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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지도』 「임피현 옥구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363
한자 海東地圖臨陂縣沃溝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도

[정의]

조선 영조 연간에 만들어진 『해동지도』의 옥구와 임피현 관련 내용.

[개설]

『해동지도』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집이다. 이 지도집에는 조선 전도, 도별도, 군현 지도 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천하도], 외국지도[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관방지도[요계관방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데 활용된 지도집으로, 제8책의 팔도총도와 제4책의 서북피아양계전도는 회화식 대형 전도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지도들은 도지도, 도별 군현 지도, 도내 군사적 요충지의 지도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당시까지 제작된 모든 회화식 지도를 망라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지도집의 모든 자료들은 이것이 편집된 시점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지도에는 여백에 적힌 설명문에 1730년대 중반의 사정이 반영된 반면, 지도 뒷면의 설명문에는 1740년대의 상황이 반영된 경우도 많다. 그런데 군현 지도에는 대체로 1720-1730년대의 상황이 반영되었다.

또 군현 지도의 여백에는 호구, 전결, 곡물, 군병, 건치 연혁, 산천, 군명, 고적, 역원, 서원, 불우, 토산 등의 항목과 더불어 방위를 표시하는 방면 주기가 들어 있는데, 호구, 전결, 곡물, 군병 항목과 방면 주기는 대부분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건치 연혁에서 토산에 이르는 항목들은 일부 군현 지도에서만 발견되는 모습도 보인다.

[형태]

8책이고 채색 필사본이다. 크기는 47.0㎝×30.5㎝이다.

[구성/내용]

지도에 따르면 임피현의 고을 남쪽에는 동진강이, 북쪽에는 금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며, 전주에서 군산까지 허허벌판을 달리다 이곳에서 200m 이상의 산지가 등장한다. 지도에는 동쪽에서 들어온 산줄기가 고을 곳곳으로 이어졌으며, 읍치는 북쪽에 우뚝 솟은 취성산(鷲城山)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사방으로 포근히 감싸는 풍수적 관념이 강하게 투영되었음이 쉽게 이해된다.

읍성은 조선 초에 최윤덕이 전라도 순문사(巡問使)가 되어 지역을 순시하다가 주현의 장정 16,900여 명을 동원하여 만든 성으로 성안에 물과 샘이 많아 요해처의 방비 시설로 삼았다 한다. 읍치 남쪽의 봉암 서원(鳳岩書院)김장생의 아들이고 임피 현감을 지낸 김집(金集) 등을 배향하여 1695년(숙종 21)에 사액되었다. 기타 읍치 아래의 남이면에는 바닷가에 솟아난 두 개의 큰 바위가 입석(立石)으로 표시되어 어떤 이정표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객사(客舍), 건동봉(建童峯), 나리포(羅里逋), 남사면(南四面), 남산(南山), 남삼면(南三面), 남이면(南二面), 남일면(南一面), 동이면(東二面), 동일면(東一面), 보천사(普天寺), 봉대(峰臺), 북삼면(北三面), 북이면(北二面), 북일면(北一面), 사창(司倉), 서사면(西四面), 서삼면(西三面), 서시포(西施浦), 성당창(聖堂倉), 소안역(蘇安驛), 신창원(新倉院), 아사(衙舍), 아치(牙峙), 오성산(五聖山), 용두산(龍頭山), 율치(栗峙), 율포진로(栗浦津路), 창치(倉峙), 해창(海倉), 향교(鄕校), 현내면(縣內面), 효치(梟峙) 등의 각종 행정 구역 명칭과 지명, 건물명 등이 나타난다.

한편 옥구현의 북쪽은 금강 하구이고 서쪽은 황해, 남쪽은 만경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인데, 고을의 산들은 높아야 120m 밖에 안 되는 낮은 산들임에도 굵고 웅장하게 표현하여 고을의 위엄을 높여주며, 특히 읍치 뒤쪽의 산과 그로부터 뻗어 내린 산세는 더욱 웅장하게 표현하여 읍치 공간을 부각시킴을 느낄 수 있다.

지도 위쪽에는 군산진(群山鎭)이 보이는데 원래 만경현의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에 있던 것을 해적의 침입 때문에 옮긴 것으로 처음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파견되다가 1700년(숙종 26)에 종3품관인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로 승격되었다. 군산진 옆의 칠읍해창(七邑海倉)은 원래 용안현 득성창(得成倉)에서 관할하던 고을 중 옥구, 전주, 태인, 금구, 임실, 진안, 장수 등의 7개 고을 조세를 모아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보내던 조창(漕倉)이었다. 그 옆의 설림산(雪林山) 아래 은적암(隱寂菴) 부근은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협공할 때 황해를 건너온 소정방 부대 12만 명이 정박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가내도(加乃島), 객사(客舍), 기령(岐嶺), 남문(南門), 남산(南山), 내초도(內草島), 대암산(大菴山), 대흥산(大興山), 동면(東面), 미제면(米堤面), 박지산면(朴只山面), 발이산(鉢伊山), 봉대(烽臺), 북면(北面), 비응도(飛鷹島), 사자산(獅子山), 서면(西面), 시천산(柴遷山), 신덕산(新德山), 아사(衙舍), 오봉산(五峯山), 오식도(茣食島), 옥산(玉山), 용당진(龍塘津), 월하산(月下山), 장제면(長梯面), 점방산(店方山), 정지산면(定只山面), 칠성산(七星山), 풍촌면(風村面), 향교(鄕校) 등의 풍부한 관련 지명 및 명칭 등이 산재하여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해동지도』는 지도를 중심으로 지리지를 결합한 측면이 강한데, 이러한 노하우를 토대로 영조 대 후반에 이르면 지리지를 중심으로 하고 지도를 부도로 활용한 책자인 『여지도서』의 편찬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 이는 국가가 주도한 전국적인 단위의 정책 자료집으로서 당시 각 군현의 현실을 실제적으로 파악할 중요한 기록인 것이다.

이 지도집은 175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도별도와 군현지도의 내용은 1730~1740년대의 내용을 담았다. 도별, 군현별로도 포함된 내용이 상이하여, 짜임새 있게 정리된 지도책은 아니지만 세계지도로부터 진보(鎭堡) 지도까지 당시에 만들어졌던 다양한 유형의 지도를 한 책에 정리함으로써 18세기 전반 이전의 지도를 정리하고, 18세기 중엽 이후의 새로운 지도로 발달해 가는 전환기를 하나로 정리한 데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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