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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고선생항중헌염찰윤사업위병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2147
한자 次韻高先生抗中獻廉察尹司業威幷序
이칭/별칭 이규보,임피,장시,고항중,윤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황태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168년 - 이규보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241년 - 이규보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241년(고종 21) 8월 - 이규보 아들 이함 『동국이상국집』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199년~1201년 - 이규보 전주목(全州牧)에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 부임
배경 지역 전라북도 군산 임피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군 임피
성격 고율시
작가 이규보

[정의]

고려의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전주에 부임하여 임피군을 시찰할 때 지은 고율시.

[개설]

이규보의 자(字)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로, 만년에는 시·거문고·술을 좋아하였다 하여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부르기도 했다. 최씨 정권의 신임을 얻고 벼슬을 하던 32세 때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 전주에 부임하였다. 당시 그가 쓴 시 60여 수 가운데, 「차운고선생항중헌염찰윤사업위병서」는 군산 선비 고항중과 출세한 윤위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구성]

다섯 자 사십 사 행의 고율시. 1~15행은 이규보의 처음 벼슬 살이에 임하는 회포와 모습을 그리고, 16~28행은 객관에 머물면서 객(客)으로서 느끼는 고향 생각을 보여주었다. 특히 군산을 지칭하는 ‘궁벽한 강군’이니 ‘궁벽한 고을’이라는 표현에서 당시 군산의 정경을 읽을 수 있다. 29~44행은 염찰사 윤위와 군산 선비 고항중의 우정에서 느낀 겸사를 담았다.

[내용]

이 시의 창작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남행월일기」에 의하면 이규보는 전주에 부임한 후, 1200년(庚申年)에 만경·임피·옥구에 들러 며칠을 묵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동국이상국집』에는 옥구 일대에서 여러 날 묵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기록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차운고선생항중헌염찰윤사업위병서」의 서문에는 임피군에서 비를 만나 객관에 머물면서 이 시를 지어서 염찰사 윤위의 행헌으로 보낸다는 기록이 명기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이 작품의 창작 시기를 1200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장시는 옥구현(沃溝縣)에 사는 선비 고항중(高抗中)이 가난해서 집이 없으므로 당시 사업 벼슬에 있던 윤위가 친구의 도리로서 그 고을 원에게 청하여 집을 지어주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다음에 시편을 제시하겠다. 번역은 『군산 시사』를 따랐다.

차운고선생항중헌염찰윤사업위병서(次韻高先生抗中獻廉察尹司業威幷序)[업 윤위가 선생 고항중의 사정을 살피어 고을 원에게 드린 시에 운자를 따서 서를 아울러 씀]

년소증경박(年少曾輕薄)   [나이 젊었을 땐 너무 경박하였고]

양광수지금(佯狂遂至今)   [미친 듯이 행세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네]

공경수사이(公卿誰躧履)   [어느 공경이 반갑게 맞으랴]

귀개혹양금(貴介或攘襟)   [하인들도 옷깃 당겨 밀어내네]

락백종인소(落魄從人笑)   [불운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 되나니]

궁통신명심(窮通信命諶)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천명을 믿을 뿐이라]

빙청문시벽冰靑門始闢    [빙청의 문하에 처음으로 발신했는데]

옥립순교삼(玉立笋交森)   [옥립한 태도 대순처럼 늘어섰었지]

류접경연밀(謬接瓊筵密)   [외람히도 친밀히 경연에 참석하여]

빈승옥례짐(頻承玉醴斟)   [자주 옥례의 대접을 받았는데]

급공등약성(及公登藥省)   [공이 문하성에 오른 뒤로는]

칭아편가림(稱我遍詞林)   [내가 문장에 두루 능하다 일컬어서는]

부귀감기치(富貴堪覊致)   [부귀도 얻을 수 있었고]

공명위축금(功名謂逐擒)   [공명도 얻을 수 있었으니]

월인영왕면(越人榮王冕)   [월인이 면류관을 쓴 것 같고]

모모입원금(嫫母入鴛衾)   [추모의 여자 원앙 금침에 들어온 듯 했네]

허담우심자(許啖牛心炙)   [소 심장의 구이를 먹게 했고]

용추학개음(容趨鶴盖陰)   [학개의 그늘에 따르게 했으며]

행금도외기(幸今叨外奇)   [다행히도 지금은 외직을 얻어서]

영득면평침(嬴得免平沈)   [미천함은 충분히 면했지만]

이읍나흥송(理邑郡興頌)   [다스린 고을에서 추모의 노래 일으킬까]

거관단수잠(居官但守箴)   [벼슬살이에 조심만 할 뿐이라오]

심상친사쇄(尋常親事碎)   [늘 번쇄한 일 직접 처리하니]

하가무서음(何假務書淫)   [어느 겨를에 글 읽을 수 있겠는가]

