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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읍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380
한자 全羅道邑誌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71년|1895년연표보기 - 전라도읍지 간행
성격 전라도의 읍지

[정의]

1871년과 1895년에 전라도 각 군현지를 모아 편찬한 전라도 읍지 중의 군산 관련 기록.

[개설]

전라도읍지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1871년(고종 8)에 전라도 53개 군현에서 만들어 제출한 것을 합친 것으로 표지에 『호남 읍지(湖南邑誌)』라 쓰인 기록과, 다른 하나는 1895년(고종 32)에 전라도 56개 군현지를 합쳐서 만든 것으로 표지에 『읍지』라고만 써 있는 것이다.

그 중 1871년(고종 8)의 읍지는 고종 초기 정국 운영상을 반영하는 자료로 18세기의 전통을 재결집하여 국가의 지방 통치에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전체 구성은 제1책에 나주(羅州)·장성(長城)·정읍(井邑), 제2책에 옥과(玉果)·창평(昌平)·동복(同福)·화순(和順)·능주(綾州)·남평(南平)·강진(康津), 제3책에 남원(南原)·임실(任實)·구례(求禮)·광양(光陽)·곡성(谷城), 제4책에 전주(全州)·금산(錦山)·진산(珍山)·고산(高山)·여산(礪山)·익산(益山)·용안(龍安), 제5책은 흥덕(興德)·고창(高敞)·영광(靈光)·무장(茂長), 제6책은 부안(扶安)·고부(古阜), 제7책은 광주(光州)·담양(潭陽)·순창(淳昌), 제8책은 순천(順天)·낙안(樂安)·흥양(興陽), 제9책은 장흥(長興)·보성(寶城)·무주(茂朱)·진안(鎭安)·용담(龍潭)·장수(長水)·운봉(雲峰), 제10책에는 함평(咸平)·무안(務安)·영암(靈岩)·해남(海南)·진도(珍島), 제11책에는 임피(臨陂)·옥구(沃溝)·만경(萬頃)·김제(金堤)·금구(金溝)·태인(泰仁) 등으로 이루어졌다.

읍지 항목들은 대체로 정조 연간에 확립된 내용이 점차 통일되어가는 형태를 띠어, 우선 각 읍의 기본 정보에 해당하는 지도(地圖), 건치연혁(建治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방리(坊里), 호구(戶口), 도로(道路), 형승(形勝),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물산(物産) 등이 공통으로 들어가 있으며, 세금과 관련된 정보인 한전(旱田) 및 수전(水田),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요역(徭役), 상납(上納), 진공(進貢), 조적(糶糴), 그리고 각 읍의 행정·교통·군사·경제 등의 주요 지표에 해당하는 창고(倉庫), 공해(公廨), 교량(橋梁), 제언(堤堰), 역원(驛院), 성지(城池), 관액(關阨), 봉수(烽燧), 진보(鎭堡), 군기(軍器), 장시(場市), 도서(島嶼), 목장(牧場), 노비(奴婢) 및 문화 정보에 해당하는 학교(學校), 서원(書院), 단묘(壇廟), 누정(樓亭), 사찰(寺刹), 고적(古蹟), 능침(陵寢), 제영(題詠), 책판(冊板), 과환(科宦), 인물(人物), 선생안(先生案) 과 함께 부록에 해당하는 사례(事例), 진지(鎭誌), 역지(驛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정조 때 시도된 『여지도서』의 보완 작업을 그대로 계승하며, 이후의 증보된 읍지들과 지역 전통을 수록한 사찬읍지의 성과 등 고종 당대에 수집 가능한 거의 모든 자료를 집대성한 것이다.

한편, 1895년(고종 32)에 읍지는 앞선 1871년(고종 8)의 53개 군현에다가 제주·대정·정의 등 제주 3읍이 1899년경(광무 3)에 추가된 형태로, 대부분의 읍지는 ‘개국오백사년(開國五百四年)’으로 시작하여 작성 시기가 1895년임을 알 수 있다.

각 책별 구성은 제1책은 영광(靈巖), 제2책은 태인(泰仁)·옥과(玉果)·장흥(長興)·능주(綾州), 제3책은 익산(益山)·금산(錦山)·동복(同福)·구례(求禮)·진산(珍山), 제4책은 강진(康津)·해남(海南), 제5책은 장수(長水)·용담(龍潭)·흥덕(興德)·정읍(井邑)·화순(和順)·곡성(谷城), 제6책은 부안(扶安)·함열(咸悅)·용안(龍安)·고부(古阜), 제7책은 고창(高敞)·순창(淳昌), 제8책은 광주(光州)·나주(羅州)·순천(順天)·낙안(樂安), 제9책은 남평(南平)·운봉(雲峰)·담양(潭陽), 제10책은 제주(濟州)·대정(大靜)·정의(旌義), 제11책은 김제(金堤)·임피(臨陂)·만경(萬頃)·여산(礪山)·고산(高山), 제12책은 나주(羅州)·흥양(興陽)·순천(順天)·진도(珍島), 제13책은 창평(昌平)·함평(咸平)·임실(任實)·영광(靈光)·능주(綾州), 제14책은 완산(完山), 제15책은 보성(寶城)·금구(金溝)·해남(海南)·무안(務安), 제16책은 남원(南原)·무주(茂朱)·옥구(沃溝), 제17책은 광양(光陽)·흥양(興陽)·진안(鎭安)·곡성(谷城)·무장(茂長), 제18책은 장성(長城) 등이다. 대체로 읍지와 읍사례로 구성되었으나 사례의 비중이 훨씬 높으며, 1871년(고종 8)의 『호남 읍지』와 군현의 수록 순서가 다르다. 이는 이 책이 1871년(고종 8)의 내용을 대거 요약하고, 대신에 읍사례들을 추가하면서 통치 행정용으로 재구축되었음을 뜻한다.

