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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76
한자 金聖恩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 9월 23일연표보기 - 김성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5일 - 김성은 피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김성은 광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유죄 판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김성은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언도받고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61년 5월 21일연표보기 - 김성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 - 김성은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 3·1 운동 발발
출생지 김성은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김성은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김성은은 군산의 만세운동의 준비와 1919년 3월 5일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원래 군산의 만세운동은 군산 장날인 3월 6일로 계획하고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서 주요 지도자들이 연행되자 학생, 예수교 신자, 부근 주민 등 500여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고, 군산 시내를 행진하였다. 또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등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활동 사항]

독실한 기독교인 김성은은 1919년 3월 5일 전라북도 군산에서 김병수(金炳洙)·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유희순(兪熙淳)·양기준(梁基俊)·유한종(劉漢鍾)·양성도(楊成道)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 운동에 참가하였다. 군산의 만세운동은 군산 장날인 3월 6일로 계획하고 영명 학교[현 군산 제일 중·고등 학교] 기숙사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준비하였는데 사전에 군산 경찰서 무장 경찰관 수십명이 출동하여 주도자인 박연세, 이두열 교사 등을 강제 연행 구인하면서 거사계획이 좌절될 뻔 하였다. 그러나 계획을 바꾸어서 3월 5일을 기해서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여 500여 명의 시위 군중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고 경찰서 앞에서 구속된 교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김성은은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동지를 규합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31일 광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하였다. 1919년 4월 30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 6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김성은은 출옥 후에 교회에서 전도 활동을 하면서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등 독립운동 활동을 계속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3권(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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