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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면 창녕성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06
한자 開井面昌寧成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두헌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 지역]에 세거한 창녕성씨 집성촌.

[개설]

16세기 중엽에 성수번(成秀蕃)이 경기도 용인에서 군산시[옛 임피현] 동일면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성수번의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그 중에 개정면 일대에 형성된 집성촌이 가장 오래까지 남아 있다.

[형성 및 변천]

개정면 일대 창녕 성씨(昌寧成氏) 집성촌은 16세기 중엽에 성수번(成秀蕃)이 경기도 용인에서 군산시[옛 임피현] 동일면으로 이주하면서부터 형성되었다 성수번은 조선 시대 임피에 세거한 창녕성씨 좌랑공파의 입향조이다. 좌랑공은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6세손 성사준(成士俊)이고, 성사준의 6세손이 성수번이다. 성수번의 셋째 아들 성봉천(成奉天)의 생졸 연도[1534~1593]로 보아, 성수번이 임피에 입거한 시기는 16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성수번은 선무랑, 통예원 인의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1562년(광해군 14) 예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성수번의 큰아들 성봉손(成奉孫)과 둘째 아들 성봉진(成奉縉)은 1549년(명종 4) 식년시 진사시에 동방(同榜)하였다.

[현황]

성수번(成秀蕃)이 임피현에 입거한 이후 성수번의 후손들이 조선 시대 임피현 지역이었던 현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개정면 운회리 일대에 창녕성씨가 27가구 142명[당산 마을 20가구 111명, 송호 1구 마을 4가구 20명, 송호 2구 마을 2가구 9명, 와룡 마을 1가구 2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후에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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