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264 |
---|---|
한자 | 先史 |
영어의미역 | Prehistoric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류창환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개설]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것은 200~300만 년 전부터이며, 그때부터 문자로 된 기록을 남기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선사라 한다. 선사 또는 선사 시대를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는 다르게 나누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상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하동군은 동서의 폭이 좁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 선사 시대 유적과 유물은 하동군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 섬진강 유역의 서남부와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하동군 옥종면을 지나 남으로 흘러 남강에 합류하는 덕천강 유역의 동부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하동군에서 구석기 시대에 해당되는 확실한 유적은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으나 최근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서 돌도끼를 비롯한 몇 점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된 사례로 볼 때 앞으로 하동군에서도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면 하동 목도 패총에서는 빠른 단계에 해당되는 융기문 토기와 압인문 토기가,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 조개더미에서는 신석기 시대 말기에 해당되는 이중구연 토기 등이 다수 발견된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으로, 하동군 일대가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서 이전 시대에 비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유적의 수가 더욱 증가하는데, 섬진강과 덕천강을 비롯한 횡천강, 악양천, 통정천 등 크고 작은 강가의 비옥한 충적 평야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청동기 시대 유적이 그러한 예이다. 이러한 유적의 증가 현상은 하동군 일대가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하동군에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되는 확실한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하동군 옥종면 띄밭골 유적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되는 원형점토대 토기와 두형 토기가 발견된 사실로 볼 때 앞으로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많은 유적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유인원(類人猿)으로부터 진화하여 도구를 제작·사용하기 시작한 단계에서부터 농경과 고기잡이 및 정착 생활을 특징으로 하는 신석기 시대 이전까지의 문화 단계로 약 4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구석기 시대의 생업은 주로 사냥과 채집이었으며, 이에 유리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면서 생활하였다. 이들이 사용한 주요 도구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내서 만든 뗀석기[打製石器]이며, 때로는 나무나 뼈로 만든 도구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 유적은 1960년대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와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면서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경상남도에서도 유적의 발견 사례가 차츰 많아지고 있는데, 남강 유역의 진주 내촌리를 비롯하여 진주 평거동·장흥리·마진리, 사천 이금동, 산청 옥산리, 거창 정장리 등에서도 구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하동군에서는 아직까지 확실한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굴 조사된 바는 없으나 최근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서 구석기 시대에 해당되는 주먹 도끼와 석기류 몇 점이 발견된 바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많은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석기 시대]
기원전 8000년경 인류는 구석기 시대의 수렵·채집 경제 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정착 생활을 하면서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을 하고, 토기와 간석기[磨製石器], 직조 기술을 개발하는 등 인류 문화 발달사에 혁명적인 전기를 이룩하였다. 인류의 이러한 문화 단계를 구석기 시대와 비교하여 새로운 석기 시대, 즉 신석기 시대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신석기 문화가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8000년경에 시베리아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고아시아 인[고시베리아 인]들이 이주해 오면서부터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주로 집터나 조개더미, 유물 포함층 등으로 남아 있다. 경상남도의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진주 상촌리·산청 강루리·창녕 비봉리·합천 봉계리·통영 연대도·통영 욕지도·하동 목도 유적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주로 물과 식량 자원이 풍부한 바닷가나 큰 강가에서 발견되지만 최근에는 산청·거창 등 내륙의 깊숙한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하동군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1996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하동 목도 조개더미를 비롯하여 하동군 옥종면 일대의 문암리와 횡단·후평·띄밭골 유적 등으로 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과 유물만 보더라도 하동군에는 섬진강과 덕천강 유역을 중심으로 신석기 시대의 가장 빠른 시기부터 가장 늦은 시기까지 신석기 시대 문화가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덴마크의 톰센(C.J.Thomsen)이 제안한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성된 삼시대 체계(three system) 중의 한 시대로 구대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대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기원전 10세기경 북방에서 청동기로 도구와 무기를 만들어 쓰며 쌀농사를 짓고 민무늬[無文] 토기를 사용하는 주민이 한반도로 들어와 선주민(先住民)과 동화되면서 청동기 문화가 시작된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 제품·간석기(磨製石器)·다양한 종류의 민무늬 토기와 고인돌[支石墓]·돌널무덤(石棺墓)·독무덤[甕棺墓] 등 새로운 양식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농경과 목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생산력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사회 내부에 신분적 차이가 생긴 점이다.
경상남도의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황강 유역의 거창 대야리·합천 저포 유적, 남강 유역의 산청 옥산리·진주 대평리와 평거동·함안 도항리, 마산 진동·창원 덕천리·김해 율하리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취락과 무덤, 농경지 등으로 이전 시대보다 한층 발달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경상남도의 청동기 시대 문화는 하동군에도 별반 다르지 않게 전개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덕천강 유역의 하동군 옥종면, 통정천 주변의 하동군 양보면, 섬진강 유역의 하동군 악양면과 적량면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강가의 평야나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생활 유적과 고인돌 등이 그러한 예이다.
[초기 철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란 한국 고고학에서 사용하는 시대 구분 용어로, 청동기 시대에 이어서 새로이 전래된 철기 문화를 말한다. 대체로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전 100년경 연(燕)나라[기원전 323~222]의 영향으로 주조 철기가 보급되는 시기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라 한다.
이 시기에는 중국 북방 지역과 문화적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철기가 전래된다. 철기의 출현은 중국 하북성 북부에 있던 연나라 화폐인 명도전(明刀錢)이 전파된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로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중국에서 가까운 북부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어 남부 지방에서는 B.C. 2세기경 이후에 등장하고 있다.
처음 북한 지역에 들어온 철기들은 중국 제품이었으나 곧 이주민들이 한반도 내에서 현지 생산을 하게 되었다. 철기의 단단하고 실용적인 기능으로 청동기는 상징적, 의기적(儀器的), 비실용적 성격으로 변모되었다. 철기가 보급되면서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경구의 사용은 농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켜 생산력이 급속하게 증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사회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하동군의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이나 유물은 옥종면 띄밭골에서 발견된 원형점토대 토기와 두형 토기 몇 점 등이 거의 유일한 예로 아직까지 확실한 유적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인근의 진주시나 사천시에서 발견되는 유적으로 보아 앞으로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되는 많은 유적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