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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신문』[1947]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856
한자 群山新聞[1947]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47년 10월 15일연표보기 - 『군산신문』[1947] 창간
폐간|종간 시기/일시 1973년 6월 1일 - 『전북 일보』, 『전북 매일 신문』과 『전북 신문』으로 통합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1년 3월 1일연표보기 - 『군산신문』[1947]에서 『호남 일보』로 개칭
성격 신문
관련 인물 나필성
창간인 김종량
발행인 김종량
판형 타블로이드판

[정의]

1947년에 창간된 군산 지역의 일간 신문.

[창간 경위]

서울에서 발행되는 『한성 일보』 사장 김종량이 1947년 11월 15일 타블로이드판 2면으로 일간지 『군산신문』을 창간하였다.

[형태]

『군산신문』은 타블로이드판 2면으로 발행되었다.

[구성/내용]

『군산신문』의 운영 체제는 김종량 사장이 발행인을 겸했고, 부사장에 이철, 편집국장 김준권, 총무국장 배건학, 기획국장 백종기, 업무국장 현부남 등으로 이루어졌다.

[변천과 현황]

김종량 사장은 창간 기념으로 제1회 남녀 문예 현상 공모를 개최하였다. 심사위원장은 소설 『탁류』를 집필한 채만식이었으며. 당선작 상금은 소설 3,000원. 시(詩) 1,000원, 수필 1,000원이었다. 문예 현상 공모는 2회[1948년]까지 열렸는데, 채만식이 심사평을 영어로 작성해서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사회의 양심을 바로잡자’를 사시(社是)로 내세운 『군산신문』군산시 장미동에 사옥을 두고 앞면에 외신과 서울 소식을, 뒷면에는 지방 뉴스를 게재했다. 몇 년 후에는 시청 출입 기자, 법원·검찰 출입 기자, 학교[교육] 담당 기자를 두고 지면을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발행하는데, 사진 등판 기계도 갖춰 있지 않은 등 시설이 열악했다고 한다. 『군산신문』은 1950년 7월 18일 공산군의 진입으로 휴간하였다가 10월 1일 속간하였다.

『군산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원로 언론인 나필성[86세]은 1950년 『군산신문』에서 기자를 공모했는데 60명~70명이 응시했고, 본인을 포함해 5명이 합격했다고 전한다. 월급은 5만원으로, 당시 사회가 혼란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젊은이들이 희망하는 직업 중 하나였다고 한다. 『군산신문』은 경영상 어려움으로 1961년 당시 편집 국장이던 원상식이 인수하였다고 한다.

1961년 3월 1일 원상식이 『군산 신문』을 인수하여 『호남 일보』로 이름을 바꾸고 군산시 금동에서 발간되던 『군산 민보』의 사옥과 시설을 매입하여 창간호를 내었다. 1972년 3월 30일 원상식 사장이 기부금 모집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1973년 6월 1일 전주에서 발행되던 『전북 일보』, 『전북 매일 신문』과 함께 3사가 통합하여 『전북 신문』으로 되었다가 1983년 6월 1일 『전북 일보』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http://encykorea.aks.ac.kr)
  • 인터뷰(전 『군산신문』 기자 나필성, 8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