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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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建築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태호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인간적 요구와 건축 재료로 실용적·미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구조물.
[개설]
건축(建築)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따라서 용도에 맞는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으로 사용하여 예술적인 공간형태를 갖추면서 견실한 구조로 편리성과 유용성을 갖춰야 한다. 청도군에는 향교, 고택, 누정 등의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삼국 시대]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오례산성과 운문산성 등의 성곽이 있다. 신라가 삼국 통일을 위하여 대작 갑사를 비롯한 대비 갑사, 천문 갑사, 소작 갑사, 가슬 갑사 등 오갑사를 두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나, 당시의 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특히 가슬 갑사에서는 원광 법사가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하였다고 한다. 또한 청도 지역은 일찍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신라지’라고 전해 오는 유등 연지(蓮池)가 있다.
[통일 신라 시대]
청도군에는 불교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이 통일 신라 시기 건축물로 운문사 삼층 석탑, 장연사지 삼층 석탑, 사천왕 석주, 봉기리 삼층 석탑, 덕양리 삼층 석탑 등의 석조 건축물이며,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고려 시대]
청도군은 고려 시대에 밀양군의 속현으로 있다가 고려 말에 청도군이 되었다. 운문사, 장연사, 적천사, 용천사 등의 불교 건축물과 관청 건축물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조선 시대]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시대 건축물로 청도 동헌, 청도 향교, 객사인 도주관 등의 관청 및 유교 건축물이 있다. 청도 동헌은 화양읍 동상리에 1737년(영조 13) 건축되었으며, 1955년 12월 내아(內衙)가 있던 현재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원래 동향이었으나 이전 복원하면서 서향으로 변경되었으며,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 청도 향교는 원래 화양읍 고평리에 1568년(선조 원년)에 군수 이의경(李宜慶)이 건립하였다가 1626년(인조 4) 군수 송석조(宋碩祚)가 화양읍 합천리로 이건하고, 1734년(영조 10)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도 향교는 서쪽에는 사악루(思樂樓)와 동재·서재, 명륜당(明倫堂)이 있는 강학 공간을 두고, 동쪽에는 동무·서무와 대성전(大成殿)을 갖춘 제향 공간을 담을 사이에 두고 배치하는 동묘 서학(東廟西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도주관(道州館)은 조선 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1543년(중종 38)에 중창된 건물로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익공계 맞배집이다.
불교 건축물은 운문사 대웅보전, 대비사 대웅전, 대적사 극락전, 용천사 대웅전, 운문사 만세루, 적천사 대웅전 등이 있다. 운문사 대웅보전은 17세기경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단층 팔작 불전으로, 우리나라의 정면 3칸, 측면 3칸 불전 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 대비사 대웅전은 금천면 박곡리에 있으며, 16세기경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 불전이다.
대적사 극락전은 화양읍 송금리에 있으며, 1689년(숙종 15)에 서월 성해(瑞月 性海)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극락전과 삼성각 등이 있고 보물 제836호로 지정된 청도 대적사 극락전과 기단이 유명하다. 용천사 대웅전은 1631년(인조 9)에 조영(祖英) 대사가 중창할 당시에 건립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며, 1805년(순조 5) 의열 화주(義烈和主)가 한 차례 중수하였다. 적천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 불전으로 청도읍 원리에 있다.
서원 건축물은 자계 서원, 선암 서원, 금호 서원이 있다. 자계 서원은 이서면 서원리에 있으며, 조선 초기 문신이며 학자이신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을 향사하기 위해 1518년(중종 13)에 건립한 사액 서원이다. 서원의 배치는 3단으로 구성된 경사지의 제일 하단에는 솟을삼문과 비각이 있고, 중단에는 영귀루와 동재·서재, 그리고 상단에는 강당인 보인당과 그 우측에 김해 김씨 삼현(三賢)인 절효 김극일, 탁영 김일손, 삼족당 김대유를 향사하는 존덕사와 전사청이 배치되어 있다.
선암 서원은 금천면 신지리에 있으며, 삼족당 김대유(金大有),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을 향사하는 곳이다. 매전면 동산리에 건립한 운수정에 1568년 두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하여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다가, 1577년 군수 황응규(黃應奎)의 주선으로 현 위치로 옮겨 ‘선암 서원’이라 개칭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1887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간 건축물은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섬암 고택, 명중 고택, 운남 고택, 도일 고택, 운강 고택과 만화정, 금천면 임당리에 있는 임당리 김씨 고택, 청도읍 원정리의 박이수 가옥 등이 있다.
섬암 고택은 운강 박시묵(朴時默)[1814∼1875]의 둘째 아들인 박재소[1840∼1873]가 분가하면서 지은 살림집이다. 이 가옥은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상류 주택으로 남녀 생활 공간의 엄격한 구분과 규모, 세부 수법 등에서 당시의 주택 격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명중 고택은 박시묵의 손자 박래현이 1881년에 건립한 별서(別墅)이다. 운남 고택은 박시묵의 셋째 아들인 박재충[1850∼1869]이 분가하면서 지은 건물로 운강 고택 옆에 위치한다.
