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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산의 옛날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030
한자 -群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황태묵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옛 이야기.

[개설]

설화는 보통 신화와 전설, 민담 등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나 이 셋 사이에 확연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산·옥구 지역에서 전해 오는 설화를 살펴보면 신화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전설과 민담 등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는 백제사와 관련이 깊다. 지리적으로는 옥구와 김제의 서부 평야 지역과 금강 이북의 충청도와 인접해 있어 일차적으로 이 지역 설화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군산은 서해 도서 지역과 관련된 전설과 민담 외에 민요와 무가가 적지 않은데, 이는 군산이 서해안 지역의 도서 지방과 지리적·생활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군산·옥구 지역에서 채록된 전설은 약 40여 편, 민담은 360여 편이나 된다. 군산·옥구 지역에서 많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설명적 전설인 지명 유래담이 많다. 반면에 도서 지방의 설화들은 육지 이야기가 변형된 형태와 섬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 전설로 변형되어 전해오는 형태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전설의 채록]

전설의 경우는 2002년과 2004년[증보판] 군산 문화원이 펴낸 『우리 고장의 지명 유래』에 21종이, 2010년 군산 문화원이 간행한 『우리 군산 옛날 이야기』에 8종의 지역 전설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편수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동일한 전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군산·옥구와 서해안 도서 지역의 설화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 전설의 범주에 속하는 이야기 10여 편을 보강한 만큼 차차로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채록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 자료로는 1) 어린 최치원과 금돼지, 2) 쌀뭍 방죽 세바위 이야기, 3) 고군산이 생겨난 이야기, 4) 용이 만든 금강, 5) 장자도를 지키는 할머니 바위, 6) 천개의 절 천방사, 7) 오성산 다섯 성인의 이야기, 8) 선유도 오룡묘에 얽힌 왕비 이야기, 9) 선유도 임씨 할머니당 이야기, 10) 선유도 청기와 이야기, 11) 신시도 월영대 돌탑과 최치원, 12) 옥구 자천대와 최치원, 13) 말도 장도칼 이야기, 14) 선유도 장수와 말 발자국, 15) 미제지(米堤池) 지명의 유래, 16) 애기 장수 서울 터 만들기, 17) 금 도구통, 18) 금 도구때, 19) 임방절 지명의 유래, 20) 벌이마당 지명의 유래, 21) 절메산 지명의 유래, 22) 새 터 지명의 유래, 23) 안두개 지명의 유래, 24) 방아동 지명의 유래, 25) 사창골 지명의 유래, 26) 용처 지명의 유래, 27) 개정지 지명의 유래, 28) 어청도 전횡 장군, 29) 대야면 보덕리 장자 나무의 유래, 30) 대야면 거치 마을 마루 고개 이야기 등이 있다.

[민담의 채록]

민담의 경우는 1984년에 박순호가 펴낸 『한국 구비 문화 대계-전라북도 군산·옥구편』에 군산시의 삼학동 8종, 소룡동 9종, 대명동 45종, 중앙로 3가 3종 등과 옥구군의 개정·성산면 40종, 대야면 35종, 서수면 10종, 임피면 16종, 나포면 20종 등의 자료가 채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에 수록된 자료들은 군산·옥구의 일부만 다루고 있어 전체의 자료로 보기는 어렵다.

이후 1990년과 1994년에 박순호가 펴낸 『군산 구비 문학 1-2』에서는 178종이 새로 채록되었다. 현재는 별다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앞으로 집중적인 채록이 요청된다.

