는 나당 연합군과 백제군 사이에 벌어졌다. 나당 연합군의 백제 기습 공격 때 소정방의 당나라군이 상륙 작전을 벌인 장소가 바로 군산 지역인 기벌포였다. 이때 침입해 오는 당나라군을 맞아 항거하다 죽음을 당한 이들을 기리는 오성인대제가 매년 군산 오성산 정상에서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다.

두 번째 전투는 서기 663년 백제 부흥군과 나당 연합군이 군산 해역 일대에서 벌인 기벌포 해전[혹은 백촌강 해전]이다. 이 전투에서 백제 부흥군이 패배함으로써 백제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세 번째 전투는 당과 신라군 사이에 벌어졌다. 신라군은 백제, 고구려 멸망 후 신라를 포함한 우리의 땅을 직접 지배하려는 당나라군에 맞서 설인귀의 당나라 해군을 기벌포에서 20여회의 전투 끝에 물리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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