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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면·옥산면·옥구읍·옥서면남평문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46
한자 澮縣面玉山面沃溝邑沃西面南平文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옥산면|옥구읍|옥서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남평문씨 시중공파 집성촌 - 군산 옥구현
성격 남평문씨 시중공파 집성촌

[정의]

조선 시대 군산[옛 옥구현] 지역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집성촌.

[개설]

남평문씨(南平文氏) 시중공파(侍中公派)는 15세기에 문헌(文獻)이 단성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옥산면 남내리 일대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으며, 조선 시대 옥구 지방의 5대 성씨 중에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명칭 유래]

남평문씨(南平文氏) 시중공파(侍中公派)의 집성촌이 가장 밀집하여 형성되어 있는 남내리는 옥구현 박면[지산면]에 속한 지역으로, 대황산 남쪽에 내[하천]가 있으므로 남내라 하고, 동쪽의 고개 이름을 따서 지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성리, 지경리, 봉황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내리라 해서 옥산면에 편입되었다.

[형성 및 변천]

남평문씨회현면, 옥산면, 옥구읍, 옥서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후손들은 15세기에 단성(丹城)에서 옥구(沃溝)로 입거한, 전주 판관(全州判官)을 지낸 문헌의 후손들이다. 문헌남평문씨 시조 문다성(文多省)의 14세손이고, 시중공 문중진(文中晉)의 장남이다. 그래서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들은 자신들을 남평문씨 시중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자연 환경]

남내리 일대는 군산 시내에서 들어가자면, 좌측으로는 옥산과 회현을 잇는 청암산 자락과 우측으로는 봉황산 자락이 있고 두 산자락 사이에 뜰이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 갈수록 올라가고 막혀 있으며, 북쪽으로는 멀리 군산이 훤히 보인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남평문씨회현면 원우리 일대에 28가구 134명[표산 마을 10가구 48명, 용화 마을 18가구 86명], 세장리 일대에 12가구 54명[신성동 마을 7가구 31명, 죽동 마을 5가구 23명], 고사리 금반 마을에 25가구 111명, 옥산면 옥산리 일대에 19가구 103명[옥교 마을 1가구 5명, 내류 마을 1가구 8명, 여로 마을 8가구 53명, 대려 마을 9가구 37명], 쌍봉리 일대에 33가구 120명[봉동 마을 20가구 67명, 신기 마을 1가구 3명, 북내 마을 3가구 15명, 접산 마을 8가구 31명, 접산 마을 1가구 4명], 당북리 일대에 10가구 43명[원당 마을 4가구 17명, 신당 마을 1가구 1명, 백석 마을 3가구 13명, 한림 마을 2가구 12명], 남내리 일대에 72가구 333명[망동 28가구 110명, 남내 마을 30가구 184명, 구성 마을 8가구 39명], 옥구읍 어은리 일대에 43가구 185명[동마산 마을 1가구 9명, 둔산 마을 19가구 71명, 서마산 마을 19가구 71명, 서마산 마을 6가구 32명, 사호촌 마을 4가구 17명, 광야 마을 2가구 10명, 괄목촌 마을 3가구 12명, 어은 마을 6가구 23명, 중야 마을 2가구 11명], 옥서면 선연리 일대에 27가구 112명이 각각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현재 군산 지역 일대 남평문씨 집성촌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12 항목명 수정 항목명에서 일대 삭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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