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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서 태어난 최호 장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2075
한자 明堂-崔湖將軍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박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6월 17일 - 「명당서 태어난 최호 장군」 채록
채록지 「명당서 태어난 최호 장군」 채록지 -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155-2[발산리 325]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최호 장군|아버지|대사
모티프 유형 전설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에서 전해오는 전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개정면 발산리에서 당시 65세의 최병권에게 채록된 「명당서 태어난 최호 장군 전설」은 현재 2000년에 간행된 『군산 시사』에 기록되어 있다. 채록 경위는 다음과 같다.

최호 장군 사당 문화재 지정 때문에 평소 친분이 있는 제보자의 집에 들러서 인사를 나눈 뒤에 사당의 보수 공사에 대해서 몇 마디를 나누었다. 찾아온 목적을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청하자 사양을 하였으나 조사자가 최호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호 장군의 자손이어서 그런지 자랑스럽게 구연을 해주었다.

[내용]

최호 장군이 아홉 살 자셔서[먹어서] 아부지[아버지]를 잃었어요. 그렸는디, 그 적에(때에) 일지승 중이, 그 앞으로 산소 앞으로 지내가는데 최호 장군 어머니되는 양반이 거기서 밭을 맸어요. 밭을 매는디, 일지승이란게 손꾸락(손가락)이 하나여, 다 없어지고 손꾸락이 하나. 그래서 일지승이여. 손꾸락 지(脂)자, 한 일(一)자. 근디 그분이 상좌(上佐) 보고 뭐라고 말하는고니,

“여그 온 게 좋구나, 저게 뭔 자린지 아냐?”

근게,

“저기는 12대 문관 지복(文官 之福) 자리올시다.”

“저기, 저기는 뭔 자리냐?”

“저기는 당대 병사(兵使) 자리 올시다.”

그런게 그러고 지내는 것을 그 적에는[때에는] 인자 그냥 얼른 그냥 시원치 않게 들으셨다가 가만히 밭 맴서 부인이라도 생각허닌게 12대 문관 지복, 당대 병사 자리 이렇게 이얘기를 허는 것을 새겨 듣고서는 그 중 물어서 갔어요. 근디 어디까지 갔는고니 새챙이, 지금으로 허면 신챙이지 거기에는 그전에는 다리가 없는게 거기가서 막 배를 탈라고 헌단 말이여, 그 일지승 중이. 근데 거기 가서,

“대사님.”

근게 내가 아쉰게

“아까 대사님 저그서 그 십여리 그 시방 거시기[거시키]저 산 밑이서 12대 문관지복 자리라고 당대 병사자리라고 하지 않았소. 근디 거기 한자리 좀 알려주시오.”

그런게 그 일지승이 이렇게 쳐다보더니 상좌더러,

“저 그 임잔게[임자이니까] 가서 일러, 니가 가서 일러주고 오니라.”

그래서 12대 문관 지복 자리를 일러주고 당대 병사 자리를 일러줬는디, 12대 문관지복 자리로 물론 갈라고, 그 13대가 감사가 나거든. 그리 갈라고 인자 거기 가서 광중(壙中) 안일을 허구서, 인제 그 당신 남편이지 최호 장군 아버지를 거기다 쓸라고 광중 안일을 다 히놨는디 이 딸이 몰래 물을 갖다 붓어 놨어 거기다가, 그리고서는.

“아, 여기는 물나서 못 쓴게 저 당대 병사 자리로 갑시다.”

인제 거그를 못씨구서 이쪽으 가운데 당대 병사 자리를 와서는 탁 웃어. 당신 친정 아버지, 말하자믄 최호 장군 아버지를 거기다가 장사를 모셨다 그말이여.

그런 직후에 저쪽으 가면 밭이 있습니다. 근디 그 밭이 가서 개선군 할아버지가 원제(園頭)를 놓고서는 인제 그 열 대여섯 살 잡쉈어. 그걸 지키는디 하루 저녁으로는 그 원두막으 들어오면서, 꿈이지. 꿈에 웬 허연헌 노인이, 패랭이라는게 그 시방 상립(喪笠)이지. 패랭이 쓴 놈 싯[셋]을 데리고 오더니 뭐라고 말허는고니,

“너를 이 쇠동아줄로 묶으꺼나 이런 동아줄로 묶으꺼나?”

“쇠동아줄로 묶을티면[묶을려면] 묶으시오, 이왕 묶을티면.”

근게 쇠동아줄로 묶었는디 그냥 심[힘]을 쓴게 쇠동아줄이 뚝허니 떨어진단 말여. 근게[그런게] 뭐라고 말하는고니,

“니가 장군은, 장군인디 칼자루가 잘라서[짧아서] 성공을 못허겄다.”

