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2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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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今時發福-明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집필자 | 박순호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6월 19일 - 「금시발복의 명당」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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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금시발복의 명당」 채록지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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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오누이 |
모티프 유형 | 민담 |
제보자 | 이창래[남, 78세]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에 전하는 설화.
1989년 6월 당시 78세의 이창래에게서 채록한 「금시발복의 명당 설화」는 2000년에 간행된 『군산 시사』에 기록되어 있다. 채록 경위는 다음과 같다. 제보자 이창래는 조사자만 있는데도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는 듯 막히는 데가 없이 열심히 구연했는데,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전이 어떤 사람은 홀아비로 지내는디, 한 사십여 세 홀아비로 지내는디,〔목청을 가다듬고 나서〕 암것[아무것]도 읎어[없어]. 그서 언먹막[언덕막]의 외[오이]나 놔먹고 사는디, 참 밭 멫 마지기 짓던가 암것도 읎고 그것만 짓고 사는 사람인디,
하루는 인자 그 원두막으설락컨 외를 놓고서 지키고 있는디, 아조[아주] 원두막으다가서 도고통[절구통]갖다 놓고 거그서 보리방아 찧어서 먹어감서 걍[그냥] 거그서 살어. 걍 홀애비로 거시기 허는디, 아 저녁때 석양(夕陽) 판[무렵]이 되았는디 웬 나나리 보따리[괴나리봇짐] 짊어진 노인 하나가 올라온다 그말여. 원두막으로 올라와.
“후유!”
허고 올라와설락컨,
“아, 여그서 쉬어 가야겄다.”
본게 시장헌 것 같어. 그리고 외를 따다가 디렸어[드렸어]. 감식(甘食)을 혀, 그나지나 잘 자셔[잡수셔]. 아, 저녁때 다가서 ‘갈까?…’ 힜더니 가도 않네. 그서는 인자[이제] 앉었네. 앉어 갖고서람은 안갈 작정혀. 하, 이것 인자 도고통으다 보리방아 찧어갖고 삶아서 보리밥 삶어 가지고 그래도 맛있게 먹네. 먹고서는 안 가. 참 그나지나 환장허겄지. 아인자 그날 저녁으 자고서 난게 그때 또 하나가 올라오네. 영감 하나가 올라오네.〔조사자 : 그 분 말고?〕음-. 올라와, 본게스니 파립(破笠)힜는디 시장헌 것 같아서 외를 좀 따다가 디린게,
“아 이것 좋다!”
고 자셔. 인자 그런 직후는 먼저 온 노인 양반이 뭐라 허는고니,
“주인장어게[에게] 미안헙니다. 여그 와서 이렇게 폐를 끼치고 본게 으떻게 말할 수도 없고 뭐라고 헐 말이 없다고, 근게, 그 답례로 땅이나 하나 내가 잡어 주리다.”
그러므는 이것이 땡(땅)이 어떻게 생긴 땅인고니 자시(子時)의 하관시(下棺時)요, 축시(丑時)의 발복시(發福時)여 게가[거기가] 〔조사자 : 하이고 빠르네!〕음, 빠르지. 그 인자 자기 홀애비 저그 선친인디 말여, 선친인디. 누가 하나도 없어. 그리갖고서는 남의 동네 당산(堂山)이가 뫼(묘, 墓)를 쓸 참여. 근게스니 누구 데리가도 못혀. 허는디 그 늙은이들 둘허고 자기허고 서이[셋이] 가네 인자. 가서 참 뫼를 파가지고 설락커니 가서 인자 뫼를 쓰게 되는디, 먼저 온 양반은 여그다 씨작커니, 아 그런디 먼저 온 양반은,
“여그다 씨먼은[쓰면] 여그서 바로 금시발복(今時 發福) 은 못허지만서도 여그서 정승(政丞)이 날 자리다. 예가[여기가]. 이런 디[데]다 써야지 임시(臨時) 발복 자리다만 씰라고[쓰려고] 그러냐?”
헌게스니 나중의 온 이가 말여,
“무슨 소리냐. 밥이 사는 것여. 밥을 먹어야지 정승도 허는 것이지, 밥도 정승허는 것여?”
아, 익서 시끄러가지고 까딱허먼 뫼도 못허게 생겼어. 〔웃으면서〕먼저 온 이가 졌네.
