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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민의 군산 정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47
한자 越南民-群山定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53년 7월 27일 - 휴전 협정 조인
피난 시기/일시 1951년 1월 2일 - 진남포에서 미군 상륙함[LST]에 실려 전쟁 피난민 정착
현 소재지 구암 초등학교 난민 수용소 - 구암 초등학교[전라북도 군산시 경암 3길 64-1]지도보기
현 소재지 중앙 초등학교 난민 수용소 - 중앙 초등학교[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91]지도보기
성격 피난민
관련 인물/단체 미군

[정의]

6·25 전쟁 중 전라북도 군산 지역으로 피난민이 이주한 사건.

[개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조인으로 전선에서 포성은 멎었지만, 부모·형제가 헤어져 평생을 이산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분단의 아픔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군산도 북한과 뱃길이 가까운 항구 도시로 이산 가족[피난민]이 어느 도시보다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역사적 배경]

군산은 해방 후 북한에 들어선 공산 정권을 반대하는 우익 인사와 지주들이 밀선이나 어선을 빌려 타고 내려온 전쟁 전 피난민과 1951년 1·4 후퇴 때 진남포에서 미군 상륙함[LST]에 실려 정착한 전쟁 후 피난민으로 구분된다. 전쟁 후 군산에 상륙한 피난민은 5만 명으로 그중 2만 5000명은 군산에 수용되고 나머지는 김제, 부안, 익산 등으로 배치된다.

[경과]

군산에 온 피난민들은 주로 단체로 수용됐는데 쌀을 가족 단위로 배급해주던 해망동 솔곳이 수용소, 부녀자와 어린이만을 수용하여 공동 배식을 하던 구암 초등학교 난민 수용소, 그리고 중앙 초등학교 등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월명산(月明山)[101m] 등 산비탈과 공설 운동장(公設運動場) 계단을 바람 막이로 움막을 짓고 지내기도 했다.

[결과]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고아를 배출했다. 그들은 대부분 고아원[보육원]에 수용되었고 일부는 고등 교육 혜택을 받기도 했다. 또한, 결식 아동을 돕기 위한 구호 사업도 펼쳐졌으며 가난과 싸우며 외롭게 살아가는 피난민들에게 교회를 지어주는 회사도 생겨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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