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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위를 수놓은 군산의 거리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026
한자 -群山-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위경혜

[개설]

군산은 해방 이후 경제 개발과 산업화 과정에서 비껴난 이유로 인하여 여타 지역에 비해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 등 지역 문화 자원 보존 상태가 좋다. 이에, 영화 촬영을 위한 필수 헌팅(hunting) 장소로 꼽히는 군산에서 제작된 영화와 영화에 비춰진 군산의 모습을 살펴본다.

[군산의 도시적 특색]

군산은 서해의 금강(錦江)만경강(万頃江)이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러일 전쟁 이후 미곡 집산과 수출항으로서 기능이 강화된 지역이다. 제물포와 부산 그리고 목포에 뒤이어 1899년(광무 3) 개항한 군산은 내륙 곡창 지대와 원활한 교류를 위해 일찍부터 항만 시설과 육상 교통 체계가 발달하였다. 군산은 1907년(융희 1) 군산과 전주를 잇는 전군가도(全群街道) 개설, 1907년(융희 1) 해벽 및 부두 1기 축성 그리고 항만과 정비를 위한 부두 시설을 갖추면서 인근 농업 지대를 배경으로 둔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912년 군산은 강경~이리 구간과 군산역을 포함한 호남선을 개통하여 내륙 도시들과 신속하게 연결되었고 대 일본 무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도시로 변모해갔다. 군산은 일본으로의 미곡 수탈 및 수송에 편리한 도시 체계를 갖추면서 전라북도 중심 지역이 되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군산 인구 유입은 늘어났다. 1906년(광무 10) 군산의 전체 인구수는 5000여 명에 이르렀으며 군산 도심(都心)은 우편국, 병원, 은행, 경찰서, 언론사, 학교 등 기반 시설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1914년 군산은 6개의 여관과 5개의 요리점 그리고 군산 공원(群山公園)까지 마련하였으며 명치좌(明治座)와 군산좌(群山座)가 문을 열어 활동사진을 상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1914년 근대 도시 기반을 확충한 군산은 전라북도 옥구군 북면 일개 마을에서 분리되어 군산부(群山府)로 승격되었다. 군산부로 승격하던 때 일본인과 조선인 인구 수는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군산은 시간이 갈수록 일본인의 도시가 되어갔다.

일본인 이주자가 군산 도심을 차지하자 조선인들은 자신의 거주지에서 축출 당하여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군산이 조선인 거주 지역을 외국인에게 내어준 것은 부산과 인천, 마산 등 여타 개항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은 조계에 인접한 전주가도변(全州街道邊)으로 몰려들었다. 게다가 1910년(융희 4) 한일 병합과 외국인 거주지 제한의 폐지 이후 일본인들은 더욱 조선인 거주지로 침입하여 들어왔다. 또 다시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축출당한 조선인들은 죽성동개복동 그리고 구복동과 둔율동 등 변두리 구릉(丘陵) 지역으로 밀려났고, 그곳에서 토막(土幕)을 짓고 생활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군산은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거주지가 확연히 구분되는 이중적 도시 구조를 형성하였다. 일본인은 격자(格子) 형식으로 구획된 서북부 지역에서 살았으며, 조선인들은 협소하면서 불규칙적인 거리를 형성한 동남부 지역에서 군거하며 생활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중심으로 구획된 도시는 해방이후 현재까지도 군산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영화의 다양한 소재 또는 배경이 되어 스크린에 등장하고 있다.

[군산을 배경 삼아 촬영된 영화]

1. 해방과 6·25 전쟁 그리고 군산의 영화 제작

군산에서 영화를 제작하거나 촬영한 것은 해방과 그리 멀지않은 시기였다. 지역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계몽이나 반공 이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해방 이후 군산은 물론 전라북도을 통틀어 최초로 제작된 작품은 16㎜ 무성영화 이만흥의 1948년 작품 「끊어진 항로」이다. 「끊어진 항로」는 지역 재력가(財力家) 김금철 지원으로 R.X.K 프로덕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군산을 포함한 전라북도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끊어진 항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극적(劇的) 세계에서 이집길과 이강천은 다정한 친구사이다. 하지만 이집길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밀수범이고 이강천은 성실히 살아가는 월급쟁이다. 이강천은 이집길에게 바르게 살아가기를 설득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지 않는 이집길은 밀수품을 선적하고 밀항을 계획한다. 이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강천은 이집길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결국 이집길은 자수하기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끊어진 항로」 필름은 현재 소실된 상태이다.