그 자료로는 1) 사람 배에 쓴 묘자리, 2) 구대 독자의 목숨, 3) 관상장이·지관장이·의원의 재주 자랑, 4) 돈 자루로 푼 귀신의 한, 5) 내 자식을 죽인 과부, 6) 박문수 박어사, 7) 가짜 지관의 행운, 8) 부모 원수끼리 맺은 인연, 9) 외설적인 이야기, 10) 코맹맹이 소금장수, 11) 원귀에게 시달린 소금 장수, 12) 쥐좆도 모른다는 말의 유래, 13) 애민 유기 장수, 14) 말[言語]의 중요함, 15) 사위로 삼은 머슴, 16) 과부의 사랑, 17) 열 여덟 살 큰 애기 부자된 이야기, 18) 시집 온 며느리의 예절, 19) 효자의 살인 면죄, 20) 모자를 죽인 장사꾼의 살인 면죄, 21) 꾀쇠 이야기, 22) 과부의 꾀, 23) 똑똑한 양자, 24) 부처님이 갚아준 은혜, 25) 타고난 복 이야기, 26) 시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준 박어사, 27) 쌍둥이 형제의 우애, 28) 정승 판서가 된 거지 이야기, 29) 박어사의 아내와 열녀문, 30) 호랑이에게서 살아난 여인네의 꾀, 31) 어린 색시 이야기, 32) 장례비로 부자된 동생, 33) 재산과 두 형제, 34) 외 이야기, 35) 심청이 같은 효녀, 36) 연연 묵은 백년화, 37) 제사를 모시는 아들의 정성, 38) 인동 장씨 중시조 된 이야기, 39) 한양 조씨 시조이야기, 40) 전원 이씨 이야기, 41) 부인 둘 얻은 사위, 42) 도둑질한 며느리, 43) 아들 열다섯 팔자를 타고난 사람, 44) 돌 노적으로 부자된 거지, 45) 명당을 얻어 장관된 막내 아들의 꾀, 46) 부자 영감을 이용해 부자된 이야기, 47) 꼬마신랑 이야기, 48) 경상도 손소방 장가간 이야기, 49) 보쌈 당해 장가간 이야기, 50) 장가가게 해주는 처녀묘자리, 51) 나무꾼과 선녀, 52) 다기가 있어 벼슬을 얻은 두 사람, 52) 과부 속여 부자된 양반, 53) 서방질한 봉사 각시, 54) 큰 애기 살린 두꺼비, 55) 시어머니 죽이려다 효부된 며느리, 56) 효자가 된 후에 양반된 사람, 57) 학자한테 여운 딸, 58) 시집간 세명의 딸, 59) 돌쟁이 영감, 60) 남편을 살린 열녀, 61) 약방 머슴 아들, 62) 소강렬 이야기, 63) 남편을 살린 아내의 지혜, 64) 도망간 마누라를 죽인 사람, 65) 아들을 얻기 위한 정성, 66) 게으른 총각이 두 마누라 얻고 부자된 이야기, 67) 웃투리 이야기, 68) 양한림 이야기, 69) 심유복 이야기, 70) 전라감사의 계모 등이 있다.

[민요와 무가의 채록]

민요의 경우는 1984년에 박순호가 펴낸 『한국 구비 문화 대계-전라북도 군산·옥구편』에 66종의 자료가 채록되어 있다. 그리고 무가의 경우는 『한국 구비 문화 대계-전라북도 군산·옥구편』에 11종, 『군산 구비 문학 2』에 12종이 채록되어 있다. 현재 민요와 무가 또한 별다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집중적인 채록이 요청된다.

민요 자료로는 1) 각설이 타령, 2) 단가, 3) 베틀가, 4) 자장가, 5) 한탄가, 6) 할미꽃 타령, 7) 화투 풀이, 8) 달거리, 9) 댕기타령, 10) 방아 타령, 11) 상사 소리, 12) 상여 소리, 13) 시집 살이 노래, 14) 언문 풀이, 15) 이앙가, 16) 장타령, 17) 중타령, 18) 형제 노래, 19) 환갑 노래, 20) 농가 소리, 21) 달거지 소리, 22) 등짐소리, 23) 만경산 타령, 24) 산야 소리, 25) 공주 금강의, 26) 나비야, 27) 연밥따는 처녀노래, 28) 청춘가, 29) 추월가, 30) 널 뛰러 가자, 31) 농부가, 32) 담방구 타령, 33) 백구야, 34) 어름마 타령, 35) 이별가, 36) 첩노래, 37) 거무 타령 등이 있다.

