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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면·옥구읍·회현면제주고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36
한자 玉山面沃溝邑澮縣面濟州高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옥구현]에 세거한 제주고씨 참의공파 집성촌.

[개설]

제주고씨(濟州高氏) 참의공파의 집성촌은 참의공 고의충(高義忠)이 고려가 멸망하자 고향 옥구로 내려온 이래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고의충의 후손들은 옥산면 쌍봉리, 옥구읍 옥정리, 옥구읍 어은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고려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군산 지역에 세거한 유일한 성씨이기도 하며, 옥구의 5대 성씨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명칭 유래]

제주고씨가 가장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는 쌍봉리는 본래 옥구현 박면[지산면]에 속했는데, 1910년에 군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북내 1리와 북내 2리 및 북내 3리, 산정리, 평사리, 봉황 1리와 봉황 2리, 접산리, 석교리, 여로리의 일부, 신성리의 일부, 임피군 서삼면 와룡리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봉황 1리와 2리의 이름을 따서 쌍봉리라고 칭하고 옥산면에 편입되었다. 옥정리는 옥구현 서면 지역에 옥정이라는 좋은 샘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1910년 군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척동리를 병합하여 옥구군 옥구면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옥구읍으로 승격되었다.

[형성 및 변천]

옥산면, 옥구읍, 회현면 일대에 제주 고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이들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이유로 고향 옥구로 낙향한 참의를 지낸 고의충(高義忠)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제주고씨 문충공파 참의공파라고 부르고 있는데, 고려 시대 전기 이래 현재까지 군산 지역에 세거한 유일한 성씨이기도 하다. 고의충은 12세기에 중앙의 고위 관리로 있으면서 직언을 하다가 다른 관리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고 오식도로 좌천된 고돈겸(高惇謙)[고돈겸은 탐라국의 마지막 왕 자견왕의 후손이다.]의 9세손이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제주고씨쌍봉리 일대에 58가구 95명[봉서 마을 36가구 34명-가구 수가 인구 수보다 많은 것으로 보아, 기록이 약간 잘못 되어 있는 것 같다.- 봉동 마을 19가구 40명, 신기 마을 1가구 2명, 접산 마을 3가구 8명, 북내 마을 5가구 11명], 옥구읍 옥정리 일대에 25가구 42명[옥정 마을 24가구 37명, 척동 마을 1가구 5명], 옥구읍 어은리 일대에 19가구 70명[칠호촌 마을 1가구 1명, 동마산 마을 1가구 5명, 둔산 마을 9가구 28명, 팔목촌 마을 4가구 19명, 광야 마을 2가구 9명, 사호촌 마을 2가구 8명], 학당리 일대에 14가구 71명이 각각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이후 제주 고씨 집성촌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12 항목명 수정 항목명에서 '일대의' 삭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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