이만흥의 1954년 작품 「탁류」 역시 군산과 연관이 깊다. 「탁류」채만식(蔡万植) 소설 『탁류』에서 제목을 차용하였지만, 소설과 무관하다. 소설 『탁류』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배와 미곡 수탈로 피폐한 군산의 조선인 삶을 다룬 반면, 영화 「탁류」는 한국 전쟁 이후시기를 다룬 반공 영화이다. 즉, 극적 세계에서 간첩단 일원을 연기한 김종석은 정부(情婦) 김신재에게 카바레를 경영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은 대만 선박으로 위장한 중공선을 통해 무기를 반입하여 국내 공비에게 공급하려 한다. 김신재의 카바레 출입이 잦았던 방범대원 이집길은 수상한 기미를 느끼고 마담 김신재를 회유하다가 오히려 간첩단 일당에 의해 감금된다. 하지만 이집길은 예전부터 자신을 은근히 좋아하던 김신재의 도움을 받아 탈출, 방첩대 병력과 함께 김종석 간첩단을 일망타진한다. 제목만으로도 군산을 떠올리게 하는 「탁류」 역시 군산 지역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끊어진 항로」의 밀수범과 「탁류」의 방법대원을 연기한 이집길은 전라북도 출신 배우로서, 1953년 「애정산맥」과 「청춘」에서도 이만흥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애정산맥」은 전라북도 경찰국 후원과 제작자 이만흥과 박동섭 참여 그리고 아일 영화사(亜一映画社)[이후 우주 영화사로 개칭] 제작 작품으로서 전라북도 부안군 격포와 변산 반도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이집길은 일본 제국 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수학하고 일본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며, 해방 이후 한형모의 1949년 작품 「성벽을 뚫고」 주연을 시작으로 홍성기의 1954년 작품 「출격 명령」과 1955년 작품 「열애」 등에 출연한 1950년대 초중반 촉망받는 배우였다. 안타깝게도 이집길은 「탁류」 개봉 이듬 해 1955년 32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한국과 미국 양국 배우들이 공동 출연한 이강천의 1954년 작품 「아리랑」이 군산에서 제작되었다. 한국인의 정서적 공동체를 연상시키는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최고 흥행작 나운규의 1926년 작품 「아리랑」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만흥의 1954년 영화 「탁류」가 소설 『탁류』 줄거리와 판이하듯이,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 역시 나윤규 감독의 「아리랑」과 다르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북한군 치하에 들어간 영진의 집 외양간에 미군 두 명이 숨어든다. 영진의 집은 영진의 정신 이상으로 북한군 감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영진의 아버지는 미군들을 고발하려 한다. 하지만 영진의 동생 영희는 아버지를 간곡히 설득하여 미군들을 숨겨주고 간호까지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영희를 연모하는 ‘빨갱이’ 기호에게 그 사실이 발각되어 기호에게 조건부 협박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영희는 협박을 끝내 거절하고 미군을 데리고 산으로 도망친다. 그들을 추격하는 기호와 북한군의 사투가 벌어지고, 영진은 기호를 총으로 쏘고 피를 본 순간 제정신을 찾는다. 때마침 진격해 온 국군이 가세하여 북한군을 섬멸하나 영희는 북한군의 총에 쓰러지고 만다. 이와 같이,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군산에서 제작된 영화는 반공 이념 강조를 핵심으로 하면서, 영화 홍보와 마케팅(marketing) 일환으로 일제 강점기와 군산을 연상시키는 것을 영화 제목으로 가져왔다.

전후 군산에서 촬영된 극영화가 계몽성과 이념성을 강조했다면, 다큐멘터리(documentary)는 폐허의 도시 군산을 사실적으로 전달하였다. 1957년에 촬영된 「한국의 퀘이커[With the Quakers in Korea]」는 개신교 퀘이커(Quaker) 교도의 전후 군산 복구 활동을 담은 기록물이다. ‘퀘이커(Quaker)’는 하나님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친우회[형제들의 단체, Society of Friends]란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종교 친우회'로 불린다. ‘퀘이커’라는 이름은 ‘하나님 앞에서 떤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1650년대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가 제창한 명상운동에서 시작되었다. 퀘이커 교도들은 청교도와는 달리 칼빈주의(Calvinism)의 예정설과 원죄(原罪) 개념을 부인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기르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되고, 그렇게 신성만 기른다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21분 분량의 「한국의 퀘이커[With the Quakers in Korea]」는 ‘프렌즈 서비스 유니트 군산(Friends Service Units, Kunsan, Korea)’이 제작한 것으로서 1950년대 운크라(UNKRA)에서 활동한 ‘테드 코넌트(Theodore Conant)’가 촬영하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후 영국과 미국에서 파견된 퀘이커 단체 활동 상황을 전달하면서 비참한 상황에 놓인 군산의 시각 장애인을 비롯한 전후 난민(難民) 생활, 낙후된 의료시설, 그리고 전쟁미망인(戦争未亡人)을 보여준다. 영화는 1953년 퀘이커 교도들의 군산 활동 경험 구술과 관련된 자료 화면을 동시적으로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영화는 전후 미망인의 재봉 교육을 포함한 기술 전수와 가축 기르는 교육 그리고 군산 의료원에서 간호와 의료 수술을 교육하는 장면 등을 포함한다. 퀘이커 교도들은 군산에서의 봉사 활동 이유를 군산에 존재한 ‘다수의 전쟁 미망인’과 ‘잘 짜인 퀘이커 조직’을 들고 있다. 영화 장면에도 나타난 군산 ‘미망인 재생 위원회’ 현판(懸板)을 통해 보는 바와 같이, 전후 미망인 문제는 전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사안(事案)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할 여성들이 참여 가능한 노동시장의 제한성 때문에 미망인들은 성매매 유혹에 항상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군산은 일제 강점기에 이미 대규모 유곽(遊廓)이 형성되었고, 그곳에서 종사하는 여성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후 일상적인 빈곤 상황에 놓인 군산의 전쟁 미망인 존재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2. 1990년대 영화와 군산

