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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람도』 「전라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360
한자 東覽圖全羅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531년연표보기 - 『동람도』「전라도」 제작
성격 지도

[정의]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동국 여지 승람』에 첨부된 지도를 조선 후기 지도책의 형태로 만든 것 중의 전라도 부분.

[개설]

책의 첫머리에 첨부된 「팔도총도(八道總圖)」 1매와 각 도의 첫머리에 첨부된 「도별도(道別圖)」 8매를 합한 9매의 지도를 가리키는데, 『동국 여지 승람』과는 별도로 이들만을 모아 만든 지도책이 후대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판심(版心)에 ‘동람도(東覽圖)’라고 판각하여서 보통 ‘동람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국 여지 승람』은 조선 세종 이래의 국가 주도의 지지(地志) 편찬 사업의 결실로 1481년(성종 12)에 처음 완성되었을 때부터 지도는 첨부되어 있었으나 현재 전하는 「동람도」는 1531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 동국 여지 승람』에 첨부된 것으로 임진왜란 후에 복간한 것이다.

「동람도」는 모두 목판본이며 지도의 정확한 윤곽보다는 목판의 크기와 모양에 맞도록 그려졌다. 그러다 보니 「팔도총도」는 동서의 폭이 남북의 길이보다도 넓어서 우리나라의 모양이 남북으로 심히 축소되었고, 압록강과 두만강이 거의 직선상에 있으며 북부 지방이 특히 남북으로 압축된 형태가 되었다. 반면 「도별도」의 모양은 전도와 같이 심하지 않다. 또 「팔도총도」는 우리나라의 진산과 주요 하천·도명·주요 섬만 표시한 간략한 지도이며 바다에는 파도 무늬가 그려졌다. 그러한 섬 중에는 울릉도와 우산도(于山島)도 표시되어 있으나 그 위치는 반대로 되어 있다. 그리고 「도별도」에는 부·군·현이 표시되었고 병영·수영 및 주요한 산·하천·섬이 표시되어 있다.

[구성/내용]

『동국 여지 승람』의 간행 시기를 고려하면 「동람도」는 군산을 그린 가장 오래된 지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조선 1481년(성종 12) 당시 군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지도에는 현재의 지명인 옥구와 임피가 기록되었다. 본래 백제 시대 때 마서량[옥구], 시산[임피], 부부리[회현]의 3개 현(縣)으로 이루어졌던 이 지역은 백제가 멸망한 후 757년(신라 경덕왕 16)의 지명 개편으로 한문식 표기 방법에 근거한 옥구, 임피, 회현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옥구와 회미가 합쳐져 옥구현이 되면서 임피현과 함께 두 개의 행정 구역만이 남게 되었는데 이 지도는 그 사실을 확인해준다.

또한 옥구와 임피 옆에는 산(山)의 표시와 함께 옥구에는 발이산이, 임피에는 예산이 보인다. 이 두 산은 국가와 지방관청의 제사 장소로 신성시 여기는 진산(鎭山)으로 옥구현을 지켜주는 진산인 발이산은 『동국 여지 승람』에 “현의 북쪽 3리에 있다”고 적어 현재의 옥산면 당북리돗대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임피현의 진산인 예산도 “예현의 서쪽 4리에 있는데 진산이다. 산세가 마치 봉황이 날아가는 듯 하고 옛 성터가 있다”고 적어 오늘날의 임피면 취산리 교동에 위치한 용천산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비록 판본의 크기와 모양에 제한을 받아 당시의 자세한 지도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동람도」는 당시 사람들의 전라도와 이 지역의 공간적 이해와 지리적 개념, 그리고 향토적 관념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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