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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김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871
한자 開城金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옥산면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지 개성김씨 입향지 -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외곤리 및 옥산면 남내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개성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외곤리 및 옥산면 쌍봉리
성씨 시조 김용주(金龍珠)
입향 시조 김맹의(金孟義)|김윤신(金允信)

[정의]

김맹의(金孟義)김윤신(金允信)을 파시조로 하는 조선 시대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임피현] 에 세거한 개성김씨 나포면 옥곤리파와 옥산면 쌍봉리파.

[개설]

개성김씨(開城 金氏)는 조선 시대 군산 지역에서 세거한 성씨로, 15세기 말 이후 나포면 옥곤리에 거주한 개성김씨 옥곤리파와 옥산면 쌍봉리파가 동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연원]

개성(開城)은 고려의 수도였으며, 현재 평안남도 남부의 개성시이다. 개성김씨는 의성 김씨에서, 의성 김씨는 경주 김씨에서 각각 분관되었다. 경주 김씨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다. 김알지의 28세 후손이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傳, 金溥)이고,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석(金錫)이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시조이며, 김석(金錫)의 9세손 김용주(金龍珠)가 개성김씨 시조이다. 김용주는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차례 여진족을 정벌하는데 공을 세워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며, 개성군에 봉하여졌다.

[입향 경위]

개성김씨 시조 김용주(金龍珠)의 8세손이며 병조 판서를 지낸 김용니(金用泥)에게는 김맹의(金孟義), 김윤의(金允義), 김윤신(金允信), 김윤례(金允禮) 등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15세기 말 경에 이들은 각각 임피와 임실, 옥구에 입거하였다.

[현황]

김용니(金用泥)의 장남 김맹의(金孟義)는 임피로 입거하여 임피 옥곤리파의 파시조가 되었고, 차남 김윤의(金允義)는 임피로 입거하였다가 그 후손들이 다시 임실에 이주하여 세거함으로써 임실파의 파시조가 되었다. 삼남 김윤신(金允信)은 옥구로 낙향하여 옥구 쌍봉리파의 파시조가 되었으며, 사남 김윤례(金允禮)는 옥구로 입거하여 옥구 조촌파의 파시조가 되었다. 김맹의(金孟義)의 후손들은 나포면 옥곤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으며, 김윤신(金允信)의 후손들은 옥산면 쌍봉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을 각각 개성김씨 임피 옥곤리파와 개성김씨 옥구 쌍봉리파라고 부르고 있다. 김윤신(金允信)과 그의 직계 자손들의 무덤은 옥산면 남내리 용화산 기슭에 있다. 김윤신의 후손들 중에서 과거에 합격한 것으로 현재 확인되는 인물은 김윤신의 손자 김성두(金星斗)와 7세손 김이태(金以泰)이다. 김성두는 1534년(중종 29) 식년시 생원시 합격하였고, 김이태는 1672년(현종 13) 별시 무과에 554인으로 급제하였다.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개성김씨의 인구 현황은 조사된 사례가 없어, 현재 그 정확한 수를 알 수가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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