1960년대 ‘영화법’ 제정으로 영화 제작이 서울로 집중되면서 군산을 비롯한 ‘지방’에서의 영화 제작과 촬영 기회는 줄어들었다. 군산의 영화 제작은 중단되고 군산 특유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화도 한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군산이 영화 화면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의 일이었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series)와 허진호 감독의 1998년 작품 「8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김상진 감독의 1998년 작품 「투캅스 3」 등이 계기가 되었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일제 강점기 1930년~1940년대를 배경으로 종로 거리의 조선인 ‘주먹’ 김두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일본에 대항하여 ‘주먹’을 쓴 조선 사나이들의 배짱과 우정 그리고 의리를 보여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매년 한 편씩 제작된 「장군의 아들」 시리즈 가운데 임권택 감독이 1990년에 만든 첫 번째 작품 「장군의 아들」은 김두환이 종로패 두목으로 성장하기까지 인생 밑바닥의 유전(流転)을 그리고 있다. 1991년에 만들어진 「장군의 아들 2」는 정상에 오른 김두한의 고통과 사랑을 담아내며, 1992년에 만들어진 「장군의 아들 3」는 쫓기는 신세가 된 김두한의 홀로서기 시도를 보여준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일제 강점기 배경이기 때문에 장면 곳곳에서 군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장군의 아들 3」에 등장하는 철도길 장면이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철길은 일본 경찰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김두한[박상민]의 피신 장면에서 등장한다. 즉, 김두한이 일경의 눈을 피해 피신하는 과정에서 잠시 원산에 들르게 되고 어느 여관에서 머물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낙랑 악극단의 밀린 여관비를 담보로 붙들려 있는 가수 장은실을 만나게 된다. 김두한과 장은실은 원산 바닥을 구경하며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극중에서 이들이 걷고 있는 원산시내 장면이 군산 세관(税関) 뒤편 철길에서 촬영된 것이다. 군산 세관 철길은 군산역과 군산 세관 하역장을 연결하는 1㎞ 길이의 단선 철도로서, 일제가 군산의 미곡(米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영화에 군산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등장했다면, 1990년대 후반 그것은 지난 사랑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려진다. 군산에 대한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는 허진호 감독의 1998년 작품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한 것이다. 이 영화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가 ‘영화 제목처럼’ 8월 초여름 풋풋한 과일 같은 여성을 만나 12월에 가슴 저미는 사랑을 마감하는 멜로드라마이다. 영화는 당돌하고 생기 넘치는 주차 단속원 다림[심은하]이 한낮의 땡볕을 피해 정원[한석규]의 ‘초원 사진관’에 들어와 여름이 싫다고 투덜거리며 시작된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정원은 청춘의 한 가운데 서있는 다림으로부터 초여름 과일의 풋풋함을 느낀다. 하지만 정원은 죽음을 앞두고 주위의 모든 사람과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찾아든 사랑을 부여잡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한다. 정원은 살려달라고 몸부림치거나 절규하지도 않은 채 그에게 찾아 온 사랑을 받아들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마치 오랜만에 꺼내든 옛날 사진을 바라볼 때처럼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죽음을 앞둔 정원이 과거를 추억하며 뱉은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는다.’는 말은 이 영화의 명대사로 꼽힌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극적 세계는 서울 변두리이지만, 실제 촬영지는 군산이다. 군산을 촬영지로 삼은 대부분 영화들이 군산을 스치듯 스크린에 담아내는데 비해,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 장면 전체의 80% 이상을 군산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월명 공원을 배후로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2길 12-1에 가설 세트 사진관을 짓고 그곳의 한적한 정경을 담아냈다. 영화는 사진관 맞은편 카페 ‘아침 햇살’과 ‘시간 여행’을 포함하여 월명 소방서와 서 초등학교 그리고 명신 사거리 권투 도장을 필름에 담았다. 