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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021
한자 土地擴張-大役事-群山-干拓事業-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조성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사업 시기/일시 1920년 4월 - 산미 증산 계획과 만경강 하류 지역 대규모 간척 사업 실시
합병 시기/일시 1920년 - 임옥 수리 조합과 임익 남부 수리 조합이 익옥 수리 조합으로 합병
완공 시기/일시 1922년 - 대아댐 완공
축조 시기/일시 1923년 - 옥구 저수지 축조
공사 시기/일시 1924년~1940년 - 만경강 본류와 지류의 직강화 공사
사업 시기/일시 1978년~1985년 - 군산 지방 산업 단지 간척 사업
사업 시기/일시 1988년~1994년 - 군장 국가 산업 단지 간척 사업
사업 시기/일시 1993년~2006년 - 군산 2국가 산업 단지 간척 사업
사업 시기/일시 1991년~2010년 - 새만금 간척 사업
성격 간척사업

[군산 지역의 개간 및 간척 조건]

군산의 역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660년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에 쳐들어 온 기벌포 전투, 1380년(우왕 6) 최무선이 왜구를 무찌른 진포 해전, 1406년(태종 6) 군산진군산창의 이전, 1899년(광무 3)의 개항 그리고 1920년대 이후 개간과 간척에 의한 육지의 확장이다.

군산은 최근 100여 년 사이에 농경지와 공업 용지와 같은 육지 면적이 급격하게 증가 하였으며, 현재도 새만금 사업으로 인하여 서쪽 간석지로의 육지 면적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1910년대까지 군산 지역의 농경지 개발은 산 기슭과 침식 평야 그리고 충적 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임피면 술산리~대야면 지경리~옥구읍 상평리오곡리를 연결하는 선의 북쪽 지역이 주로 개발되었고[임피들, 서수들, 개정들, 평사들, 석교들, 미장들, 선제들], 그 이남의 만경강 주변 지역[대야들, 수산 이곡 평야]과 금강 주변 지역[나포들]은 갈대밭이었다. 그리고 옥구읍 영병산(領兵山)[126m] 서쪽 지역은 바다와 갯벌이었다[옥구 평야, 옥봉평야, 미성 평야, 군산 지방 산업 단지, 군산 국가 산업 단지, 군산 2국가 산업 단지].

군산 지역에 흐르는 하천은 금강 수계와 만경강 수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만경강 수계에는 탑천[요교제에서 시작하여, 대야면 접산리에서 만경강 대간선 수로와 만남], 미제천[미제 저수지에서 회현면 월연리로 흐르는 하천], 어은천[옥구 저수지 남쪽에서 만경강 쪽으로 흐르는 하천, 영병산 서쪽]이 있다. 그리고 금강으로 흐르는 하천은 둔덕천[성산면에서 시작하여 구암동을 거쳐 금강으로 유입]과 경포천[옥산면 금성산의 집수지역에서 개정들을 관류한 후 경암동에서 금강 하구로 유입]이 있다.

이와 같이 군산 지역은 금강 유역[나포들]과 만경강 유역[대야들, 수산 이곡 평야]에서 개간이 가능한 갈대밭이 있었으며, 월명산(月明山)[101m]과 영병산 서부의 갯벌[옥구 평야]은 수심 3m 이내로 용수만 확보가 되면 간척이 가능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관개 용수 확보와 개척 과정]

군산 지역에서 농경지 확장이 시작된 것은 1908년(융희 2) 기존에 존재하던 미제 저수지[현재 은파 관광지]를 수원으로 하여 옥구 서부 수리 조합[미룡리, 선제리, 수산리, 이곡리 지역]이 결성되고 부터이다. 1910년(융희 4)을 전후해서 만경강 이북 지역에 결성된 수리 조합 5개 중에서 군산 지역과 관련되는 수리 조합은 1908년(융희 2) 옥구 서부 수리 조합[수원지 미제저수지], 1909년(융희 3) 임익 남부 수리 조합[수원지 비비정], 1909년(융희 3) 임익 수리 조합[수원지 요교호], 1911년 임옥 수리 조합[하천의 남는 물을 이용] 등 4개이다. 군산 지역에서 관개 수로를 처음 만든 것은 1909년(융희 3) 임익 수리 조합에 의해서 대야면 광교리[탑천]에서 옥산면회현면까지 연결한 도수로이다.

