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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서부수리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27
한자 沃溝西部水利組合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옥구서부수리조합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41년 - 옥구서부수리조합, 전북 수리조합으로 합병
최초 설립지 옥구서부수리조합 - 옥구군 미면 미룡리
성격 수리조합
설립자 김상희[초대조합장]

[정의]

1908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

[개설]

1908년 전라북도 군산[구 옥구군 미면]에 설립된 옥구서부수리조합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이다. 기존의 미제(米堤)와 선제(船堤)를 복구하여 관개에 이용하기 위해 설립된 이 조합은 한국인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조합원도 한국인이 많았다.

[설립 목적]

미제와 선제는 수리조합 창설 이전에도 지역의 주요 농업 용수원이었는데 보수, 확장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농업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수리조합을 설립하였다.

[변천]

옥구서부수리조합은 주변의 일본인이 주도하는 수리조합에 비해 몽리 구역(蒙利區域)도 적었고 재정적으로 부족하였지만 군산 서남부 지역의 관개 용수를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다가 1941년 전북 수리조합으로 합병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 이래 이용해 오던 14개 저수지 중 미제와 선제는 규모가 큰 것이었다. 이 조합은 미제와 선제를 복구하고 자연 발생적으로 개설되어 있던 수로와 취수보 등을 보수하여 이 일대의 토지 270여 정보를 관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미제 관리를 위해 제언계가 조직되어 있어서 설립 당시 약간의 보수만 필요로 할 정도로 미제와 선제는 양호한 상태였다. 또한 전부터 이 제언의 물을 이용해온 몽리 지역(蒙利地域)의 상당부분이 그대로 수리조합 구역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수리조합 설립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여지도 그만큼 적었다.

[현황]

조합 설립 당시 몽리(蒙利) 면적은 270여 정보였는데, 1941년 11월 전북 수리조합으로 합병될 당시 몽리 면적은 471정 5반보였고, 조합원 수는 241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옥구서부수리조합은 설립 단계에서부터 합병될 때까지 한국인에 의해 주도되었고 조합원 대다수가 한국인이었으며 몽리 구역의 70%가 한국인 소유였다는 점에서 이 지역의 다른 수리조합과 구별된다. 이 수리조합의 또 다른 특징은 대개의 수리조합이 설립 단계에서부터 기채를 통해 재원을 마련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설립비 등 제반 사업비 일체를 자체 경비와 조합비로 충당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제언을 이용함으로서 사업비가 적게 들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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