또한 익산 원광 대학교 병원과 전주의 화장터 역시 「8월의 크리스마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담긴 군산의 흔적을 쫓아보면 다음과 같다. 동산 중학교 일대 영화 촬영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금강 하굿둑해망동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확 트인 경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반대쪽 언덕을 내려가면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서 초등학교월명 공원 입구가 나온다. 영화의 첫 장면, 빨간 스쿠터를 탄 한석규가 달리는 길과 한석규가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앉아있는 장면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월명 공원 입구 조금 아래 지점은 주차 요원 다림이 동료와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또한 서 초등학교 맞은편 담벼락은 극중 정원이 친구와 함께 노상 방뇨를 하며 연애 상담을 하던 곳이다. 또한 서 초등학교동산 중학교를 지나 약 5~10분 거리에 초원 사진관이 자리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주요무대 초원 사진관은 가발 공장 창고를 개조한 것으로, 1997년 9월 20일부터 3개월 동안 이곳에서 영화가 촬영되었다. 영화 촬영 기간 동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벌어졌다. 군산 시민이 초원 사진관 세트장을 실제 사진관으로 착각하고 사진을 맡기러 들렸기 때문이다. 또한 「8월의 크리스마스」를 관람한 관객이 영화 속 사진관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어오는 일도 벌어졌다. 초원 사진관 오픈 세트장은 영화 촬영을 끝내고 아쉽게도 철거되어 가발 공장 창고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군산시가 창고를 사들여 ‘초원 사진관’이라는 건물을 세워 영화 순례자들을 세트장으로 불러들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개봉되어 일본 관광객 역시 군산을 찾게 만들었다. 현재 초원 사진관은 관광 안내사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무료 사진까지 촬영해준다. 초원 사진관 내부는 의자와 카메라 그리고 진열대 등 영화와 다르지 않게 세트를 갖춰 놓아 초원 사진관을 그리는 관광객을 추억에 젖게 만든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전주 출신 허진호 감독의 데뷔 작품이다. 허진호 감독은 박광수 감독의 1995년 작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조감독 시절부터 눈여겨 봐왔던 군산을 찾아 영화를 완성하였다. 허진호 감독은 ‘눈 쌓인 장면을 위해 뿌려놓은 소금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던 지역 주민’의 모습과 훈훈한 인심 그리고 월명 공원 주변의 한적한 풍광을 오래도록 기억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로 제 36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 감독상과 청룡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김상진 감독의 1998년 작품 「투캅스 3」 또한 항구 도시 군산의 분위기를 물씬 담아내고 있다. 「투캅스 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강우석 감독의 1996년 작품 「투캅스 2」에서 강형사[박중훈]를 골탕 먹이던 신세대 경찰 이형사[김보성]도 어느덧 새로운 파트너를 맞이한다. 대대로 신참은 고참의 골칫거리였음을 감안하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형사의 새로운 파트너 최형사[권민중]는 자신처럼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데다 여자이다. 이형사는 ‘여자라고 봐주려는’ 고참의 배려를 무시하고 현장으로 달려드는 최형사가 눈의 가시이고, 최형사 역시 사사건건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푸대접하는 이형사가 마음에 안 든다. 한편, ‘총기를 풀어 사고가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우리 경제가 밝아진다.’는 얼토당토 않는 이론으로 장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상곤파 일당이 등장한다. 그들은 중국 마피아 조직과 연계해 ‘한중 연합 조폭’을 결성하여 국제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말도 되지 않는 야심에 차 있다. 이에, 남녀 혼성 2인조 ‘투캅스 (two cops)’가 이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한국과 중국 조직 폭력배의 총기 밀매 현장을 덮치는 혼성 투캅스의 라스트 씬(last scene)은 옥구군 미성읍 군산 외항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군산 외항은 안벽 길이 2,436m, 물 양장 1,239m에 2만 톤급 선박 7척, 1만 톤급 선박 2척, 5천 톤급 선박 1척 등 모두 13척의 선박 접안이 가능한 국제 항구이다.

