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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묘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2079
한자 五龍廟傳說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박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8월 15일 - 「오룡묘 전설」 채록
채록지 「오룡묘 전설」 채록지 - 군산시 옥도면 선유북길 69[선유도리 334]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임씨|딸
모티프 유형 전설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서 채록된 전설.

[채록/수집 상황]

「오룡묘 전설」은 1990년 8월 옥도면 선유도리에 거주하는 송영근에게서 채록되었고, 2000년에 간행된 『군산 시사』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에, 선유도 진말의 앞에 망주봉(望主峰)이라는 두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디, 이 봉 밑에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디여. 그 부인이 해산하여 딸을 하나 났는디, 거시기 이 딸은 날 때부터 외약손을 쥐고만 있어 아무리 역실로 그걸 펴 보려 히여도 펴지지 않았디여.

커서도 그래 쥔 손을 한 번도 페지 않히어 그쪽 손이 아마 병신인가 보다 하구설랑 별로 그리로 신경을 쓰지 않았등갑여. 이 딸이 성년이 되야서 시집 갈 날쌔가 됭개 부모들은 어디다 후딱 혼처를 구히여 놓고 어느 사이 내일로 혼인헐 날이 닥쳐 왔드랑게. 그란디 그 날 밤에 아 글씨 이 처녀 딸 아이가 없어지고 말았당게. 또 혼인 잔치 때 쓸랴고 키워 왔던 큰 도야지 한 마리도 같이 없어져 뻐맀어.

아, 뭐시냐 뭍이라면 그저 혹 그 처녀가 누구 아무개와 바람이 나서 돼지 한 마리 밑천 삼아 도망해 버렸능갑다 하구설랑 생각해 뻐릴 수도 있지마는 여그 이 섬은 배가 있어도 어디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다 가운데라 섬 밖으로는 아예 나갈 수 없어. 집안 사람 동네 사람 모다 나서서 사방으로 사람을 놔서 챚어 봤는디 도대체 아무데도 없어서 모다 맥이 쑥 빠져 있었디여. 헌디 그 때 한 사람이 이 봉 밑이서 북두칠성과 산신(山神)을 모셔 놓은 오룡묘라는 임씨 할머니가 모시는 당집이 있었는디 그 당집에 가 봉개, 거그서 그 처녀와 돼지가 항께 죽어 있드라네. 헌디 요상하게 그 처녀가 항상 쥐고만 있던 손을 좍 펴고 죽어 있어서 보니께 아 거그 손바닥에 왕비(王妃)란 글자가 선명하게 씌여 있더라네. 그제사 그 부모들은 그 딸이 예사의 여자가 아닌 왕비 될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제. 그리여, 아 왕비가 될 사람을 미천한 사람헌티 시집 보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어 죽게 된 것이라. 그제서야 깨닫고 그 죽은 혼이나마 이 당(堂)에다 모신 것인디, 끌끌끌.

처녀의 시체와 돼지는 신시도(新侍島)라는 섬에다 장사 지냈어.

오룡묘에 대해서 말히여 봄세. 그것은 영검한 신당(神堂)으로 이름이 나 있어. 그러니까 옛날 어느 때 하도(下道) 청지와를 한 배 가득 싣고 이 앞바다를 지나 가다가, 갑짜기 이는 풍랑에 그들은 오도 가도 못했디여. 메칠을 지내도 바람은 잦지 않고 그려서 그들 고생도 여간 아니였는디, 아 그런디 하로 밤에는 선장한티 신령님이 나타나서 선몽 허기를 청지와 석장을 오룡묘에다 바치면 갈 수 있다고 하드래여. 그 선장은 이튿날 목욕 재계허고 그 중 좋은 청지와 석 장을 골라 오룡묘에다 바쳤드래여. 아따 그릿더니 그 바로 바람이 잦아져서 그 배는 가게 됐다등구만. 그처름 이 오룡묘는 영험한 신당이여. 그 때 바쳤다는 청지와는 오룡묘의 지붕에 놓여 있었는디 언제 그게 없어졌는지 없어져서 지금은 없대여. 그리고 참 그 망주봉이라는 그 봉은 임금을 바라본대서 그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고. 여그서 범씨(范氏)가 천년 도읍헐 자리라, 그 임금이 나오기를 바란데서 나온 말이라네 그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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