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44 |
---|---|
한자 | 現代 |
영어의미역 | Modern Histor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상환 |
[정의]
1945년 8월 15일 이후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개설]
현대란 역사학의 시대 구분 가운데 사상(思想)이나 그 밖의 것이 현재와 같다고 생각되는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으로 인한 분단, 6·25 전쟁, 자본주의의 발전, 민주화 운동 등을 경험하는 역사 속에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해방~1950년대]
현대 하동의 역사는 민족사의 고난과 함께하였다. 1945년 8·15 광복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환희와 함께 혼란과 고통도 가져다주었다. 하동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격렬해지면서 많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다. 8월 27일 건국준비위원회 하동군지부가 조직되었고, 9월 15일에는 하동군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하동군 인민위원회는 1946년 4월 미군정의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되기 전까지 하동의 실질적 자치 권력으로 일제의 잔재 청산과 농민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활동을 전개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 결과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북한은 1950년 6·25 전쟁을 일으켜 500만 동족을 사상하였다. 하동은 7월 25일부터 인민군 지배하에 들어갔고, 9월 28일에 수복되었다. 하동은 6·25 전쟁 전후로 빨치산 투쟁의 거점 가운데 하나였던 지리산을 끼고 있어서 다른 지역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의 반란군이 11월 15일 섬진강을 건너려고 하는 것을 저지한 이후, 지리산 주변의 화개면, 악양면, 청암면, 옥종면 등의 산간 오지 마을에 빨치산이 출몰하자 청년들은 11월 25일 ‘대한청년단 기동대’를 조직하여 대응했다. 한국전쟁 전후로 벌어진 빨치산과의 충돌 과정에서 희생된 대한청년단 기동대원 124명의 순국 용사 충혼탑이 갈마산에 세워져 있다.
[1960~1970년대]
1960~1970년대에는 활발한 공업화로 이농(離農)이 증가하여 하동군의 인구는 1965년 2만 3335호 14만 3894명에서 1970년 2만 3068호 13만 907명, 1980년 2만 390호 9만 7618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농어촌 전화(電化)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61년 하동군내 전등 사용 가구 수는 1,216가구[하동읍 901가구, 진교면 315가구]에 불과했다. 1965년에 「농어촌 전화 촉진법」이 제정되어 1969년에는 3,318가구로 늘어났지만 전체 가구의 15.5%에 지나지 않았다.
새마을 운동이 확산되면서 전화 사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정부도 1979년까지 농어촌 완전 전화를 목표로 ‘농어촌 전화 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하동군의 전화율도 1975년 68%에서 1979년 97.7%를 달성했다. 농어촌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농어촌의 소득 증대를 가져왔고, 농어민의 생활과 문화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1980년대~현재]
1980년대에도 계속된 이농으로 하동군의 인구는 1990년 6만 5963명, 2000년 5만 9607명, 2010년 5만 1859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웰빙(well-being)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하동은 관광지로서, 녹차 생산지로서 위상을 높여 가고 있다.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이 한국 최초로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후 하동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관광지가 되었다. 하동군 화개면의 화개장터, 쌍계사(雙磎寺),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화개10리 벚꽃 길[화개장터~쌍계사 입구], 불일폭포, 칠불사, 칠불사 아자방지(亞字房址), 대성동 계곡, 청암계곡, 청학동(靑鶴洞) 도인촌 등 관광 명소를 찾는 관광객이 많다. 섬진강 변 하동 송림, 섬호정(蟾湖亭), 섬진나루, 하동 고소성(姑蘇城), 박경리(朴景利)의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등도 관광 명소이다. 섬진강에서 생산되는 재첩을 식재료로 한 재첩국이 유명하다.
한국남부발전 하동화력발전소의 조성도 특기할 만하다. 1993년 11월에 1호기 건설이 시작된 이후 15년간 총사업비 4조 2천억 원, 연 인원 750만 명이 투입되어 8호기까지 건설되었다. 377만㎡의 부지에 500㎿×8기 총4,000㎿의 대단위 석탄 발전소로 전국 최대 규모이다.
하동의 특산물로는 녹차, 배, 단감, 매실, 대봉감, 딸기가 있다. 하동은 중국산 소엽종을 지리산에 심어서 번식한 야생 녹차로 유명하다. 하동군의 주요 차 재배 지역은 섬진강과 이의 지류인 화개천에 연접해 있어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차 생산 시기에는 밤낮의 기온 차가 커 차나무 재배의 최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 고급 녹차의 생산액이 전체 생산액의 95%를 차지하는 반면 티백과 같은 보급 차의 생산액은 5%에 불과하다.
2005년 현재 녹차 재배 농가가 1,757호, 재배 면적이 679㏊에 달한다. 전라남도 보성의 885㏊에 이어 전국에서 둘째로 넓은 재배 면적이다. 2,394톤을 생산하여 599톤을 농가 자체에서 가공하고 1,795톤을 수매한다. 하동군 재배 면적 중 화개면이 69%, 악양면이 27%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군이 주도하여 규모화 사업과 농가 소득원 개발 사업을 편 결과 2010년 말 기준으로 농가 조수입 1억 원 이상 농가 557명의 천부농을 달성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2008년 3월 재정경제부로부터 하동야생차산업특구로 지정되었다. 하동녹차연구소가 2005년에 설립되어 하동녹차의 생산과 녹차를 이용한 가공 산업을 지원하는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