3. 2000년대 영화와 군산

2000년대에 들어 군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일제 강점기 기반 시설뿐만 아니라 지역민 일상 생활의 흔적 곳곳을 영화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지역민 생활 장소가 영화에 드러난 것은 빵 집을 거쳐 좁은 골목길 그리고 주민 센터까지 걸쳐 있다.

유하 감독의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역시 군산의 수수한 일상을 담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박정희 정권의 폭력적 사회 분위기가 극에 달하던 1970년대 후반 이소룡에 대한 로망이 청소년들 사이에 넘쳐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극중 현수[권상우]는 강남의 땅값 상승을 예상한 어머니를 따라 지금의 양재역 사거리 일대를 칭하는 말죽거리로 이사를 오게 된다. 모범생 현수는 이소룡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학교 짱’ 우식[이정진]과 금방 친한 사이가 된다. 하교 길 버스 안에서 당시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를 꼭 닮은 은주[한가인]를 보고 현수와 우식은 동시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은주는 다정한 현수보다 남자다운 우식에게 빠져드는데, 이에 현수는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도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현수가 비 내리는 학원가에서 그녀와 우산을 같이 쓰게 되고 비를 피하려 빵집으로 들어간다. 현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 앞에서 보리빵을 포크로 찍어 수줍게 베어 물면서 자신의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한다. 극중 빵집 이름은 ‘크라운 빵집’이지만 실제 이름은 ‘영국 빵집’이다. 군산 중학교 근교에서 3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해오고 있다. 이성당이 단팥빵이라면, 영국 빵집은 보리빵이 단연코 내세울만하다.

1990년대 말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요 촬영지 동산 중학교 일대는 2007년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와 2011년 전수일 감독의 「핑크」에서 다시 등장한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서 동산 중학교 언덕 방향으로 걷다보면 언덕을 가기 전 작은 골목이 나온다. 이곳은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즉 극중 신애[이요원]는 민우[김상경]와 그의 동생 진우[이준기]와 함께 문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시위 인파에 휩쓸리고, 그 와중에 일행과 떨어져 홀로 군인으로부터 쫓기게 된다. 신애를 쫓는 계엄군의 거친 추격 장면이 좁은 골목길에서 촬영되었고, 쫓아오는 군인을 피해 도망치던 신애가 주황색 대문 집을 두드리는 장면은 언덕 산동네에서 촬영되었다.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가 애타게 도움을 구하던 산동네 마을은 「핑크」에서 다시 등장한다. 「핑크」는 알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수진[이승연]이 옥련[서갑숙]이 운영하는 술집 ‘핑크’를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수진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옥련이 사는 집으로 향하면서 오르던 산동네 언덕길이 바로 「화려한 휴가」에서 보았던 장소이다.

「핑크」에 찍힌 군산의 모습에 해망굴 역시 들어있다. 해망굴군산시 해신동에 있는 터널로서 2005년 6월 18일 등록 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4.5m에 길이 131m에 이르는 해망굴은 일제 강점기 군산항 제 3차 항구 구축 공사 기간이었던 1926년 10월 16일 구 군산 시청 앞 도로 중앙로와 수산업 중심지 해망동[현재는 해신동으로 통합]을 연결하기 위한 반원형 터널이다. 일제 강점기 해망굴은 인근에 군산 신사와 신사 광장[현재 서 초등학교], 공회당, 도립 군산 의료원, 은행 사택, 안국사[현 흥천사] 등이 있어서 통행이 빈번하였다. 해망굴은 한국 전쟁 시기 북한군 지휘 본부로 사용되어 연합군 공군기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핑크」의 해망굴은 수진과 함께 말없이 굴 내부로 걸어 들어가던 옥련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오줌을 싸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물론, 카메라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한편, 군산의 골목길과 산동네를 화면에 담은 「화려한 휴가」영화동 일대에서도 촬영되었다. 월명동 주민 센터 건물을 ‘문화 극장’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문화 극장 장면은 200명이 넘는 엑스트라와 100명이 넘는 관계자가 동원되어 촬영되었다. 문화 극장 장면은 쾌쾌한 연기와 함께 극장 안으로 뛰어든 시민과 진압 군인을 보여준다. 이에, 영화를 관람하던 신애와 민우 그리고 진우는 극장 밖으로 나오게 되고, 이들이 목격한 것은 군인들로부터 무차별적 구타를 당하는 피범벅 시민들이다. 이 장면이 월명동 주민 센터 앞에서 촬영된 것이다. 월명동 주민 센터에서 골목 하나를 지나면 음식점 ‘불타는 구공탄’이 나온다. ‘불타는 구공탄’은 최동훈 감독의 2006년 작품 「타짜」에서 고광렬[유해진]이 고니[조승우] 심부름으로 국제반점을 찾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고광렬이 국제 반점에서 짬뽕을 먹고 실수로 국물을 흘리면서 ‘몸빼’ 바지 차림으로 고니에게 돌아오는 장면에서 ‘불타는 구공탄’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한편, 군산의 근대 건축물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것이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183호로 지정된 일본식 가옥으로, 일제 강점기 포목상 히로쓰가 살았던 곳이다. 히로쓰 가옥이라고도 한다. 2층 목재 가옥으로 일본식 정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한국 마당의 여백을 살려놓은 곳으로 평가된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일본식 2층 목조 기와집으로 1층은 온돌, 2층은 다다미방으로 되어있다. 1990년대 이미 「장군의 아들」을 통해 알려진 히로쓰 가옥「타짜」에서 편경장[박윤식]의 주거지로 등장하고, 장윤현 감독의 2012년 작품 「가비」의 무대가 되었다. 히로쓰 가옥은 별도의 세트 없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멋스러운 풍경을 자아내어 군산 관광의 단골 장소로 지목되는 곳이다. 군산시 금동 동신 아파트와 군산 여자 고등학교 사이 골목에 위치한다. 히로쓰 가옥은 고니[조승우]가 평경장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며 조르는 장면과 타짜 훈련을 받으며 일상을 보내는 장면에서 화면에 잡힌다. 국제 반점과 ‘불타는 구공탄’ 그리고 히로쓰 가옥 이외에, 「타짜」가 군산을 담아낸 것은 군산 내항 뜬 다리[浮桟橋]’이다.