무가 자료로는 1) 서낭 풀이, 2) 성주 풀이, 3) 손님 풀이, 4) 용왕 풀이, 5) 장자(長者)풀이, 6) 조상 해원 풀이, 7) 조왕 풀이, 8) 중천 해원 풀이, 9) 지두서(指頭書), 10) 지신(地神)풀이, 11) 칠성 풀이, 12) 철융석, 13) 액풀이, 14) 선황 풀이 등이 있다.

[천방사와 소정방]

지금부터 1300여 년 전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 올 때의 일이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끄는 군사가 성산(城山)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금강을 타고 건너올 즈음에 갑자기 천지를 구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가 끼어 도저히 전진할 방도가 없었다.

초조해진 소정방은 이는 분명히 산신령의 조화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만일 날씨만 갠다면 천지신명께 맹세코 천 개의 절을 세워 부처님께 불공을 올리겠다고 기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이제까지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앞을 가렸던 안개가 말끔히 가시고 그의 군사가 움직일 수 있는 길이 트이는 것이었다.

소정방은 그의 뜻이 이루어지자 천 개의 절을 짓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 길로 산에 올라 주위를 살폈으나 도저히 천 개의 절을 지을만한 장소를 발견할 수 없어 고민에 빠졌다. 천지신명께 맹세한 것을 어길 수 없었던 그는 생각 끝에 천 개의 돌을 떠서 절의 모양을 새기고 그것을 상징하는 한 개의 절을 세웠다. 그리고 그 절을 천방사라 이름 짓고 산 이름도 천방산(千房山)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천방사에 관해서는비슷한 내용의 또 다른 전설 하나가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 군대가 풍랑으로 전진을 못하고 있던 때의 일이다. 백제에 들어갈 길을 고민하던 소정방에게 어느 날 한 도승(道僧)이 나타나 이것은 용신(龍神)의 조화이니 천일제(千日祭)를 지내면 화를 면할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이번엔 소정방이 천일제를 어떻게 단번에 지낼 수 있는 방도가 없겠느냐고 묻자 도승은 천 칸의 방을 만들어 일제히 한 시각에 제사를 올리면 천일제가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소정방은 그때서야 크게 깨우침을 얻고 그 도승의 말대로 실행하였더니 신기하게도 풍랑이 잠잠해져서 대군이 뜻대로 전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소정방이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천방사에 관한 이야기는 정사에 입각한 전설이라는데 큰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국여지승람』에는 길상사(吉祥寺)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다만 은적사(隱寂寺)라는 절만이 현존하고 있을 뿐이다.

[오성산의 다섯 성인]

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산 아래 주둔하였는데 누런 안개가 해를 가리어 헤메어도 알 수 없었다. 이때 홀연 다섯 노인이 진 앞에 오니 소정방이 길을 물었는데 노인들이 말하기를 ‘네가 우리나라[백제]를 치고자 하는데 어찌 길을 가르쳐 줄소냐’ 하였다. 이에 소정방은 그 자리에서 다섯 노인을 죽이지만 이내 뉘우쳐 회군하는 날에 그 산에서 노인들의 장사를 지내고 오성산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오성산 정상에 안치된 오성인의 묘는 백제인의 충절을 표상하는 전설이 되고 있다. 역사적 진실 여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일반 민중에 의해 전해내려 온 이야기의 내용과 일부 역사책에 기록된 내용이 유사하다는 점 등으로 군산 지역 시민은 해마다 오성 대제를 지낸다.

[용당포(龍塘浦)의 전설]

금강 하류인 용당포는 옛날에는 조그마한 시내였다고 한다. 옛날 이 강언덕에 한 마음씨 착한 농부가 그의 아내와 아들을 위해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 농부는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 어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서 “너희들은 곧 가산을 정리해서 빨리 이곳을 떠나라 이곳은 오늘 밤 날이 새기 전에 바다로 변할 것이다.”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그 꿈속의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너무 놀라서 꿈을 깬 그 농부는 생각할수록 이상해서 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그 노인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 깊어만 가고 사방은 고요한데 갑자기 자기가 누워있는 온돌방 밑으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순간 퍼뜩 잠을 깬 농부는 꿈속의 일을 생각하고 급히 아내를 깨웠다. 그리고 방금 자기가 꾼 꿈 얘기를 대강 들려주며 어린아이만을 업고 집을 떠나기를 재촉하였다.