그러나 1908년(융희 2)부터 조직된 수리 조합은 기존 수원에 한계를 느끼고, 좀 더 안정적이고 풍부한 물 공급이 필요했다. 특히 1920년 4월부터 시작된 산미 증산 계획과 만경강 하류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간척 사업[불이 농장, 옥구 평야 간척 사업]으로, 지금까지의 기존 저수지[황등제, 미제]나 기존 지류[탑천] 및 취수 시설[비비정 취수구]에 한계를 느꼈다. 이 시기에 고려되었던 수원으로는 만경강 지류인 고산천 상류에 대아댐, 경천댐, 동상댐의 축조와 금강 수계에 용담댐을 건설하여 유역 변경식으로 물을 공급받는 것 등이었다.

특히 군산 서부 지역의 간척[불이 농장]에 물 공급이 필요했던 임옥 수리 조합임익 남부 수리 조합은 대아댐 설계를 계기로 1920년에 ‘익옥 수리 조합’으로 합병했다. 1922년 대아댐의 완공과 함께, 1923년에는 대간선의 확장과 삼례 취입언의 건설 그리고 수로의 끝부분에 저수용으로 옥구 저수지를 만들어 새로운 물 공급 체계를 완성했다. 특히 옥구 저수지는 불이 농장을 간척한 불이 산업 조합이 간척지에 만든 저수지로 이러한 도수로에 의한 물 공급을 전제로 만들었다.

옥구 저수지는 1923년에 축조되었는데, 해발 고도 3m 내외의 간석지에 축조된 집수 구역이 없는 탱크형 저수지이다. 옥구 저수지는 집수 구역이 없기 때문에 1923년에 완공된 대수로를 통하여 대아 저수지의 물을 주로 겨울철에 공급 받아 마산 양수장에서 물을 퍼서 저장하여 이용하였다. 저수지 주변 길이는 6,087m이다.

또한 황등제를 수원으로 하던 임익 수리 조합은 고산천의 또 다른 지류인 완주군 경천면에 1937년에 경천 저수지를 만들어 수원을 확보하고, 기존에 수원으로 이용했던 황등제를 폐지하여 개답하였다. 수로는 익옥 수리 조합과 공동 사용하였다. 익옥 수리 조합임익 수리 조합의 수원지는 공통적으로 만경강의 지류인 고산천 수계인데, 만경강의 지류 중에서 고산천 지류는 상류부의 지형 조건이 대규모 저수지 축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937년에 만들어진 도수로는 대아댐[후에 경천댐 추가] → 고산천[자연하도 이용] → 어우리보[취입구] → 봉동읍 구미리 → 별산천[취입언] → 삼례읍 신금리 취입구 → 마천리 → 구 비비정 수로[독수항]와 연결 → 춘포산까지 기존 수로 확장 이용 → 동산리 → 익산의 목천포 → 접산리[탑교, 탑천 번영각] → 국도 26번[번영로]를 따라서 구축되었다. 그리고 군산 지역에서는 1923년에 복교[고척천과 교차] → 대야면 지경리[남우교, 만자교, 지경 교차로] → 개정면 옥석리 → 북내교 → 옥산교 → 칠다리 삼거리 → 상평리 원이곡옥구 서부 수리 조합 횡단 → 상평교 → 옥구읍 → 우치산 마을 → 군산 자양 중학교 → 동마산 → 서마산 → 마산 양수장 → 옥구 저수지로 이어지는 약 65㎞에 달하는 대규모 인공 수로였다.

원래 만경강 본류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감조 하천이기 때문에 하천 교통로의 역할은 했지만, 농업 용수의 공급처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특히 1922년에 완공된 대아댐에 의한 물 공급이 지류와 저수지를 연결하는 인공 도수로에 의해서 이루어짐으로써, 만경강 본류는 배수로로서의 기능만을 부여받게 되었다. 즉, 만경강 본류는 홍수 및 범람 방지를 위한 원활한 배수 기능과 하천 주변과 하류의 배후 습지를 농업 용지로 확보하기 위한 개조 작업, 즉 직강화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만경강 본류 정비 단계의 가장 핵심은 1924년부터 1940년까지 진행된 만경강 본류와 지류의 직강화 공사이다. 특히 1929년, 1933년, 1938년에 만경강 본류의 많은 부분에서 직강화가 이루어졌다. 본류의 직강화와 함께 하류 지역의 농경지 개간이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특히 하류부의 지경리에서 어은리까지의 강북[대야들]과 강남 방조제가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 또한 만경강 하류의 개간과 배수 시설 및 조수 역류 방지용으로 1935년에 만경강의 지류인 탑천에 갑문을 설치하였다.

하천의 직강화와 인공 제방의 축조는 만경강과 함께 나포면 금강 변에서도 이루어져, 갈대밭이었던 나포들[십자들]도 이 시기에 관개 수로를 구축하고 개간을 하였다.