휼옥정빈측(恤獄情頻惻)   [죄수를 불쌍히 여기는 심정이 자주 측은해 오고]

최강력불임(摧强力不任)   [강호를 꺾자니 힘이 부족하네]

가향사묘묘(家鄕思杳杳)   [고향 생각은 아득할 뿐이고]

세월병침침(歲月迸駸駸)   [세월은 빠르게 달려만 가고]

다행동소사(多幸彤霄使)   [다행히도 왕명받은 사신]

시순벽해심(時巡碧海潯)   [바닷가에도 순찰하니]

영명재팔두(英名才八斗)   [영특한 명망은 재주가 팔두요]

귀상복삼임(貴相腹三壬)   [귀상은 배에 삼임이 있도다]

일견청자름(一見淸姿澟)   [맑고 늠름한 태도 만나보면]

방요조폐심(方澆燥肺燖)   [애끓는 이 마음 바야흐로 풀리리]

연의왕검부(蓮依王儉府)   [왕 검의 막부에 연꽃이 피듯]

현속백아금(絃續白牙琴)   [백아의 거문고도 다시 이으리라]

사대삼동귀(似對三冬晷)   [엄동 설한에 햇볕을 대하듯]

여개십일림(如開十日霜)   [오랜 장마 갠 듯할 텐데]

작투강군벽(昨投江郡僻)   [어저께 궁벽한 강군에 도착하여]

독의객헌음(獨倚客軒吟)   [홀로 객헌에 기대 앉아서 읊었네]

운말경한안(雲末驚寒雁)   [구름 가엔 기러기 소리 들리고]

림간규설금(林間叫雪禽)   [눈 쌓인 숲 속엔 새들도 지저귀었네]

현서전희어(縣胥傳喜語)   [고을 아전 기쁜 소식 전하기를]

사패도전잠(使旆度前岑)   [염찰사의 깃발 앞산에 지나온다 하여]

가졸명종고(街卒鳴鍾皷)   [거리에 늘어선 군사 북을 울리고]

주인개부심(厨人漑釜鬵)   [부엌 맡은 사람 가마솥을 씻으면서]

저첨행색지(竚膽行色至)   [행차 이르길 서서 기다렸는데]

홀급만광침(忽及晩光侵)   [어느 새 저녁 때가 되었네]

견구염혼단(見句髯渾斷)   [시만 보니 수염 끊어지고]

함호탁진검(含毫啄盡黔)   [붓을 머금어 입술이 다 검어졌네]

유회공읍읍(幽懷空悒悒)   [그윽한 회포 부질없이 서글퍼져]

독좌정음음(獨坐靜愔愔)   [홀로 앉아 묵묵하게 생각만 하네]

지협장수어(地狹將誰語)   [궁벽한 고을에서 누구와 이야기할까]

정심반사음(情深反似瘖)   [정깊으니 도리어 벙어리 같네]

감시빈맥맥(感時頻脈脈)   [시절따라 느낌 많아 마음 정할 수 없어]

회구홀암암(懷舊忽喑喑)   [옛일 생각하면 갑자기 말이 막히네]

조측기라석(阻側綺羅席)   [높고 호화로운 자리에 뫼실 수 없으니]

상문금옥음(想聞金玉音)   [그대 소식이나 듣고 싶다오]

하시봉승경(何時逢勝景)   [어느 때나 좋은 경치 만나]

경일대화잠(竟日對華簪)   [종일토록 그대를 대하여]

알옥쟁성인(戞玉等聲咽)   [옥쟁 소리 오열하듯 들려오는데]

경하잔저심(傾河盞底深)   [하수 기울인 양 많은 술 마시면서]

유산개공상(有山皆共賞)   [산마다 함께 구경하고]

무수불동림(無水不同臨)   [물마다 같이 찾아 보다가]

염한리화조(染翰摛華藻)   [종이를 펴고 좋은 문장 쓰기도 하고]

도등화구심(挑撜話舊心)   [등잔불을 돋우며 옛정 나눌까]

약관노고택若觀高老宅)    [만약 고선생의 집이 완성된다면]

허아공유심(許俄共旅尋)   [나에게 같이 놀기를 허락하리]

[의의와 평가]

이규보는 “문벌 귀족이 가졌던 규범적인 사고 방식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며, 민중의 삶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체적인 문학을 이룩하자는 방향”을 문학 작품을 통해 내보였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차운고선생항중헌염찰윤사업위병서」는 지방의 곳곳을 직접 지나며 그들의 생활에 애정을 기울였던 관직 생활 초기의 모습뿐만 아니라 임피·옥구 일대의 선비들과도 교유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인이자 유학자로서의 겸손함을 보이면서도 지나친 표현을 삼가 소박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시의 구절구절은 최자가 말한바, “한 번 갈겨 쓰는 데 백 장을 쓰더라도 모두 옛사람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탁연히 제절로 이루어진다.”라는 평가가 적절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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