그들은 그 즉시로 모든 가산을 버리고 10여 리 길을 걸어 지금의 귀암포(龜岩浦) 근처까지 와서 거기에서 우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날이 훤하게 밝아오자 갑자기 용당포 근처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무서운 소리가 들려오면서 높은 산이 꺼꾸러질듯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용 한 마리가 시꺼먼 구름에 쌓여 서쪽 하늘로 올라가면서 서쪽 바닷물이 일제히 몰려 들어와서 눈 깜작할 사이에 푸른 바다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바다는 용이 만든 것이라 하여 일명 용당포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의 금강용당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전설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바위 전설]

지금은 행정상으로 군산시에 속해 있지만 옛날에는 옥구 땅인 미면[현 군산시 미성동·산북동·개사동 일대]에 아직 못이 없었을 때였다. 그곳에 심술이 사나운 부자 한사람이 살고 있었다. 천성이 인색한데다 마음씨 조차 나빠 가난한 이웃이 있어도 한 번도 도와주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루한 승복을 걸친 거지중 한 사람이 이 집 문 앞에 와서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며 시주를 요청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부자 주인은 사지가 멀쩡한 놈이 무슨 시주하라고 하느냐고 오히려 호통을 쳤으나, 중은 여전히 시주를 간청했다. 그러자 주인은 별 수 없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더니 헛간에서 오줌바가지를 가져다가 거기에 분뇨를 가득 담아가지고 중의 배낭에 한 바가지 부어 넣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그 집 며느리가 하도 딱해서 똥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쫓겨나는 그 중의 뒤를 쫓아가 쌀 한 되를 시주하면서 시아버지의 허물을 비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참 동안 며느리를 바라보고 있던 중이 이윽고 입을 열어 “실은 소승은 부처님의 사자로써 당신 시아버지께서 하도 지독하시다기에 조사차 내려온 것인데 과연 소문대로군요. 당신의 시아버지는 필시 곧 화를 입을 것입니다. 그 대신 부인은 부처님의 자비를 받을 것이니 빨리 내 뒤를 따르시오”하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부지런히 집에 돌아와 어린애를 등에 업고 그 중의 뒤를 따랐다. 그 중은 다시 또 “내 뒤를 따르되 이 마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중의 뒤만 정신없이 따라 가던 며느리는 언덕에 올라서자 그 동안 정들었던 땅과 정든 집을 버리고 떠나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중의 당부를 잊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살았던 그 마을과 집은 온데 간데도 없고 집채만한 파도들이 온 마을을 뒤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뒤를 바라보지 말라던 중의 당부가 떠올랐다. 하여 고개를 돌려 다시 앞으로 가려는 순간. 온 몸이 돌처럼 굳어지고 아이를 업은 채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중과 함께 돌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현재 나운동에 있는 방죽[은파 호수 공원]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고 하며 지금도 그 방죽 밑에는 그 부자가 소유했던 금은보화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전설로 전하여지는 ‘애바위’ ‘중바위’ ‘개바위’라는 이름의 바위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내초도 금돈시굴(金豚始窟)]

경주 최씨의 시조로 신라 말엽의 대 석학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든다. 최치원은 그 높은 학문이 이 나라는 물론 멀리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성리학자일뿐 아니라 동방 문학의 시초를 이룬 문호로도 이름 높다.

그런데 이 최치원은 기이한 전설을 남기고 있다. 원래 경주 최씨의 시조는 금빛나는 돼지에서 낳았다하여 일명 ‘돼지 최씨’라고 불리어 오는데 이것은 단군이 곰에서 낳았다는 전설과 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박 속에서 낳았다는 우리 전래의 민족설화와 함께 이 경주 최씨에 관한 것도 중요한 민족설화의 하나가 되어있다. 그 설화가 지금은 행정상으로 옥구군에 속해 있는 고군산 열도의 하나인 내초도와 연관지어져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치원의 아버지가 하루는 내초도라는 섬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누런 황돼지한테 붙들려 바위 밑 토굴로 끌려가서 몇 달 동안 사는 동안에 황돼지에 태기가 있어 열달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점점 자라나자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육지에 나오려고 해도 못나오고 황돼지와 같이 짐승처럼 살게 되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육지로 데리고 나가 공부를 시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빠져나갈 재주가 없음을 한탄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은 어미 돼지가 날마다 해다 놓은 나무 토막을 몰래 엮어 배를 만들어서 타고 나가자고 제의했다.

