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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성 처 남평문씨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06
한자 田益成妻南平文氏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0년연표보기 - 전익성 처 남평문씨 출생
추모 시기/일시 1889년 - 전익성 처 남평문씨 정려 건립
묘소|단소 전익성 처 남평문씨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지도보기 여기산
성격 효부
성별
본관 남평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 효부.

[개설]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출신으로, 옥구에 세거한 담양 전씨 참판공파 참의공파 출신인 전익성(田益成)에게 시집을 갔다. 시부모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으며, 남편이 병이 들자 사방으로 약을 구하여 마침내 남편의 병을 낫게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정려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고, 당시에 세운 정려가 남아 있다.

[가계]

남평문씨의 증조할아버지는 문희직(文希稷)이며, 할아버지는 문명태(文命泰)이고 아버지는 문약채(文若采)이다.

[활동 사항]

남평문씨는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나이 20세에 전익성에게 시집을 갔다. 시부모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으며, 시부모가 병이 들자 비복(婢僕)[계집 종과 사내 종]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탕약을 끓여 시부모에게 드렸고 사망하자 예의를 다하여 장례를 치러 주위에서 그 효행을 모두 칭찬하였다.

남편이 병이 들자 사방으로 약을 구하여 마침내 남편의 병을 낫게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남평문씨의 효행(孝行)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1889(고종 26)에 정려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다. 당시에 세워진 정려가 지금도 군산시 옥구읍 오곡리 원오곡 마을에 남아 있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여기산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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