[구성/내용]

1871년(고종 8)의 읍지에서 군산과 관련된 부분은 11책의 임피, 옥구와 만경에 수록되어 있다. 우선 임피읍지의 구성은 첫머리에 지도가 실려 있고, 이어 읍지 내용으로 강계(疆界), 방리(坊里), 호구(戶口), 도로(途路), 건치연혁(建治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봉수(烽燧), 사찰(寺刹), 고적(古跡), 인물(人物),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역(均役), 봉름(俸廩), 군병(軍兵) 등이 수록되었다. 다음 옥구읍지의 구성도 마찬가지인데 첫머리의 지도에 이어 읍지 내용으로 읍고호(邑古號), 관직, 성지, 단묘, 공해, 각고(各庫), 산천(山川), 도서(島嶼), 각면호구인구(各面戶數人口), 도리원근(道里遠近), 각제(各提), 사찰, 고적, 결총(結摠), 환총(還摠), 군총(軍摠), 군기(軍器), 공선(貢饍), 해장(海場), 물산 등이 서술되었으며, 더하여 부록으로 군산진지(羣山鎭誌)로써 관속(官屬), 공해, 각영도리(各營道里), 선척(船隻) 등을 기록하였다.

한편 만경읍지의 정확한 제목은 ‘전라도만경현읍지급지방고군산진지병녹성책(全羅道萬頃縣邑誌及地方古羣山鎭誌幷錄成冊)’으로 내용은 건치연혁, 읍명, 산천, 방리, 사경(四境), 성지, 선척, 도서, 공해, 창고, 단소, 교궁(校宮), 제언, 교량, 장시, 사찰, 고적 등이 서술되어 있고, 이어 만경읍의 사례(事例)로 물산, 진공, 전총, 환총, 군총, 군기가 나오고, 다시 고군산진지로 사경, 수로육백리, 형승, 선척, 봉수, 공해, 창고, 도서와 함께 고군산진의 사례로 물산, 호총, 결총, 군총, 환총, 사창환총, 세총, 군기 등이 서술되어 있다.

다음으로 1895년(고종 32)의 읍지에는 11책에 임피와 만경이, 16책에는 옥구가 수록되어 있다. 3읍지는 모두 ‘개국오백사년(開國五百四年)’ 즉 1895년에 제작된 것으로 임피읍지의 구성은 강계, 방리, 호구, 도로, 건치연혁, 군명, 형승, 성지, 관직, 산천, 성씨, 단묘, 공해, 제언, 창고, 옥우(獄宇), 교량, 역원, 사찰 순이며 뒤이어 읍사례가 실렸다. 만경읍지도 건치연혁, 읍명, 읍호, 산천, 방리, 사경, 성지, 선척, 봉수처급관애, 봉산급형승, 목장급역원, 도서, 공해, 창고, 단소, 교궁, 제언, 교량, 장시, 사찰, 고적의 순서로 구성되었고, 마지막에 읍사례가 이어진다.

한편 옥구읍지는 읍호, 고읍호, 고적, 지도, 호구, 성씨, 경각영급인경도리(京各營及隣境道里), 단묘·공해·성첩, 제언, 장시·사찰, 산악(山嶽), 포구(浦口), 군총, 결총, 물산, 호렴으로 구성되었고, 이어 읍사례로 호구, 전총, 곡총, 군정, 향교, 고마청(雇馬廳), 관우(官牛), 호송청(護送廳), 균역청, 관청, 진배청(進排廳), 고인청(雇人廳), 현사(縣司), 의생(醫生), 공고(工庫), 민고상하(民庫上下), 연호미상하(煙戶米上下), 관가각항상하(官家各項上下), 수미중상하(需米中上下), 잡역미중상하질(雜役米中上下秩), 곡초급인시상하질(穀草及烟柴上下秩), 관가제반예납질官家諸般例納秩), 무신년의 추록(戊申追錄)이 수록되었다. 옥구읍지에는 지도가 서두에 나오지 않고 본문의 고적과 호구 항목 사이에 수록되어 편집상 오류가 발견된다.

[의의와 평가]

1871년(고종 8)의 제1차 읍지는 고종 초기 정국 운영상을 반영하는 자료로, 19세기 전반기 단절되었던 통치 제도를 재정비하여 연결고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고종 연간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상 세도정치기에 중앙 정부의 지방 통치가 무력화된 것을 복원하려는 노력이었다.

한편 1895년(고종 32)의 제2차 읍지는 대부분 읍지(邑誌)와 사례(事例)로 구성되었는데, 대부분 제1차 읍지를 그대로 베끼고 변동 사항만 수정 보충한 것이다. 이 읍지에서는 지도의 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으며, 읍지보다 사례에 비중이 매우 커졌다. 읍사례에서는 작성 당시의 군사, 행정, 재정 관련 기록이 상세히 밝혀져 있어, 19세기 군산과 관련된 주변 지역의 실상을 좀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