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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면 청주한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39
한자 大野面淸州韓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청주한씨 집성촌 - 군산 대야면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에 있는 청주 한씨 집성촌.

[개설]

한우(韓遇)가 16세기 전반에 경기도 양주에서 임피현[현재의 대야면 보덕리]로 들어와 거주한 이후 후손들이 보덕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은 자신들을 청주한씨 정랑공파(正郞公派)라고 불렀다.

[명칭 유래]

보덕리는 임피군 남산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덕리, 외덕리, 초산리, 안정리 및 덕봉리, 석둔리의 각 일부와 상북면의 구억리 일부를 병합하여 보덕리라 해서 대야면에 편입되었다. 보덕리에는 청주한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초산 안쪽에 있는 마을로써 까치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해서 알매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임피에 세거한 청주한씨 정랑공파(正郞公派) 입향조는 한우(韓遇)이다. 한우는 1473년(성종 4)에 태어났으며,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의 15세손이고, 좌우승지(左右承旨)를 거쳐 도승지(都承旨)를 지냈다. 연산군이 폭정을 거듭하자 관직을 버리고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옛 임피현 남산면(南三面)[지금의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에 입거하였다. 한우의 묘는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금성산에 있다.

[현황]

한우(韓遇)가 임피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대야면 보덕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보덕리 일대에 청주한씨가 12가구 37명[외덕 마을 3가구 9명, 덕곡 마을 2가구 8명, 내덕 마을 4가구 14명, 분토 마을 1가구 1명, 덕붕 마을 1가구, 안정 마을 1가구 5명]이 살았다고 한다. 한우의 6세손 한홍적(韓弘績)은 1652년(효종 3) 증광시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한우(韓遇)의 15세손 한영교(韓永敎)는 1855년(철종 6) 식년시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이후 청주한씨 집성촌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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