“근게, 보쇼. 그러면 자시 하관시, 축시 발복인디 말여. 밥을 먹으면 인자〔부채로 방바닥 이쪽 저쪽을 가리키며〕거그다 써, 인자 여그다 써, 인자 또 파다 여그다 써.”
그렇게 회의가 되았네 인자. 홀애비가 젠장의 원두막으서 사는 홀애비가 좋은 땅 얻어갖고 뫼를 쓰는디 그 인자 나중으는 그 영감 말대로 거그다 썼네 인자 뫼를, 자시 하관시 축시 발복으다 썼어. 써가지고 집이 내리갔어. 인자 뭣이 있어야지, 암 것도 없네, 집이라는 것이 원두막인게 뭐. 저 낼[내일] 아침이 저 양반들을 밥을 히서 디리야겄는디 보리껍밥을 맨들 수도 없고 어디케 쌀을 인자 어찌케 헐 수도 없고, 뭐냐스니 그 동네 과택(寡宅)이 있어. 과택이 부자여. 근디 ‘과택한티 가서 내가 한 번 사정히야겄다.’고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디, 과택이 새벽녘이 된게스니 꿈을 뀌는디 말여. 즈[자기] 선조라는디 말이지, 선조라는 저 뭣이라는디 말이지 꿈으 선몽, 현몽( 顯夢)을 허는디,
“네 여 들어봐라. 내일 새벽으 인제 다섯 시나 여섯 시 근방되먼 말여, 되먼은 무슨 사람이 찾을 것인게 찾으먼은 그 사람 후이 대접해라.”
그거여.
“글 않으면[그렇지 않으면]니가….”
그 자식 하나 있어. 그 과택이 자슥 하나가 있어. 참 유복자(遺腹子)로 하나가 있어. 그것이 그 크는 자식이 있는디 그때는 아마 댓 살 먹었던 자슥이 있는디,
“그리야만이 자슥 킨다[키운다]. 글 않으면 자식을 못 키는 것이다. 근게스니 내 말 명심허렸다.”
허고서 읎어져 버려. 아, 전날 자다 보닌게 또 와서 선몽을 허네 그려.
“너 명심허냐? 너 까딱허믄 큰일 나. 근게 너 명심허라.”
허고서 또 선몽을 허고 가. 그러자마자 와서 인자 대문을 뚜디려[두드려], 와서. 그 인제 홀애비가 와서 대문을 뚜디려. 뚜디린게스니 문을 열어.
“들오라.”고 근게스니 건넛 마을 사는 홀애비여.
“어찌, 이리 오셨냐?”고.
“아하, 그런게 아뇨. 내가 아다시피 참 원두막으서 살고 그런 사람 아니요? 해마다 그런 사람인디, 근디 웬 지관(地官)양반들 둘이 오셨는디, 내 엊저녁에 우리 아버지 장사(葬事)를 지냈소. 지냈는디 그 노인네들 아침을 히디리야겄는디 뭣이 건지가 없어요. 그서 시방 쌀 멫 말나 얻으러 왔습니다.”
허허, 가만히 생각히 본게스니 꿈을 선몽하던 거시기 생각히 본게스니 그냥 말어선 못 쓰겄어.
“그러지 마시고 그러믄 되로[도로]가 두 분 다 모시고 오쇼.”
그려. 아, 모다 데리고 오라는 것여, 가서〔웃으면서〕그 말 헌게 인자 주욱 따러 오네, 둘이 따러 와.
“아, 봐. 금시발복이 아녀, 여그가? 자시 하관시, 축시 발복 아녀, 여그가? 인자 발복 되았어 인자.”
닭을 잡어서 막 걍 대접을 허네, 그 판에 가서 잘 먹었네. 먹고서는 인자 가는디
“인자 그런 것을 안에서도[아내 쪽에서도] 써야 혀, 그리야 정승이 나.”
하나는 안에서 가서 써줬어. 또 가서 받어서 써줬어, 금방 발복이 힜다는디. 그러가지고서 거그서는 그 홀어머니 자슥을 말이지 담어 가지고서 그 자식이 정승을 힜어.
그리서 그런 예가 있는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말여.〔조사자 : 홀에미허고 살고?〕암믄, 살고 말고. 홀에미허고 살고 자식 제 자식 내고 말여. 그리고 거서 또 자식 낳고 그럴테지.〔조사자 : 자식은 정승하고?〕암믄, 응.〔조사자 : 속 빠르네.〕〔웃으면서〕그런게스니 그런 땅을 보야는디 어떤 놈이 그 알어야지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