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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013
한자 -瑞穗二葉社小作爭議-
이칭/별칭 옥구 소작 쟁의,이엽사 농민 항쟁,서수 농민 항쟁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7년 8월 9일연표보기 -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27년 11월 25일연표보기 -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 종결
발단 시기/일시 1927년 11월 20일 - 이엽사 농장 소작농에게 75%의 소작료 납부 통달
전개 시기/일시 1927년 11월 15일연표보기 -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 시작
성격 농민 운동
관련 인물/단체 옥구 농민 조합|서수 농민 조합|서수 청년회|장공욱|김재풍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일어난 소작 쟁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옥구 이엽사 농장은 일본인 지주 시라세이[白勢春三]가 1926년에 설립한 식민지 농업 회사로 전주에 본점을 두었다. 이엽사에서는 전주 삼례 농장, 익산 황등 농장, 옥구 서수 농장 등 3개의 농장에 총 1,200정보의 농지를 확보하고, 이를 한국 소작인들로 하여금 경작케 하면서 식민지 농업 수탈을 자행하였다.

특히 옥구의 서수 농장은 1905년 서수면에 있던 가와사키 농장(川崎農場)을 인수한 것으로서, 이 옥구 농장에서 1927년 8~11월 사이 소작 쟁의가 발생하였다. 소작 쟁의의 원인은 75% 달하는 고율의 소작료에서 비롯되었다.

이엽사 소작 쟁의는 농민 조합을 중심으로 서수 청년회가 참여하며 진행되었다. 일본은 소작 쟁의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관과 소방원을 투입하여 주요 인물을 체포하였다. 체포된 인사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서수 이엽사 소작 쟁의 배경]

일제 강제 병합을 전후하여 한국에는 일본인 농장 기업이 많이 진출하였다. 그 중 생산된 미곡을 이출할 수 있는 시설과 넓은 평야 지대를 갖춘 군산 지역에는 불이농촌(不二農村), 웅본(熊本)·이엽사(二葉社) 농장(農場) 등과 같은 많은 일본인 농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일본인 농장주들은 군산에서 자신이 확보한 농장 경영을 위해 일본에서 농업 이민자를 모집하여 관리인으로 종사케 하였다. 또한 수리 조합을 설립하여 농민들을 수탈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한국인 소작농들은 일본인 농장에 그의 가족들까지 예속된 상태에서 소작료를 부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농업에 종사하였지만, 고율의 소작료로 삶을 유지할 수 없었고 다른 제반 비용도 부담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지역 농민 조합을 배경으로 일본인 지주들의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소작료 인하 투쟁을 준비하게 되었다.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 전개]

이엽사 소작쟁의는 1927년 8월에서 11월까지 진행되었다. 이 중 소작 쟁의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는 1927년 11월로 농민 조합을 중심으로 소작인이 참여하며 진행되었다.

먼저 옥구 농민 조합 장공욱(張公郁)을 비롯한 조합 간부들이 일본인 농장측에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며 진행되었다. 하지만 일본인 농장측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였고, 소작료 인하를 요구한 주요 인사를 체포하여 서수면 경찰 주재소와 임피면 경찰 주재소에 구금하였다.

일본의 이와 같은 행동에 울분을 느낀 500여명의 이엽사 농장 소작인들은 서수면 경찰 주재소와 임피면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조합 간부를 석방시키는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일본은 다시 이들을 검거하였고, 이에 농장 소작인 외에 군산 지역 노동자·학생들과 합세하였다. 그 후 이들은 군산 경찰서 체포된 주요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수 이엽사 소작 쟁의 결과]

소작인·노동자·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위가 연대 투쟁으로 격화되자 군산 경찰서에서는 무력을 동원한 탄압을 기도하였다. 그 결과 인근 지역 경찰서의 지원은 물론 소방대까지 동원하여 소작 쟁의를 탄압하였다. 결국 소작 쟁의에 참가한 80여명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들은 검찰에 송치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와 같이 진행된 서수 이엽사 소작 쟁의는 지역 농민 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된 농민 운동으로 일본의 수탈 체제를 비판하며 대항한 항일 농민 운동으로 의의가 있다.

[서수 이엽사 소작 쟁의 계승 운동]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수탈에 굴하지 않고, 민족 독립을 위해 전개하였던 서수 이엽사 소작 쟁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군산 문화원이 중심이 되어 기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기념 행사는 임피 중학교 교정 내에 있는 기념비에서 소작 쟁의에 참여한 농민들의 넋을 기리고 청소년들에게 소작 작쟁의 의미와 항일 운동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매년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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