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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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姑蘇城 |
영어의미역 | Gososeong Fortress in Ha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산3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박용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6년 9월 6일 - 하동 고소성 사적 제151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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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고소성 사적 재지정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산 31 |
성격 | 성곽 |
양식 | 석성 |
크기(높이, 길이, 둘레) | 5.5m[최대 높이]|약 436m[둘레] |
면적 | 18,932㎡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하동군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성.
[건립 경위]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이 위치하는 하동군 악양면의 옛 지명은 소다사현(小多沙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악양현(岳陽縣)으로 개명되었다. 하동군 악양면은 섬진강의 물줄기에서 가장 번성한 곳 가운데 하나로서 일찍이 한 읍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하동 고소성의 위치는 호남 내륙과 남해 바다를 연결하는 섬진강 물길을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는 천연의 요새에 해당한다. 따라서 하동 고소성은 소다사현을 방어하고 섬진강 물길을 지키기 위해서 축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동 고소성의 내력에 관한 기록은 『하동군읍지(河東郡邑誌)』가 유일한 자료인데, 그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군을 토벌하는 남정(南征)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견도 있다.
[위치]
하동 고소성은 섬진강의 물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쌓은 산성으로, 하동군 하동읍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약 11㎞쯤 가다 보면 나타나는 악양 들녘 북서쪽 끝 섬진강 변 오른편 산록에 위치한다. 촛대봉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리산[1,915m]의 험한 줄기가 신선봉(神仙峰)에 이르고, 그 남쪽 산줄기의 해발 300m 지점에 위치하는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견고하게 지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하동부읍지(河東府邑誌) 고적조(古蹟條)에 “악양은 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으며, 고소성(姑蘇城)이 있다”라고 하였다. 하동 고소성의 기록은 대개 이 정도에 불과하다.
[형태]
산 윗부분을 테를 두른 것처럼 쌓은 테뫼식 산성이 아니라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를 뒤에 두고 지형을 활용하여 견고하게 쌓은 산성이다. 동북쪽 100m와 서북쪽 120m 정도가 거의 정북에서 만나는 부분은 직각을 이루고 있으나, 동남쪽과 서남쪽 및 남쪽 부분은 각이 예리하지 않은 삼각형에 가까운 형태여서 평면으로 보면 야구장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성의 둘레는 약 436m이며, 면적은 1만 8932㎡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는데,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부분을 제외한 곳의 성벽이 상당한 정도로 보존되었다. 성벽의 너비는 5m 내외, 최대 높이 5.5m 정도로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전체 성벽이 복원되어 있다. 개거식(開渠式)의 동문이 약 1m 정도의 상단부에 너비 4.2m, 길이 6m의 규모로 만들어져 있다.
하동 고소성에 대해 정리한 견해에 따르면 성벽은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으며, 20㎝x20㎝~65㎝x25㎝로 다듬은 장방형 석재로써 내탁한 후 협축하였다. 북쪽의 성벽 일부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약간의 석축만을 쌓은 듯하고, 계곡이 심하게 형성되어 있어 내부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그 외형으로 체성이 축조되어 내부는 주거에 매우 불편한 상태로 항상 주둔하는 성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성내에는 연못 터와 건물 터 및 암문 등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통일 신라 때의 토기류로 추정되는 유병(油甁)들과 모골흔이나 삿무늬가 있는 백제 전통의 암기와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고소성은 개인 소유로 하동군이 관리하고 있다. 1966년 9월 6일 사적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성벽은 서남쪽 부분을 제외하면 잘 다듬은 화강암의 장방형 석재를 이용하여 ‘品’자형 쌓기를 하고 있는데, 편축·협축에 의해 축조되어 있으며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부분도 있다. 성 내부에 특별한 시설물은 없으며, 국도 19호선으로부터 이어진 산복 도로[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가 성 동문에서 불과 350m 정도 떨어져 있다. 산복 도로에서 성에 이르는 길도 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잘 드러나 있다.
주변의 유적으로 평사리 고분군이 있고, 성 중심에서 동쪽 방향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지점에 소설가 박경리(朴景利)[1926. 10. 28~2008. 5. 5]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가 있다. 성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하동군 악양면의 외동마을 앞에는 동정호가 자리하고 있다. 하동 고소성의 서남쪽 방향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섬진강의 백사장은 또 다른 볼거리이다.
[의의와 평가]
하동 고소성은 섬진강 물줄기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에 지형을 잘 이용하여 쌓은 산성이다. 전라남도 구례 지역에서 섬진강을 통해서 남해로 진출하려던 세력이나 남해로부터 섬진강을 거슬러 호남으로 진출하려던 세력을 방어하는 데에 천연의 요새로서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