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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여도』 「옥구현, 임피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358
한자 廣輿圖沃溝縣臨陂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남

[정의]

19세기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 중의 옥구와 임피현 관련 내용.

[개설]

편찬 하한 시점이 1800년으로 추정되는 『광여도』의 전체 구성은 세계지도, 외국지도, 요계관방도, 조선전도 뒤로 각 도별지도 아래 군현 지도들로 되어 있다. 1~7책에 걸쳐 경기도[1책], 충청도[2책], 전라도[3책], 경상좌도[4책], 경상우도[5책], 평안도[6책], 황해도[6책], 강원도[7책], 함경도[7책]의 도별 지도와 군현별 지도, 그리고 주요 군사적 요충지의 지도들이 실려 있다.

영조 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官撰)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집 편찬은 공적 통치력이 급속히 이완되는 19세기의 정치적 환경과 맞물리면서 민간에 유출되는데, 『광여도』 또한 『해동지도』와 유사한 18세기 군현 지도집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상당수의 군현 지도들은 지도의 윤곽이 『해동지도』와 유사성을 보이며, 18세기 전반기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는 것도 거의 유사하다.

[구성/내용]

우선 옥구현(沃溝縣)은 오늘날 군산시 시내, 옥산면, 옥서면, 옥구읍, 옥도면에서 비안도, 내초도, 비안도 등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읍치는 현재 옥구읍 상평리 지역이었다. 지금도 구읍내, 동헌 터, 동문 밖 등 지명이 남아 있는데, 지도에 보이는 읍성은 1524년(중종 19)에 개축한 것으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따르면 둘레가 3,330척이었다. 북쪽에 보이는 군산진(群山鎭)군산포진이라고도 부르는데, 읍치에서 북으로 20리 떨어진 진포(鎭浦) 주변에 위치하였다. 만경의 군산진은 옛날에 해적에 의해 침입 받은 바가 되어 이곳으로 옮기고, 수군만호가 주재하였는데 1700년(숙종 26)에 첨사진으로 승격한다. 군산진 서쪽에 해창(海倉)이 있고, 그 옆에 군산창이 보인다.

군산창군산진 부근에 있는데, 1487년(성종 18)에 용안 득성창을 이곳으로 나누어 옮겼다. 옥구, 전주, 진안, 장수, 금구, 태인, 임실 7읍의 전세와 대동세를 이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서울로 조운하였는데, 군산첨사가 수납을 감독하였다. 점방산 봉수대는 남쪽으로 부안의 계화산 봉수로부터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충남 서천의 운은산 봉수에 신호를 전달했다. 지도에 보이는 관련 지명으로 가내도(加乃島), 객사(客舍), 군산진(群山鎭), 남문(南門), 남산(南山), 내초도(內草島), 대암산(大菴山), 동면(東面), 미제면(米堤面), 박지산면(朴只山面), 봉(烽), 북면(北面), 비응도(飛鷹島), 서면(西面), 설림산(雪林山), 시천대(柴迁臺), 신덕산(新德山), 아(衙), 오봉산(五峯山), 오식도(筽食島), 월하산(月下山), 은적암(隱寂菴), 장제면(長梯面), 점방산(店方山), 정지산면(定只山面), 창(倉), 칠읍(七邑), 풍촌면(風村面), 해창(海倉), 향교(鄕校)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임피현(臨陂縣)은 지금 군산시 임피면, 서수면, 대야면, 개정면, 성산면, 나포면 지역으로, 당시 읍치는 현재의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일대였다. 취성산(鷲城山)[205m]이 고을의 진산(鎭山)인데 그 아래 관아가 배치되고, 읍성이 읍치를 둘러싸고, 다시 산이 외곽을 두르는 풍수상 명당 형국을 보여 주고 있다. 임피현 읍성은 1409년(태종 9)에 축조되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둘레 952보(步)이었다. 지도에 보이는 해창(海倉)은 읍치에서 서쪽으로 10리 떨어졌는데, 고려 시대 진성창(鎭城倉)으로 12조창(漕倉) 가운데 하나였다. 이 창(倉)을 둘러 토성(土城)을 쌓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10여 리였다고 하였다. 또 봉암 서원(鳳巖書院)은 1664년(현종 5)에 세워서 신독재 김집자암 김구를 배향하였다. 1695년(숙종 21)에 사액되었다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페령에 따라 헐렸다. 그리고 나리포(羅里浦)는 제주도에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지역 주민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창고였고, 서시포(西施浦)는 서지포라고도 하는데 상선이 정박하는 포구였으며, 지도 아래쪽에 보이는 입암(立巖)은 선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근에 신창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었다. 이외에도 지도에는 남사면(南四面), 남산(南山), 남삼면(南三面), 남이면(南二面), 남일면(南一面), 동이면(東二面), 동일면(東一面), 보천사(普天寺), 북삼면(北三面), 북이면(北二面), 북일면(北一面), 서사면(西四面), 서삼면(西三面), 수광오리(水廣五里), 신창원(新倉院), 오성산(五聖山), 용두산(龍頭山), 율포진로(栗浦津路) 등의 행정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광여도』는 군현의 크기와 상관없이 지도의 크기가 같으므로 군현마다 축척이 상이하다. 또한 지도 안에 표시된 현상들의 방위, 거리, 면적, 위치 등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정교하거나 정밀한 지도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도책의 크기가 작아 열람이나 휴대가 편리하다. 이 때문에 관찬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많이 전사해 이용했다. 아울러 휴대가 간편한 것 이외에도 지도와 함께 설명문이 따로 분리되어, 도면 주변에 별도로 호구, 전결, 부세, 군정 등 당시 군현의 사회 경제적 사정을 알려주는 항목들이 쓰여 있어, 시대상을 파악하는데 유효한 기록을 제공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