항구 도시답게 지역에서 촬영된 영화 장면 가운데 군산 내항은 자주 등장한다. ‘뜬 다리’는 「타짜」의 클라이맥스(climax)에 고니와 아귀[김윤석]의 대결 장소로 유명하다. 이외에, 군산 내항에서 영화 「마파도」와 TV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포세인돈」, 「자이언트」 등이 촬영되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어린 ‘탁구’가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한편, 군산시 경암동철길 마을’ 역시 주요 영화 배경으로 등장한다. 행정 구역상 경암동 12통에 해당하는 철길 마을은 해방이후 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경암동에 철길이 들어선 것은 1944년 4월 4일의 일이었다. 총 연장 2.5㎞에 이르는 철길은 이곳 마을 이름을 따서 경암선이라 불렀다. 경암선은 복선 제지 철도, 고려 제지 철도, 세계 제지 철도, 세풍 철도, 페이퍼 코리아선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페이퍼 코리아선’으로 불린 이유는 조촌동에 소재한 신문 용지 제조업체 페이퍼 코리아 공장의 생산품과 원료를 (구) 군산역까지 실어 날랐기 때문이다. 경암선이 철길 마을 사이를 통과하는 구간은 경암 사거리에서 원스톱 주유소에 이르는 약 1.1㎞이다. 5량~10량의 컨테이너와 박스 차량을 연결한 디젤 기관차가 오전 8시 30분~9시 30분, 오전 10시 30분~낮 12시 사이에 마을을 지났다. 기차는 시속 10㎞ 정도 속도로 이곳을 지났는데, 마을 구간에 건널목이 열한 개나 되고 사람 사는 동네를 지나야 하니 빨리 달리지 못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역무원 세 명이 기차 앞에 타고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쳐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2008년 6월까지 실제로 화물 열차가 다녔던 이곳의 철길과 집들 간격은 1m 안팎에 불과하다. 현재 철길 마을은 비어있는 집들도 있지만 수십 년째 이곳을 지켜온 주민들도 살고 있다. 주민들은 지금도 철길 옆 자투리 공간에 빨래를 널고 고추를 말리거나 텃밭을 일구고 있다. 현재 군산시 이마트 길 건너편 골목이라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철길 마을은 우선 2007년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천년학」 주인공 동호[조재현]가 소리꾼 조평세[인간문화재 송순섭] 죽음에 문상을 갔다가 누이 송화[오정혜]가 전남 진도의 작은 섬에 목격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이외에, 철길 마을은 양윤호 감독의 2005년 영화 「홀리데이」와 윤태용 감독의 2005년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 등 다수 영화와 뮤직 비디오 배경으로 출연했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염정아, 박해일, 오광록 등이 출연하였다. 가수 ‘노을’의 3집 앨범 타이틀 곡 ‘전부 너였다’도 철길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배우 유해진의 애달픈 연기가 흑백으로 처리된 이곳 배경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철길 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평범한 담벼락 역시 군산의 색깔을 더해준다. 군산시 오룡동 성당 인근은 봉준호 감독의 2009년 영화 「마더」에 등장한다. 「마더」에서 엄마[김혜자]의 아들 도준[원빈]은 스물여덟의 나이답지 않게 제 앞가림을 못하고 어수룩하게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닌다. 이에, 걱정이 된 어머니는 지극 정성으로 한약을 먹이며 심지어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와 길거리에서 약을 먹인다. 엄마는 아들이 담벼락에 오줌을 싸면서 동시에 한약을 마신 다음, 버스를 타고 떠나자 그 자리에 덩그러니 홀로 남는다. 담벼락을 향해 오줌을 싸는 아들에게 한약을 먹이던 장면이 바로 오룡동 성당과 남 군산 교회 사이 담벼락이다. 거대한 파란색 담벼락에 짙고 붉은 계열의 옷을 입고 서 있는 배우 김혜자 모습이 인상적인 장면이다.

