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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 「전라도 옥구현, 보유 임피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375
한자 輿地圖書全羅道沃溝縣-補遺臨陂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65년연표보기 - 『여지도서』「전라도 옥구현, 보유 임피현」 간행
성격 지리지
권책 55책

[정의]

조선 영조 때에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邑誌)인 『여지도서』옥구현에 관한 항목.

[개설]

1757년(영조 33)에 홍양한(洪良漢)의 제안으로 홍문관에서 팔도 감사에게 왕명을 내려 각 군현의 읍지를 올려 보내도록 하여 1765년(영조 41)에 편찬 완료하였다. 대부분 읍지의 호구조의 기준 연도가 1759년인 점으로 볼 때, 1760년 이후에 수집된 읍지들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의 편찬 목적은 편성된 지 270여 년이 지난 조선 전기의 『신증 동국 여지 승람』의 기존 내용을 새롭게 고치고 필요한 부분을 보충한 것이다.

[구성/내용]

『여지도서』는 필사본으로 5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국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 및 1개의 진지(鎭誌) 등 총 313개의 군현지가 수록된 것이다.

제1책~제5책은 경기도, 제6책~제13책은 충청도, 제14책~제17책은 강원도, 제18책~제21책은 황해도, 제21책~제30책은 평안도, 제31책~제35책은 함경도, 제36책~제49책은 경상도, 제50책~제55책은 전라도로 각기 묶여 있다. 옥구현은 전라도 부분인 제50책~제55책에 속해 있다.

각 읍지의 내용 구성은 강역(疆域)·방리(坊里)[戶口 포함]·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형승(形勝)·성지(城池)·관직(官職)·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능침(陵寢)·단묘(壇廟)·공해(公廨)·제언(堤堰)·창고(倉庫)·물산(物産)·교량(橋梁)·역원(驛院)·목장(牧場)·관애(關阨)·봉수(烽燧)·누정(樓亭)·사찰(寺刹)·고적(古蹟)·총묘(塚墓)·진보(鎭堡)·명환(名宦)·인물(人物)·한전(旱田)·수전(水田)·진공(進貢)·조적(糶糴)·전세(田稅)·대동(大同)·봉름(俸廩)·군병(軍兵) 등으로 되어 있다.

『여지도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방리·도로·부세에 관한 제 조항 및 각 읍 읍지의 첫머리에 수록된 채색 지도이다. 일반 읍지의 방리조에는 면[또는 里]의 명칭과 위치를 기록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여지도서』에는 면·리 또는 읍별로 가호수[編戶]와 남녀 인구수를 상세하게 기재한 점이 특징이다. 『여지도서』에 보이는 또 하나의 변화는 도로조이다. 도로조는 이 시기에 신설된 항목으로서, 그 위치도 건치연혁조보다 앞에 설치되었다. 이러한 항목 배열 순서와 내용의 상세함은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도로가 중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도로의 중요성이 커지고, 지역 간의 교류가 증대되면서 지역 간 및 지역 내의 구체적인 유통망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조세 수취와 관련된 진공·조적·전세·대동·균세·봉름 등이 각각 독립 항목으로 설정되는 변화가 보인다. 조세량의 정확한 파악과 수납은 국가의 지방 통치력 및 중앙 재정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읍지에서 이에 관한 기록의 비중이 18세기 중엽 이후 점차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조선 후기 옥구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인구 통계, 지방 관직의 정원, 당시의 성씨, 제언(堤堰), 목장, 봉수, 진보 등에 대한 기록은 조선 초기 이래 옥구현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적을 추적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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