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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면 안동노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18
한자 瑞穗面安東盧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서수면 안동노씨 집성촌 - 군산 지역
성격 집성촌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 지역]에 세거한 안동노씨 이조판서공파 집성촌.

[개설]

15세기 전반에 노윤적(盧允迪)이 임피로 입거한 이후 노윤적의 후손들이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후손들이 자신들을 안동노씨 이조판서공파라고 불렀다.

[명칭 유래]

마룡리는 임피군 동이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이 통폐합 될 때, 장곶리, 용귀리, 산간리, 신장리, 복우리, 내동리, 권원리, 호산리, 소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마룡리라 하고 서수면에 편입하였다. 서수리는 임피군 동이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이 통폐합될 때, 옹전리, 아이리, 외일리, 옥하리, 용회리, 호산리, 용성리의 각 일부와 남일면의 족동리, 창성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서수리라 해서 나포면에 편입되었다.

[형성 및 변천]

임피현에 세거한 안동 노씨는 15세기 전반에 안동노씨 시조 노만(盧만)의 7세손인 노윤적(盧允迪)이 안동에서 처가가 있는 임피로 입거한 이후 노윤적의 후손들 중에 일부가 서수면 일대[마룡리, 서수리, 장상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또 다른 후손들은 김제, 익산 등지에 산거(散居)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안동노씨 이조판서공파라고 불렀다.[노윤적은 이조 판서를 지냈다.] 노윤적의 처가는 남원 양씨(南原梁氏)이며, 교리(校理)를 지낸 양권(梁權)이 처부(妻父)인데, 양권(梁權)은 1401년(태종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남원 양씨 옥구 입향조인 양의생(梁宜生)의 차자(次子)이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안동노씨서수면 마룡리 일대에 34가구 145명, 서수리 일대에 16가구 67명, 장상리 일대에 15가구 60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후 서수면 안동노씨 집성촌의 현황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가 없어 알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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