[영화에 비춰진 군산: 불가역(不可逆)의 시간, 노스탤지어(nostalgia) 그리고 치유의 공간]

누군가 군산을 ‘특유의 짠맛서린 정겨운 분위기가 희석되지 않는 한 최적의 영화 촬영지’로 묘사한 것처럼, 군산은 개항과 일제 강점기 시간의 겹을 켜켜이 쌓아둔 곳이다. ‘군산’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히로쓰 가옥은 말 그대로 ‘뒤틀린 역사와 전통’을 보여준다. 빈곤한 조선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일제 강점기 군산에서 막대한 부(富)를 누린 일본인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채만식이 소설 『탁류』를 통해 미두장 투기에 빠진 인간의 헛된 욕망을 보여줬다면, 최동훈 감독의 2006년 영화 「타짜」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한판 도박에 모든 것을 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이창동 감독의 1999년 영화 「박하사탕」은 포박(捕縛)된 어느 한 시기로서 군산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박하사탕」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중 항쟁에 계엄군으로 참여한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고통을 드러낸다. 영화는 1999년 봄 ‘야유회’ 장소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나타난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모습에서 시작된다. 일곱 개의 챕터(Chapters)로 구성된 「박하사탕」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1999년부터 2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1979년 가을 ‘소풍’에 도달하면서 끝난다. 1979년 가을은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되면서 어긋나버린 주인공 영호의 윤순임[문소리]에 대한 첫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계엄군으로 광주에 와서 의도치 않게 여학생을 총살한 영호는 죄의식으로 첫사랑을 저버린다. 제대 이후 노동운동 주모자를 검거하는 형사가 된 영호는 수배자를 찾아 군산에 들린다. 영호는 그곳에서 카페 여자 종업원 경아[고소희]와 하룻밤 섹스를 하고 독백처럼 ‘자신의 첫사랑 고향이 군산’이라며 순임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인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긋나버린 영호의 첫사랑은 일제 침입과 개항으로 일본인 도시로 변한 군산의 모습과 닮아있다. 「박하사탕」의 첫사랑처럼, 군산은 유린된 한국 근현대사가 시작되는 장소이다. 그것은 역사의 생채기가 되어 언제든지 슬픔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트라우마(trauma)로 작용한다.

군산이 ‘지난 간 순수’의 은유로서 묘사되는 것은 임권택 감독의 2007년 영화 「천년학」에서도 드러난다. 「천년학」 장면 가운데 동호[조재현]가 군산을 찾는 대목이 있다. 이 장면은 ‘1982년 군산’이라는 자막을 실어 시기와 지역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동호는 ‘소리꾼’ 누이를 찾아 전국을 떠돌다가 그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단심[오승은]과 그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 군산에 들린다. 단심이 사는 집은 문간방 입구부터 먹다 남은 그릇들이 발길에 채이고, 방안에 한 무리 사람들이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화투를 치며 미래 없는 오늘을 보내고 있다. 단심은 동호로부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사고로 아들까지 잃은 상황이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냈으나 해방이후 산업화 수혜(受恵)를 받지 못해 버려진 공간으로서 군산을 보여준다.

영화에 재현된 군산의 분위기는 대부분 어둡고 무겁다. 하지만 인생이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여정이라는 진리를 떠올리면,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의 군산을 부정과 긍정의 틀거지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전수일 감독의 2011년 영화 「핑크」에서 술집 ‘핑크’에 모여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군산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군산을 노스탤지어(nostalgia) 공간으로 만들었다면, 「핑크」는 치유 공간으로 군산을 그려낸다.

「핑크」는 2011년 부산 국제 영화제 화제작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전수일 감독 작품이다. 전수일은 2007년에 베니스영화제 수상작 「검은 땅의 소녀와」와 2009년에 최민식 주연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등으로 알려진 감독이다. 「핑크」는 가족에 의해 파괴된 삶을 살던 여자가 도망치듯 집을 나와 ‘핑크’라는 선술집에 살게 되면서 자기 방식대로 삶을 버텨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핑크」는 이승연, 서갑숙, 박현우, 강산에가 출연한 작품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군산에서 거의 대부분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는 비오는 이른 아침, 넓게 펼쳐진 갯벌을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상국[박현우]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서해안 개펄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장면이 지나가면 항구 언저리 작은 선술집 ‘핑크’에 수진[이승연]이 찾아온다. 수진은 ‘핑크’의 주인 옥련[서갑숙]을 만나서 일을 시작한다. 옥련과 그녀의 아들 상국이 10년 넘게 살아온 ‘핑크’는 그들뿐 아니라 동네 사람 모두의 안식처다. 하지만 동네가 철거 위기에 놓이면서 옥련은 반대 시위에 참석하느라 여념이 없고, 정신 지체를 앓는 상국은 학교 생활에 적응 못하고 방황한다. 소외된 이들의 처절한 삶을 함께 나누는 수진은 가슴 깊이 숨겨왔던 자신의 상처와 대면한다. 쇠락한 항구 언저리 술집을 불현듯 찾아온 수진처럼, 그녀의 기억은 부지불식 찾아와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근친 성폭력을 당한 기억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술집 ‘핑크’ 여주인 옥련 역시 그녀의 출신과 살아온 이력을 드러내지 않고 신비에 쌓여있다. 다만 “그때는 인생이 장밋빛이길 바랐었지”라는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통해 그녀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가수 강산에는 「핑크」에 방랑자로 출연하여 떠도는 이들의 삶을 노래하며 달랜다.

