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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98
한자 李己準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0년연표보기 - 이기준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09년 5월 12일연표보기 - 이기준 사망
출생지 이기준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이기준 활동지 - 전라북도 익산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의병.

[개설]

1909년 5월 의병장으로 부하 약 20여 명과 함께 전라북도 용안 등지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전사 순국했다.

[활동 사항]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여갔다. 나아가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1907년 8월부터는 해산 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계층도 유림, 농민, 포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상인, 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국민 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의 의병 전쟁은 처음에는 전기 의병과 같은 대회전(大會戰)방식이었으나 1906년 말부터는 소부대에 의한 유격전 방식으로 변해 갔다. 때문에 의병의 거점도 향교 같은 곳이 아니라 읍성(邑城)이나 산성이었고 나중에 유격전으로 변해가면서는 산악으로 옮겨갔다. 아울러 의병진의 전력도 증강되어 전국 곳곳에서 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 시기에 이기준은 일본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군사들을 규합하여 의병으로 항쟁하였다. 1909년 5월 용안군(龍安郡) 이동면(二東面)[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군자금을 수합하는 등의 활동을 하던 중 용안 주재소 및 강경 경찰서 일본 경찰들의 공격을 받고 교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0)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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