그러믄 우리 시양산 앞으 가서 이렇게 감어나간 산이 있어요. 그 밭이 있는디 그게 칼자루, 근게 자루뫼거든. 칼자루가 좀 잘렀단 말이여. 그런 직후에는 심이 나요. 그쩍부텀은 인제 심심해서 솔같은 것을 뽑아보면은 작대기감 뽑아.〔조사자 : 최호 장군이?〕예. 연목 감 뽑아. 심을 쓸수록 심이 나. 그쩍에는 그래가지고서는 인제 사정재라고, 이 앞으로가 사정재요, 활쏘는 거기다 과녁판을 걸고서 이쪽 건너서 활을 쏘고 이러면은 활도 백발 백중이란 말이여. 그러닌게 그때 듣는 말로는 이 방죽이 커갖고 거가서 이무기가 떨어져가지고서 소[牛]고 뭣이고 그 근방에 매아 놓으면 그냥 잡어 먹어버려. 사람도 거그 지내도 못댕기고. 여기 저 수박재라고 여그 이 재에 가서 바호[바위]가 있는디 그 바호를 지금은 목신 짜국[자국]이 없어졌어요, 그 독[돌]을 캐서. 거그 가서 말하자믄 목신 신고 거그 가셔갖고서는 활을 쏘는디 화살 아홉개채 쏜게 그 이무기가 죽었다 그말여. 그서 그 이무기 썩는 냄새에 삼년은 사람이 못댕겼대요. 그 인제 그런 전설이 있어요. 그런즉 이후에 인제 서울서 무과 과거를 준단게 서울을 가신게 서울 활량들이 뭐라고 허는고니,

“야, 이번 과거에는 우리 장군허기는 글렀다[틀렸다].”

“왜 그러냐?”

근게,

“시골서 이무기 잡은 사람이 이번에 올라왔단다.”

근게 서울 활량들이 있다가,

“야 아무리, 이무기 아니라 용을 잡았어도 시골놈게다가서[시골놈에게] 벼실을 뺏길라더냐?”

그서 인제 그때는 그 서울 활량들허고 시골 활량들허고는 그 차이가 있는게 서울 활량들 활 다 쏜 뒤여. 근게 그런데 활이라는 것은 으례껏 오중(五中)이거든요. 다 쏜 뒤여.

인제 쏠 사람이 없은게 인제 개선군 할아버지가 활을 쏘러 들어가는디 들어가셔갖고서는 상시관(上試官)더러,

“여기 주는 활 갖고서는 참 못 쏘겄으니 궁노(弓弩)를 갖고 쏘면 어쩔까요?”

그 궁노라는 건 쇠활이랍디다.

“잘허는 대로 허라.”

고 근게 한방으 과녁판이 부서져버렸단 말여. 근게 오중으 한번에 그냥 첫번에 과녁판이 부서진게 그 급제여. 과녁판이 자개져 번진게. 이런 활로 쏘다가서 쇠활로 쏜게 부서질 것 아니라고 그 급제인디 그 다음의 못쏘게 혀 상시관이.〔조사자 : 왜?〕급제만 허고 말어라 그거지. 이 촌사람인게 아무런 것이기가 없은게. 그래가지고서 인제 급제에 가서 그게 오인 급제여, 오인 급제. 그 양반 초직(初職)이. 그래서

인제 그 기듬해[이듬해]가서는 인제 이게, 인제 과거질[길]을 터놨은게 활을 쏘는디 일인 급제요. 일인 급제란 건 활 잘쏘는 사람, 인제 그 무과에 그 등과한 사람들 육십명이 뫼아서[모여서] 거기서 하나가 장원허는 게. 그 일인 급제를 했단 말입니다.〔조사자 : 얼마나 어렵것소?〕예, 그래가지고서는 인제 강진 현감(縣監)을 가셔갖고서 두루 인제 그 말하자면 임란[임진 왜란]을 거치는디, 하이꺼나[하여간] 우리 할아버지 역사가 잘 안나와요. 왜냐?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 충청도 양반들이나 경상도 양반들이 헌일 같으먼 이게 잘 나오는데, 이 전라도 사람들이라는 건 여간 그 정신을 기울여야 그때에 고을살이 하나 히어먹을뚱 말뚱 그랬던 갑디다. 세(勢)가 그만큼 약했어요. 그래 갖구서는 인제 우리 할아버지 그 흔적사(痕迹史)는 이 임란이 그 잘 나오들 않거든요. 않는디 여러 관직을 인제 다니시다가서는 병사[마]절도사로 가시갖구서는 저그 선산 알지. 그렇게 인제 거그서 말허자면 충청 수사(水使) 수군 절도사로 오실 적에 좌천되갖구 오신거여, 할아버지가 그랬는디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갑자기 화제를 바꿔] 그 양길인가 저 동중 학교 시방 그 거시기 그〔조사자 : 김양규〕응! 〔조사자 : 내가 얘기해 준거여.〕그런디 충무공이 젤[제일]애꼈어. 우리 할아버지는 그때에 그 충무공 허면 노쟁, 노장(老將)이여. 우리 할아버지가 벼슬허기를 그때 말엽 9년 히어갖고서 말엽 24까장[까지]가셨은게 에 16년을 했는가 어 이렇게 갔는디. 그러면 그 순간에 임란 안 치루고서 뭣 했겄습니까? 돌아가시길 임란에 돌아, 아니 저 정유재란에 돌아갔는디, 근게 임란 전기부터 공을 이루던지 공을 많이 이뤘다. 그말여, 이뤘은게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 있었고, 그랬다가서 정유재란이 우리 할아버지가 그 돌아가신 거여. 근게 명당이 시방 사람은 읎다고[없다고] 그러는디 명당이 글로 보면[그것으로 보면] 있고, 그 뒤여 그 12대 문관 지복 자리는 청풍 김씨들, 청풍 김씨들이 썼어요. 예 우리 외손이여. 씨갖고서는 그이들은 13대를 감사를 살었대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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