술집 ‘핑크’의 수진과 옥련은 서해 항구 도시 군산과 너무나 닮아 있다. 가족에 의해 상처를 받은 한 여인처럼 군산은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의 중심이었다. 비 오는 날 상국이 뛰어다닌 갯벌은 수진과 옥련의 삶이기도 하다. 갯벌은 썰물 때만 검은 땅을 드러내고 겉보기에 해초조차 자라지 않으며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갯벌은 수많은 작은 생물들이 그곳을 터전삼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술집 ‘핑크’ 역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갯벌처럼 날마다 작은 숨을 쉬며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아주 천천히 바다를 정화하는 갯벌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핑크’와 어우러진다.

영화 「핑크」는 그 모습뿐만 아니라 많은 소리로 관객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작지만 가깝게 들리는 갯벌의 파도 소리, 낡은 양철 지붕 위를 구르며 떨어지는 커다란 빗소리, 바다 바람 위에 살며시 누운 갈매기 소리, ‘핑크’ 안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그리고 어깨가 늘어진 지친 사람들의 소리 등 영화 「핑크」는 수많은 소리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영화 「핑크」를 밝음과 어둠의 질곡 가득한 삶 속에서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로 평가한다.

「핑크」는 여러 장면에서 군산의 지명을 직접 거론한다. 술집 여주인 옥련은 한숨 섞인 술을 마시며 ‘군산항 밤바다’ 가사가 들어간 노래를 부르고, 그녀의 술집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해망동’을 입에 올린다. 또한 수진을 마음에 둔 수산물 공판장 청년은 자신의 고향을 군산이라고 밝힌다. 영화 「핑크」 촬영 협조 기관과 장소 제공 단체 및 사람들 명단을 보아도, 이 영화가 얼마나 군산과 깊은 인연을 갖는지 알 수 있다. 「핑크」 촬영에 협조한 기관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벅차다. 즉, 군산시, 군산 경찰서, 군산 해양 경찰서, 군산 지방 해양 항만청, 군산 소방서, 군산 보건소, 군산 수협 해망동 어판장, 금강 자동차 공업사, 해망동 해변 주유소, 군산 중학교, 군산시 해신동 주민센터, 군산시 월명동 주민센터, 전라북도 문화원 연합회 군산 문화원, 한국 연극 협회 전라북도 지회 군산 지부, 군산 YMCA, 군산지방 행정 동우회 등이다. 영화 촬영 장소 제공 단체는 군산 경찰서, 군산 지방 해양 항만청, 군산 내항 연성 수산, 군산 중학교, 군산 내항 어판장, 군산 수산물 종합센터 이레 수산 등이다. 또한 영화 촬영 협조에 참여한 사람들은 군산 경찰서 유봉현 계장, 해망동 주민, 월명동 주민, ‘군산의 미래를 여는 시민회의’, 군산 수산, 뉴 그랜드 모텔[군산시 장미동], 항도 모텔[항도장 여관], 금호 렌터카 군산 지점, 해망동 철거대책 위원회, 옥도면 사무소, 월명 1통장, 월명 4통장, 비응도 서해 수산, 해망동 어판장 조천호 계장, 군산 수산물 종합 센터 조원택 회장, 해변 주유소 등이다. 촬영 협조 기관과 장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핑크」는 월명동해망동 등 군산의 구도심과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것을 알 수 있다. 해망동(海望洞)은 ‘바다를 바라보는 마을’이라는 뜻을 고스란히 담은 월명산 가파른 비탈에 자리 잡은 동네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중심 지역 월명동과 함께 군산 구도심을 대표하는 해망동은 빈곤한 조선인의 삶을 집약한 곳이다. 또한 해망동은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의 폐허와 산업화 과정을 거친 세월의 흔적을 골목마다 켜켜이 쌓아둔 곳이다. 그곳은 군산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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