얼마 후, 이들은 어미 돼지가 나무를 하러 간 사이 미리 준비한 뗏목에 올랐다. 하지만 어느새 어미 돼지가 알고서 헤엄을 쳐 쫓아오고 있었다. 금새 앞발이 배에 닿을 듯하자 아들이 미리 잘라서 실어놓은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 주었다. 욕심이 많은 돼지는 나무토막이 떠내려 갈까봐 아까워서 얼른 물어다가 섬에다 갔다두고 또 쫓아왔다. 그러나 아들이 계속 나무 토막을 던져주자 결국 어미 황돼지는 기진맥진해서 죽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육지에 당도한 아들은 머리가 총명하여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공부해서 뒷날에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경주 최씨의 시조요 신라의 대문장가였던 최치원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화에 근거하여 아직도 옥구군 일대[현 전라북도 군산시]에서는 경주 최씨는 금돼지의 자손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렇다고 최치원이 전설상으로만 전해지는 인물은 아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나 『여지승람(輿地勝覽)』에는 그의 뛰어난 사적을 정사(正史)에 담고 있고 또 그만한 출중한 인물이기에 그만한 전설상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다만 그의 출생이 오늘날에 와서 믿어질 수 없는 금돼지에서 낳았다는 것인데, 전설상의 최치원 출생지와 내초도에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금돈시굴이 묘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흥미를 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옥구 일대는 최치원과 얽힌 사연이 많이 내려오고 있다. 지금 옥구읍 상평(上坪) 마을에 있는 자천대(紫泉臺)가 바로 그것이다. 『옥구 군지』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큰 벼슬과 학문을 닦고 고국에 돌아온 후 최치원은 세상이 어지럽거나 민심이 흉흉하면 홀로 이 자천대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독서삼매로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애당초 이 자천대옥서면의 미군 비행장 안에 있었던 것을 옮긴 것인데, 원 자천대(紫泉臺) 부근의 곧고 매끄러운 암석 위에는 최치원의 무릎 자국과 먹을 갈았던 흔적이 남아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옥구 군지』에는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고을의 태수(太守)를 지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내초도금돈시굴에서 최치원이 출생했다는 설화나 일련의 전설을 통해서 볼 때, 최치원과 옥구 지역이 기이한 인연을 맺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대장도(大長島) 장자 할매 바위]

대장도의 대장봉 아래 8m 높이의 장자 할매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고군산 군도의 섬 11개 중 사람이 사는 장재미섬과 사람이 살지 않는 빗겡이섬이 있는데, 장재미에 있는 바위를 장자 할머니라 하고, 빗겡이에 있는 바위를 장자 할아버지라 부른다. 장자 할머니 바위는 마치 여자가 애기를 업고 밥상을 차려 들고 나오는 형상이고, 장자 할아버지 바위는 감투를 쓴 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옛날 장자 할머니는 장자 할아버지가 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에 전력을 다했다. 그래도 장자 할머니가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늘 그렇듯 혹여 배고플까 하여 밥상을 차려 들고 마중을 나가던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에 있는 소첩을 보고 그만 기가 막혀 몸을 돌려버렸고 서운한 마음에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와 함께 따라온 무리들도 굳어져 바위가 돼버렸다. 사실 할머니가 본 소첩은 여인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서울서 데려온 역졸들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할머니의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바위로 남아 있고, 뒤에 아기를 업은 채 바위에 흰 띄를 두르고 있다. 그 후 바위가 된 할매는 섬의 수호신이자 사랑을 약속하는 메신저가 되었다. 그 바위를 보면서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배반하면 돌이 된다고 한다. 지금도 고군산 열도 주민들은 장자할머니에게 만선의 꿈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바위에는 금줄이 둘러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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