하천의 직강화 공사와 배수 개선 공사, 그리고 대간선 수로에 의한 관개 용수 공급 체계의 구축으로 만경강 변의 대야들수산 이곡 평야와 함께 옥구 평야의 간척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한편 1939년의 대한발(大旱魃)을 경험하면서 4개의 수리 조합은 1941년에 ‘전북 수리 조합’으로 통폐합되었다. 모든 수리 조합이 주요 수원을 고산천 수계[대아댐, 경천댐]에 의존했기 때문에 통합이 이루어지기는 쉬웠다. 이후 전북 수리 조합은 좀 더 근본적인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아댐 상류에 1966년에 동상댐을 건설하고, 이와 더불어 금강 수계에 2001년 용담댐을 건설하고 유로를 변경하여 농업 용수와 전력을 동시에 얻으려는 계획까지 수립했다. 이 중 동상댐 건설과 용담댐 건설은 몇 십 년 후에 이루어졌다.

[군산 지역에서의 개간과 간척의 특징]

군산 지역의 본격적인 간척 사업은 1923년 만경강 대수로의 건설에 의한 관개용수 공급과 1924년~1940년 동안 이루어진 만경강 직강화 공사에 의해서 만경강 변의 갈대밭을 개간할 수 있었는데, 현재의 대야들수산 이곡 평야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금강 변에서는 역시 갈대밭이었던 나포들[십자들]이 개간되었다.

그리고 바다의 갯벌을 간척한 것은 불이 산업 조합에 의한 옥구 평야의 간척이 처음이다. 옥구 평야만경강 대간선 수로에 의해 물을 저장한 옥구 저수지를 이용하여, 옥구 저수지의 북쪽과 남쪽 지역을 간척한 것이다[옥구 평야, 옥봉 평야]. 이후 1960년대에 옥녀 저수지의 축조와 함께 옥녀 저수지의 북쪽 지역[미면 간척지]인 미성 평야가 간척되었다. 옥녀 저수지옥구 저수지와 같이 집수 구역이 없는 탱크형 저수지로 제방의 길이는 3,472m이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군산 지역에서의 개간과 간척 사업의 역사는 만경강금강 변의 갈대밭 개간과 같이 강변의 습지를 개간하는 방법, 그리고 서쪽 해변에 분포하는 3m 내외의 간석지를 간척하는 방법으로 농경지를 확보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 시기에 개척된 농경지는 만경강 변의 대야들수산 이곡 평야, 금강 변의 나포들[일명 십자들], 그리고 옥구 저수지 남북의 옥구 평야, 옥봉 평야, 미성 평야였다. 즉, 이 시기에는 군산의 남쪽, 북쪽 그리고 서쪽에서 동시에 개간과 간척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공업 용지 확보를 위한 호안 축조와 간척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강변에는 더 이상 간척할 지역이 존재하지 않아 바다가 있는 서쪽 방향으로 만 간척이 진행되었다.

소룡동에 1975년부터 1995년까지 외항이 건설되기 시작한 이후 소룡동금강 변을 중심으로 미성 평야 북쪽으로 군산 지방 산업 단지 조성을 위한 간척이 1978년부터 1985년까지 이루어졌고, 서쪽에는 1988년부터 1994년까지 군장 국가 산업 단지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군장 산업 단지의 서쪽[비응도]과 남쪽[내초도]까지 간척 사업을 전개하여 군산 2국가 산업 단지를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조성하였다. 이후 남쪽에는 새만금 사업[1991년~2010년, 4개 방조제 완성]으로 옥서면 서쪽 해안에서 간척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군산시의 동쪽 끝인 서수면 금암리 마포[동경 126° 55']에서 육지의 서쪽 끝인 비응도[동경 126° 31']까지의 동서 길이 약 30㎞ 중에서 약 13㎞ 지역이 간척에 의해서 확장된 지역이다. 군산 내항에서 월명산, 장계산(長渓山)[111m], 군산 대학교, 영병산 산지의 서부 지역은 군산이 최근 100년 내에 새롭게 육지를 확장한 지역이다. 현재 군산시 면적의 1/4은 간척에 의해 확장된 지역이다.

군산시의 개간 및 간척 사업에 의한 육지 확장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간척[강변 개간과 해안 간척의 동시 진행]과 1970년대 이후 공업 용지 확보를 위한 해안 간척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간척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어 새만금 방조제[4 방조제] 내부 지역 간척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군산은 우리나라에서 간척에 의한 도시 면적 확장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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