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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58
한자 拉北漁夫徐昌德間諜造作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7년 5월 - 납북 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2011년 1월 13일 - 납북 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사건 종결
발단 시기/일시 1984년 - 전주 보안대 서창덕 체포
전개 시기/일시 2006년 1월 23일 - 서창덕 진실 화해 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
전개 시기/일시 2008년 10월 31일 - 서창덕 간첩사건 재심공판에서 무죄 선고
성격 간첩조작사건
관련 인물/단체 서창덕|진실 화해 위원회|전주 보안 부대

[정의]

1967년 황해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 북한에 피랍됐다 귀환한 군산 출신의 서창덕이 간첩으로 누명을 썼다가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

[개설]

승룡호 선원이던 서창덕(徐昌徳)이 1967년 5월 조업 중 납북되었고 9월에 귀환했는데, 17년이 지난 1984년 전주 보안대가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별다른 혐의없이 체포하여, 불법 구금 및 구타 등 가혹 행위를 가하여 자백을 이끌어내고, 법원은 허위 자백한 사실에 기초하여 징역 10년의 중형으로 처벌한 비인도적인 인권 유린 사건이다.

[역사적 배경]

1947년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에서 태어난 서창덕은 1967년 황해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피랍되었다가 124일만에 귀환했다. 서창덕은 1969년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처벌을 받았으나 17년이 지난 1984년 대남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국가 기밀을 탐지하고 북한을 찬양해 이롭게 했다는 등의 혐의로 다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1991년 가석방됐다.

[경과]

서창덕은 수사 기관에 불법 감금당한 채 구타 등 가혹 행위로 범죄 사실이 조작되어 장기간의 수형 생활을 하고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는 등 인권 침해를 당하였다며, 2006년 1월 23일 진실 화해 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결과]

진실 화해 위원회는 “전주 보안 부대는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잠 안 재우기, 머리나 뺨 등 구타,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구타, 무릎 밟기 등의 가혹 행위를 서창덕은 물론 참고인에게까지 가하였고, 범죄 사실 또한 허위 자백한 사실에 기초한 것으로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이어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 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함이 필요하다.”며 무죄 취재의 재심을 권고했다.

전주 지방 법원 군산 지원 제 1 형사부[부장 판사 정재규]는 2008년 10월 31일 열린 이른바 '서창덕 간첩사건' 재심 공판에서 "서창덕 씨가 동료 선원과 함께 북한 경비정에 피랍돼 반국가 단체의 지령을 받고 귀환해 국가 기밀을 탐지하고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했다는 공소 사실은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서씨는 24년 만에 간첩 혐의를 벗고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이후 서창덕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하였고 2011년 1월 13일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귀환해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서창덕과 가족이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6억 2천 여 만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