운강 고택은 소요당 박하담(朴河淡)[1479∼1560]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은거하며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던 옛터에 1809년 박정주(朴廷周)가 분가해서 지은 살림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의 구(ㅁ)자 형으로 되어 쌍구(ㅁ)자 형을 이루며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곳간채와 가묘를 갖추고 있다. 만화정은 박시묵이 1856년에 건축하여 수학하고 강학하던 곳이다. 또한 민간 가옥으로 최복자 가옥[화양읍 토평리, 1904년], 최병수 가옥[운문면 정상리, 1880년경], 서영학 가옥[각남면 신당리, 1816년], 김선한 가옥[운문면 마일리, 1860년경] 등이 있다.
교통 통신 시설과 관련하여 남산 봉수, 송읍리 봉수가 남아 있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6기(基)의 석빙고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큰 청도 석빙고는 1713년(숙종 39)에 건축되었으며 길이 14.7m, 폭 5m, 깊이 4.4m의 규모이다. 민간 신앙 건축물로 내리 산신당이 있으며, 이 외에도 많은 누각과 재사 등이 있으나 대부분 조선 시대 말에 건축된 것이다.
[근대]
근대 서원 건축물로는 봉양 서원, 율강 서원, 임호 서원, 금호 서원이 있다. 봉양 서원은 풍각면 봉기리에 대제학을 지낸 변계량(卞季良) 선생을 모신 제단 옆에 1935년 재사를 건립하였다가 1963년 봉양 서원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각북면 삼평리에 있는 율강 서원은 임진왜란 창의공신으로 판관을 지낸 예인상(芮仁祥)의 재실이며, 의흥 예씨의 종사(宗舍)이다.
금천면 임당리에 있는 임호 서원은 삼우정(三友亭) 박경신(朴慶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20년에 건립되었다. 금호 서원은 이서면 흥선리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운룡(李雲龍)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과 후손들이 광해군 때 건립하였다. 대원군에 의해 훼철된 이후 1947년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하였다.
근대에 건립된 대표적인 재사와 누각으로 화수정, 선월정, 운수정, 영풍루 등이 있다. 화수정은 1917년 청도읍 고수리에 경주 이씨 문중의 재실로 지어졌다. 선월정은 청도읍 사촌리에 있으며 장덕윤(蔣德潤)이 1890년에 지어 강학하던 곳으로 1941년에 중건된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중수되었다. 1932년 건립된 영풍루는 주민들이 시를 일고 풍광을 즐기던 곳이다.
민간 가옥으로 1920년에 지은 유경필 가옥[청도읍 평양리]과 박유붕 가옥[청도읍 원정 3길]을 비롯하여 김윤수 가옥[청도읍 유호리, 1930년], 설진곤 가옥[운문면 마일리, 1930년], 김대윤 가옥[이서면 칠성리, 1900년경], 김재수 가옥[각북면 명대리, 1919년], 최병구·최재호 가옥[운문면 정상리, 1919년], 김재순 가옥[금천면 임당리, 19세기 후반], 근대식 한옥인 김달분 가옥[금천면 신지리, 1928년] 등이 있다.
옛 청도 구 풍각면사무소는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제256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현재 청도 작은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청도읍 내호리에는 1944년에 건립된 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영신 정미소가 있다.
[현대]
해방과 6·25 전쟁 이후 1960년대 건축은 국토 종합 개발 계획에 따라 지역 간 균등 개발과 새마을 운동 등으로 마을마다 도로를 확장하고, 상수도 시설을 갖추며, 초가지붕을 없애는 주택 개량 등의 사업이 청도에서도 진행되었다.
1969년 10월 청도군에는 국토 종합 개발 계획에 따른 도시 계획이 실시되어, 1988년까지 청도군의 계획 면적은 12.35㎢이고, 주택과 상업, 공업, 자연 녹지, 생산 녹지로 나뉘어서 도시 계획이 추진되었다. 이 결과 상수도 보급률은 1988년까지 33%로 1만 2039명에게 보급되었으며, 하수관 배수 면적은 35.4%에 도달하였다. 이후 2011년 상수도 보급률은 급수 인구 2만 5188명으로 56.1%가 혜택을 받고 있으며, 하수관 보급률은 84.3%에 달한다.
주택 개량은 1970년대 청도군 일대로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1980년 이미 가구수 1만 8020가구에 주택수가 1만 7503대로 보급률이 97%에 도달하였다. 이후 1985년에는 1만 7330가구에 주택수가 1만 7800대여서 보급률 102.7%로 주택수가 가구수를 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2011년 청도군의 가구수는 2만 397가구에 주택수는 2만 411대로 보급률은 100.1%이다. 주택의 형태는 다가구 주택을 포함한 단독 주택이 1만 7965대로 전체 주택의 88%를 차지하며, 뒤를 이어 아파트가 1,507대, 연립 주택이 260대, 다세대 주택이 397대,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이 282대이다.