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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2195
한자 洪建稷
이칭/별칭 홍건표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홍건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홍건직 제19회 선전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44년 - 홍건직 제23회 선전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홍건직 제14회 국전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66년 - 홍건직 제1회 국제사진 살롱 입선
몰년 시기/일시 1968년 9월 27일연표보기 - 홍건직 사망
출생지 홍건직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
묘소 홍건직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동 지도보기
성격 사진작가
성별
대표 경력 군산 사범 학교 교사|군산 아마 사우회 홍보 부장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활동한 미술가 겸 사진 작가.

[개설]

홍건직의 본명은 홍건표이다. 평양 출신이나 해방 이후 군산에 정착하여 사진 활동 및 그림을 그린 예술가이다.

[활동 사항]

1940년 평양 제 3 공립 중학교 4학년 재학 시절 19회 선전에 「풍경」[그림]으로 입선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동경 미대 3학년 때 「정물」[그림]로 제 23회 선전에 입선한다. 해방 후 부르주아로 몰려 군산으로 내려와 정착한다. 1951년 항만 사령부 홍보관으로 근무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1952년 11월 홍건직의 주도로 군산 아마 사우회[초대 회장 김종열]가 발족하였다. 군산 아마사우회는 홍보 부장 홍건직, 연구 부장 채원석이 투톱을 이루면서 군산의 사진 예술이 전북을 대표하는 초석이 된다. 미학의 기본적 바탕위에서 이루어진 홍건직의 사진 예술성은 출중했다. 주말에는 출사를 나갔고, 매년 아마추어 사진 콘테스트와 비둘기 다방에서 회원전을 개최하면서 군산 사진 문화의 기틀을 다졌다.

1952년 토요 동인회에 가입, 문인들의 시화전이나 앤솔로지 그리고 소설 등의 뒷 그림을 그렸다. 당시 희소관, 군산 극장, 공회당 등에서 열리는 예술 문화 공연 포스터 그림도 그린다. 선전[19회, 23회] 입선과 동경 미대 경력을 인정받아 1954년부터 군산 사범 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부 정책으로 전주에 교대가 신설되고 1963년 군산 사범 학교가 문을 닫게 되면서 교직을 떠났다.

1962년 10월 어느 날, 사보이 호텔에 투숙하던 스웨덴 사람 소진 아미여사가 제 11회 국전 전시장을 돌아보고 홍건직이 출품한 서양화 부문 입선작 「항아리와 林童」을 구입하겠다고 교섭해왔고, 며칠 후 다른 곳에서도 구입 신청이 들어온 것에서도 그의 작품이 얼마나 예술성과 독창성이 뛰어났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1965년 제 14회 국전 입선, 1966년 제 1회 국제 사진 살롱[동아일보사 주최] 입상 등 작품 활동을 활발히 펼쳤으나 한일 친선 교류전 준비 중 과로가 겹쳐 1968년 9월 27일 49세의 나이로 세상과 등졌다.

[저술 및 작품]

1940년 평양 제 3 공립 중학교 4학년 재학 시절 19회 선전에 「풍경」[그림]으로 입선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동경 미대 3학년 때 「정물」[그림]로 제23회 선전에 입선한다. 선전[19회, 23회] 입선하였다. 1965년 제 14회 국전 입선, 1966년 제 1회 국제 사진 살롱[동아일보사 주최]에서 입상하였다.

[묘소]

홍건직의 제자와 후배들은 1969년 9월 홍건직 선생 추모전[묘비 건립 기금 모금전]을 개최하고, 이듬해 군산시 개정동 공동 묘지에 안장된 묘 앞에 묘비를 세웠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